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기차가 경주를 한다면 누가 이길까? 몇초의 고민도 필요 없이 “기차”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기차는 자전거보다 훨씬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 자전거와 기차간의 경주에서 기차가 승자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사실은 자전거가 경주에서 충분히 이길 수도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기차는 레일이 놓이지 않은 곳으로 달릴 수 없기 때문에, 목적지를 레일이 놓이지 않은 곳으로 설정하면 자전거가 훨씬 더 빠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스타트업과 대기업간의 경쟁으로 치환할 때, 도출 할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실행력은 단순한 힘의 크기 뿐 아니라 옳은 방향성이 결합할 때 유효하다는 것이다. 스타트업보다 풍부한 인적/물적/경험적 자원을 지닌 대기업이 스타트업보다 느린 이유가 여기서 발생한다. 대기업과 같은 묵직한 체계와 관성이 존재하지 않는 스타트업은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곧바로 방향을 꺾을 수 있다. 요컨대 스타트업이 지닌 실행력 상의 강점은, 의사결정의 속도에 있다. 그리고 목적지를 선택할 ‘선공’의 권리는 스타트업에게 있다. 결국 이러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이 실제로 그렇게 대기업보다 실행력이 뛰어나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론 사람이 부족하고,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자전거가 기차만큼 빠르지 않다는 의미일 뿐이다. 앞서 언급한 상황이라면, 자전거라는 사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올바른 길을 빠르게 찾으면 된다. 심지어 걸어 가더라도, 기차 레일이 새로이 놓이는 것 보다는 빠를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그러나 많은 스타트업들은 자전거를 손질하는 것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바퀴를 한번 돌리며 체인을 점검하거나, 약간의 기름을 치는 것에만 그치면 다행이다. 그러나 반짝반짝하게 자전거를 닦거나, 그 자전거를 보호할 확실한 자물쇠를 구하러 다니거나, 타이어를 이것 저것 끼워본다거나 하는 식의 행동들을 한다. 기차에서 내려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게 되어, 바람을 맨피부로 느낄 것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해서 이왕지사 타게 된 자전거, 확실하게 준비하고 싶을 것이다. 기차에 비해 볼품없고 나약한 자전거니만큼 더더욱 대비하여 불안감이나 열등감을 떨쳐내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든 일련의 행위는 방향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자전거를 아무리 잘 점검한다 해도, 그것이 승용차가 될 수는 없다. 자전거를 타는 장점은 방치한 채, 변죽만 울리는 행위인 것이다.
이것을 실제 스타트업의 사업에 적용해 보면, 불필요한 자전거 손질은 어떤 행위일까? 한마디로 말해 ‘실제로 그 사업을 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않는 모든 행위’들이다. 이를테면 회사의 장황한 내규나 복지제도를 세우는 것, 특허를 비롯한 지적재산 보호 플랜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 컨퍼런스를 전전하며 불특정한 업계인에 명함을 뿌리는 것, 정부지원사업들을 기웃거리는 것, 경진대회에 열심히 참가하는 것 같은 행위들이 그것이다. 이러한 액션을 국내 상위 1% 수준으로 잘 해봐야, 자신의 스타트업을 성공시키는데 기여하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자전거 손질이 불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건 그 일에 몰두하다보면, 그 일을 하는 본질적인 목적을 놓칠 위험이 있다. 자전거 손질도 그런 맥락에서 ‘적당히’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자전거의 문제를 깨닫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자전거를 타 보는 것이다. 넘어질까봐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제대로 달리기 전의 자전거는, 넘어져봐야 큰 타격이 없다. 기분은 나쁘겠지만,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자전거를 살피면 된다. 한번 넘어지는게, 머리를 싸매며 자전거의 향후 작동 및 문제를 추리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직관적이다.
페달을 밟는 것은 ’실제로 그 사업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고객을 만나는 것과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전거가, 스타트업이 실제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전거에 속도가 붙을 수록, 눈은 내 자전거가 아닌 길을 보게 될 것이며, 의사결정의 속도 또한 자연스럽게 빠른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자전거를 타는 의의가 비로소 이루어지는 셈이다.
물론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영원히 그 자전거를 타고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은 영역에서 먹고사는 중소기업을 지향한다면 모르겠으나, 고속성장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이라면 어느 시점이상을 넘어가면 자전거를 크게 개조하거나, 오토바이나 승용차로 기업을 업그레이드 해 나가야 한다. 때로는 창조적으로 배나 비행기와 같은 혁신적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은 자전거를 막 쥔 창업자에게 있어, 사치와 같은 망상일 뿐이다. 대기업을 기차에 비유했지만, 사실 시장에는 승용차들도 있고, 오토바이도 있고, 나 말고 다른 자전거 운전자들도 있다. 그들도 나 처럼 탈것을 수리하는데나 열중하고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마 누군가는 이미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고민은 움직이며 해도 된다. 창업자는 일단 페달을 밟아야 한다.
글 : cylee
출처 : http://goo.gl/z7JHGK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