예전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리더가 주재하는 어떤 한국 회사의 회의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다. 6명쯤이 같이 한 회의였는데 한 시간 동안 그 리더와 나 둘이서만 이야기했다. 이상하게도 그 리더 밑에서 일하는 다른 참석자들은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 그 리더는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회의가 끝났다. 그러자 그 리더는 사무실로 들어가고 남은 사람들은 “차 한잔 하자”며 나를 잡아끌었다. 회사 밖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그들은 그제야 내게 이야기를 걸어왔다. 그래서 “아니 왜 아까는 전혀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리더가 부하들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의견을 내면 면박만 준다. 그래서 점차 시키지 않으면 아무도 말을 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조금이라도 심기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벼락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위계질서와 자기검열이 이 정도로 심한데 무슨 좋은 아이디어가 이 조직에서 나오고 실행될 수 있을까. 그 리더가 스티브 잡스라도 이런 조직에서는 혁신을 이뤄내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에 다녀왔다. 이스라엘인들은 회의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침없이 난상토론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몇 년 전에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사람들과 워크숍을 한 일이 있다. 그때 서로 싸움을 하듯이 거칠게 자기주장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상대적으로 나는 조용히 듣기만 했는데 나중에 상관인 이스라엘 CEO에게서 주의를 받았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 머릿속에 있는 의견을 꺼내놓아야 한다”며 나에게도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낼 것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만난 한 이스라엘 벤처기업 임원에게도 당신들도 그렇게 평등하게 회의에서 토론하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는 “좀 극단적으로 느낄 수 있겠지만”이란 단서를 달며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 부하가 CEO와 임원인 자기와 같이 회의를 할 때 CEO나 임원의 의견에 대해서 “어리석은 생각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하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게 말을 할 수 있고 그것을 CEO나 임원들이 받아들이는 문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첨단 스타트업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창업국가’로 유명하다. 과연 이런 명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혁신적인 디자인 사고를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한 미국 스탠퍼드대의 D.School이라는 곳이 있다. 이 학교의 공간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디자인컨설팅회사 아이디오의 데이비드 켈리는 <공간 만들기>(Make Space)라는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새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우리의 첫번째 과제 중 하나는 학생들과 교수진의 위치를 평등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교실에 들어오면 누가 가르치는 사람인지, 누가 배우는 사람인지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혁신은 이런 평등함 속에서 번창합니다. 보스나 교수가 방의 머리 부분에 서 있으면 마치 ‘무대 위에 서 있는 현인’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스가 내 생각을 싫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에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공간적 관계를 재설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참여를 진정으로 환영한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One of our first challenges was to equalize the respective status of students and faculty. When you walk into one of our classes, it’s almost impossible to tell who’s teaching and who’s learning. Innovation thrives on this kind of equality. With a boss or a professor standing at the head of the room, it feels like a “sage on stage”-people are reluctant to share their ideas(“What if the boss doesn’t like it?”). Reconfiguring the physical relationship is a powerful signal that participation is truly welcome. -David Kelley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다양한 의견에서 나온다. 회의석상에서 윗사람이 권위로 아랫사람을 짓눌러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나온 아이디어가 발전하기도 어렵다. 여러 사람이 모인 ‘팀’의 힘을 증폭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창조경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회의실에서 권위주의를 몰아내고 모두가 평등하게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북돋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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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임정욱의 생각의 단편’으로 기고한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의 ‘run by ideas, not hierarchy’ 라는 말이 생각났다. 예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지만 워낙 인상에 남는 부분이며 ‘평등한 토론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낳는다’는 윗 글의 주제에도 연결되는 것 같아 다시 옮겨본다.
(2분 50초 부터)
Jobs : What I do all day is meet with teams of people and work on ideas and solve problems to make new products, to make new marketing programs, whatever it is. (내가 하루종일 하는 일은 팀원들과 만나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궁리해내거나 신제품을 만드는데 있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마케팅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등입니다.)
Mossberg : And are people willing to tell you you’re wrong? (그럼 직원들이 당신이 틀렸다고 기꺼이 발언을 하는지요?)
Jobs : (laughs) Yeah.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럼요.”)
Mossberg : I mean, other than snarky journalists, I mean people that work for… (내 말은, 짜증나는 기자들이 아닌, 당신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 직원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Jobs : Oh, yeah, no we have wonderful arguments. (아, 물론이죠. 우리는 항상 멋진 논쟁을 벌입니다.)
Mossberg : And do you win them all? (그럼 당신이 항상 모든 논쟁을 이기겠지요?)
Jobs : Oh no I wish I did. No, you see you can’t. If you want to hire great people and have them stay working for you, you have to let them make a lot of decisions and you have to, you have to be run by ideas, not hierarchy. The best ideas have to win, otherwise good people don’t stay. (아닙니다. 내가 모든 논쟁을 다 이겼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만약 뛰어난 사람들을 채용하고 그들이 당신을 위해서 계속 일하게 하고 싶다면 그들이 많은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회사의 계급에 따라 이뤄져서는 안되며 아이디어에 따라 이뤄져야 합니다. 최고의 아이디어가 항상 논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훌륭한 사람들은 회사를 결국 떠나게 됩니다.)
Mossberg : But you must be more than a facilitator who runs meetings. You obviously contribute your own ideas. (하지만 잡스 당신은 단순히 회의를 진행하는 사람이 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요? 자신의 아이디어로 기여하고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Jobs : I contribute ideas, sure. Why would I be there if I didn’t? (물론 나도 내 아이디어를 내놓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글 : 에스티마
출처 : http://goo.gl/ly2en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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