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수 많은 기술들의 집합이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커뮤니티의 집합이다. 이렇게 거대한 인프라가 동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커뮤니티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체계가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런 체계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런 커뮤니티 정신은 ARPANET의 초기부터 있었다고 한다. ARPANET 연구를 하던 연구자들은 다양한 형태의 패킷 스위칭 기술을 연구하고 데모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계약자들과 협의도 하고 연계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메일, 파일공유, 원격지에서의 접속, 월드와이드웹도 모두 인터넷과 연계가 되면서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이들 각각이 단독 서비스로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환경으로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조율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프로그램들을 논의하는 기구가 필요한데, ARPANET에서는 이를 위해 네트워크워킹그룹(Network Working Group)을 결성하였다. 이것이 인터넷으로 진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름을 인터넷워킹그룹(Internet Working Group)으로 바뀌게 된다. 1970년대 후반, 인터넷의 확장이 대학을 비롯한 연구와 관련된 커뮤니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 이들과의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 TCP/IP 프로토콜을 설계하고 구현한 빈트 서프가 전면에 나섰다.
다양한 민간 협의체의 탄생
당시 빈트 서프는 DARPA의 인터넷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을 위해 몇몇 조직을 구성하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UCL의 피터 커스테인(Peter Kirstein)이 의장을 맡고 주로 패킷 위성 연구를 위해 유럽과의 국제적인 이슈의 조율을 위해 결성한 ICB(International Cooperation Board), 인터넷 전반의 활동을 관리하기 위해 데이빗 클라크(David Clark)를 의장으로 세운 ICCB(Internet Configuration Control Board) 등이 있다.
1983년 배리 라이너(Barry Leiner)가 DARPA의 인터넷 연구 프로그램의 관리 프로그램을 맡으면서, 그는 확장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의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데이빗 클라크와 함께 조율 프로그램의 구조조정을 요구하였다. DARPA가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ICCB는 이로 인해 다양한 태스크포스(Task Force, 이하 TF)의 형태로 다시 구성되는데, 다양한 TF가 결성되어 여러 기술 등에 대한 검토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여러 TF들의 의장들이 모여서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구로 1984년 IAB(Internet Activities Board)가 탄생하였고, IAB의 초대의장으로 데이빗 클라크가 선임되었다.
IAB의 가장 중요한 TF인 IETF(Internet Engineering Task Force)는 2대 의장인 필 그로스(Phill Gross)가 활동하던 시기에 인터넷의 가장 중요한 프로토콜 제정과 관련한 이슈가 많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미팅으로 자리잡게 된다. 미팅은 1년에 4차례 이루어졌는데, 워낙 참석자가 많아서 필 그로스는 다양한 워킹그룹(Working Group, WG)을 만들어서 논의를 분산시키면서도 전체적인 조율을 하는 구조로 운영하였다.
이런 변화와 함께, DARPA 뿐만 아니라 NSFNet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서 보다 다양한 지원기관들이 나타나면서 상업적인 성공을 염두에 둔 참여자들도 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ARPANET을 주도하던 밥 칸과 배리 라이너가 1985년 DARPA를 떠나면서 DARPA 내부에서 인터넷 활동을 추동할 수 있는 역량이 급격하게 감소하였는데, IAB는 활동의 주된 스폰서를 잃게 된다. 분화는 더욱 가속화가 되어, IETF에서 결성했던 다양한 WG들은 각각의 이사들을 지명하게 되는데 이들은 IESG(Internet Engineering Steering Group)라는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상급조직이었지만 IAB는 IETF가 점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각각의 표준을 주로 제정/개정하는 권한을 IESG로 이관을 하였다.
인터넷, 민간의 지배체제에 들어가다
또 한 가지 걱정은 시장에서의 상업적인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와 관련한 이해당사자들이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초창기 인터넷은 연구영역에서 그 뿌리가 있지만, 현재의 인터넷은 다양한 사용자 커뮤니티와 상업적인 활동을 포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기업들의 진입을 막는다는 것은 인터넷의 가치와 맞지 않았다. 다만 프로세스를 개방되고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런 상황의 변화는 인터넷을 커뮤니티의 지원을 받는 조직으로의 변신을 유도할 수 밖에 없었고 이렇게해서 1991년 탄생한 인터넷 소사이어티(Internet Society)이다. 인터넷 소사이어티는 TCP/IP를 만든 밥 칸이 1986년 설립한 비영리재단인 CNRI(Corporation for National Research Initiatives)의 주도하에 빈트 서프가 리더십을 발휘하여 설립되었다. 1992년 IAB에도 큰 변화가 있게 되는데, 인터넷 소사이어티의 지원으로 이름을 Internet Architecture Board로 바꾸고 DARPA의 품을 떠났다.
이로써 미국 국방부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시작된 인터넷의 전반적인 표준을 결정하는 일은 더 이상 어느 국가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기업 및 비영리재단의 지원과 다양한 커뮤니티의 모임으로 구성된 민간기구와 조직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의해서 지배되는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다음 회에 계속 …)
참고자료:
글 : 하이컨셉
출처 : http://goo.gl/Z8vm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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