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에 언론의 경제면에는 매우 주목을 받은 뉴스가 있었다. OB맥주를 2009년에 18억달러에 Private Equity 회사들에게 매각했던 AB InBev가 5년만에 다시 58억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AB InBev라고 하면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회사의 풀네임인 Anheuser-Busch InBev라고 하면 좀 더 익숙한 사람들이 많을 테고, 미국 시장 1위 브랜드인 버드와이저를 만드는 회사라고 하면 더 많이 알 것이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미국 최대의 맥주회사일까? AB InBev는 세계 최대 맥주회사이고 미국에서 가장 많은 맥주를 파는 회사인 것도 맞지만, ‘미국 회사’는 아니다.
2008년에 미국 최대의 맥주회사이자 버드와이저를 만드는 안호이저부시는 InBev에게 합병되어서 글로벌 최대 맥주회사가 되었다. OB맥주를 2009년에 InBev가 매각한 이유 중 하나도 안호이저부시를 인수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세계 최대의 맥주회사 AB InBev는 벨기에에 본사가 있는 회사이다. 하지만 실제 운영을 들여다보면 브라질 회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최대주주도 브라질인이고, 최고 경영자를 비롯한 경영진의 다수를 브라질 사람들이 점하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큰 미국 맥주 회사는 Miller 또는 Coors일까? 그것도 아니다. 밀러는 남아프라카 공화국의 SAB(South African Breweries)에게 2002년 인수되었다. 그 후 합쳐진 회사 이름은 SABMiller로 바뀌었다. Coors는 2005년에 캐나다의 맥주회사 Molson과 합병하여 Molson Coors가 되었다. 절반은 캐나다 회사가 된 것이다. 게다가 SABMiller와 Molson Coors는 2007년에 MillerCoors라는 이름의 JV를 만들어 미국시장에서는 공동으로 사업을 하기로 한다. 결과적으로 Miller도 Coors도 미국회사라고는 할 수 없다. 2000년대 이후 국경을 넘어선 인수합병 붐이 미국 맥주 대기업들의 국적을 바꿔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인이 소유한 맥주회사 중에서 가장 큰 곳은 어디일까?
그 주인공은 Boston Beer Company이다. Sam Adams라는 맥주브랜드로 조금 더 알려져 있는 이 ‘가장 큰 미국 맥주 회사’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1%를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보스턴 비어 컴퍼니는 미국 맥주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변화를 상징한다. 이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미국 맥주 시장의 역사를 살펴보자.
미국 맥주 시장에서 1970년대까지는 집중화(Consolidation)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될 수 있다. 1887년에 2,269개였던 맥주회사는 1918년에 1,092개로 꾸준히 감소하였다. 1920년부터 1932년까지 금주령으로 맥주 제조가 사실상 중단되었다가, 1934년에 다시 756개로 늘어났지만 이후 계속 감소세를 지속하여 1979년에는 44개까지 감소하였다.
그와 함께 상위사로의 시장 집중도는 높아져갔다. 1950년에 22%였던 상위 4개사의 점유율이 1971년에는 69%에 이르렀다.
(출처: Source: Willian James Adams. Determinants of the Concentration in Beer Markets in Germany and the United States: 1950-2005, in Economics of Beer, edited by Johan F. M. Swinnen)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도 교통수단의 발달로 시장이 넓어지면서 가능했다. 한 지방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었던 맥주회사들이 점차 시장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맥주를 신선하게 유지하면서 운송할 수 있는 냉장 열차 등 기술의 발달로 시장은 점점 더 넓어지게 되었다. 또한 기술의 발달과 생산성 향상으로 저렴해진 유리병 포장(bottling), 그리고 좀 더 이후에 출현한 캔 포장 (canning) 등은 운송과 보관을 쉽게 하여 시장을 확대하는 동시에 기계설비 투자를 요구하여 규모의 경제를 높이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기업들은 점점 시장을 넓혀갔고,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품질이나 규모의 경제 열위로 퇴출되어 갔다.
제조 및 유통상의 변화 못지 않게 매스 마케팅의 발전도 집중화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특히 큰 기여를 한 것은 TV 광고였다. 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된 텔레비전은 3개의 공중파 방송국을 통하여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최고의 대중 광고 미디어였다.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대형 맥주회사들의 제품은 점점 미국인들 전체의 사랑을 받는 전국적인 브랜드가 되어갔다. 전국을 상대로 영업하지 않는 지역 맥주회사들에게 TV 광고는 비용 효율 면에서 매우 불리한 매체였다. 계속되는 광고의 홍수 속에 소비자들은 점차 자기 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마셔온 지역 맥주회사의 맥주가 아닌 대형 맥주회사 브랜드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시장의 변화는 산업혁명 이후, 특히 대량생산의 도입 이후, 많은 산업에서 경험하게 되는 현상이었다.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과 마케팅에서도) 대량생산적인 기술의 발전과 이를 이용한 투자의 증대, 그로 인한 최소 효율 규모(minimum efficient scale)의 확대로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군소기업들이 퇴출되는 현상이었다.
80년대부터의 두드러진 현상은 시장의 정체와 활발한 인수합병이다.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던 미국의 맥주 시장은, 80년대부터는 저성장 내지 정체 국면으로 접어든다. 80년대초의 2억 배럴 수준에서 최근까지 크게 변화가 없는 상태다.
(출처: Beer Institute. 1979년까지는 생산량.)
이렇게 파이가 늘지 않는 상황에서, 상위사들은 자연적 성장보다는 인수합병을 택하게 된 것이다. 70년대 이후 국내적인 인수합병을 거쳐, 2000년대부터는 앞서 본 것처럼 국경을 넘은 딜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를 통하여 AB InBev와 MillerCoors의 양강은 미국시장의 거의 80%를 차지하게 된다. 거의 복점(duopoly)에 가까운 시장이 된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맥주회사들은 세계 맥주시장에서 성장의 대부분을 만들고 있는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의 성장,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 등 성숙시장에서는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 극대화를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80년대부터 미국 맥주 시장에는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되는데, ‘크래프트 맥주 혁명’이라고 불려진다. 맥주업체 숫자의 추이를 보면 왜 혁명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출처: Beer Institute)
1970년대말 40여개로 줄어들었던 맥주회사의 숫자가 80년대부터 다시 급증을 시작하였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 2012년에는 2700개를 넘게 되었다. 1800년대의 숫자보다도 더 많아진 것이다.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들 대부분은 바로 Micro Brewery, 또는 Craft Brewery로 불리는 작은 맥주업체들이다. 그들은 크래프트 맥주회사로 불리려면 일정 규모 이하로 작고, 거대기업에 소유되지 않은 독립적인 업체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쌀이나 옥수수를 원료에 다량 사용하여 묽은 맥주를 만드는 대형 맥주사들과 달리 전통적인 몰트와 홉을 주재료로 사용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들이 만든 맥주는 Craft Beer라고 부르는데, Craft는 수공예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량생산이 아닌, 그 이전의 수공예 장인의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AB InBev나 MillerCoors같은 회사의 맥주를 Mass-produced beer라고도 부른다. 한국어 어감으로는 ‘공장 맥주’에 가까운 느낌이다. 그들이 꼭 자동화를 거부하고 원시적인 방법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에서 나온 맥주와 달리 자신들의 맥주는 도예가가 구운 도자기 같은 창작품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는 미국 맥주 시장에서 수입맥주와 함께 유일하게 성장하는 세그먼트이다. 전체 맥주 시장은 거의 성장이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1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80년대초까지 보이지도 않던 크래프트 맥주는 2012년에는 물량으로 6.5%, 금액으로는 10.2%의 점유율을 기록하였다. 소매가 기준으로 미국 맥주 시장은 100조원 정도 되는데, 그 중 10조원을 크래프트에 소비한 것이다.
대표적인 크래프트 맥주 성공사례이자 미국기업으로서는 가장 큰 맥주회사가 된 보스턴 비어 컴퍼니의 사례를 보자. 하버드 대학에서 MBA와 JD(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보스턴 컨설팅 그룹의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던 짐 코흐는 1984년 겨울 보스턴 비어 컴퍼니를 창업한다. 그는 미국에는 다 똑같이 밍밍한 맥주만 있고 맛있는 맥주가 없고, 이제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맥주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의 집안은 원래 맥주제조업자였는데,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19세기 제조법을 참고하여, 그는 집 부엌에서 새뮤얼 애덤스 맥주를 만들게 된다.
보스턴 비어컴퍼니의 사업모델상 가장 두드러진 점은, 맥주생산을 외주를 주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노는 설비가 있는 맥주공장 이곳 저곳에 외주를 맡겼다.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맥주의 독과점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감이 없어서 놀고 있는 지역 맥주공장들은 많았다. 성장하면서도 외주는 계속 되었다. 2007년까지도 자체 생산은 35%에 불과하였다. 그 이후 다른 맥주공장 인수 등으로 생산 용량을 늘려서 2009년에는 자체 생산이 95% 이상이 된다.
보스턴 비어 컴퍼니는 2012년에 매출 약 6억2천9백만불을 기록하였고, 영업이익은 9천6백만불을 기록하였다. 계속 연간 10% 이상의 성장을 하는 중인 보스턴 비어 컴퍼니의 주식은 2014년 2월18일 현재 최근 3개년 총수익률 135.8%로, S&P500의 47.5%를 훨씬 뛰어넘었다. 합병 이후 수익성을 개선해온 AB InBev의 94.97%도 능가했으며, 특히 최근 1년간의 총수익률은 53.04% 대 11.55%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시장은 보스턴 비어 컴퍼니와 크래프트 맥주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는 것이다.
보스턴 비어컴퍼니는 사실 너무 커져서 초창기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의 기준으로는 이미 크래프트 업체의 규모를 넘었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계속 크래프트 맥주에 포함되고 있다. 성공한 업체들이 나오면서 크래프트 업체들은 규모보다는 독립성이나 차별화된 제품으로 기준을 바꾸는 추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조금 더 익숙할 마이크로 브루어리라는 이름보다 크래프트가 많이 사용되게 된 것에는 그런 배경이 있었다.
보스턴 비어컴퍼니처럼 생산을 외주하는 사업모델을 Contract Brewer라고 부른다. 초기 설비 투자금액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된다. 리스크와 선투자 금액을 줄이는 방법은 외주 이외에 Nano Brewing이 있다. 나노 브루잉은 넓은 방 하나 정도에 놓을 수 있는 정도의 작은 장비들로 시작하는 것인데, 몇 천 만원 이하의 초기 투자금이면 충분하다. 집의 주방에서 취미로 맥주를 만드는 Home Brewer도 과거라면 꿈도 못 꿀 장치산업으로만 알고 있던 맥주회사를 창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작은 설비로 어떻게 대형 맥주회사와 경쟁을 할 수 있을까? 맥주는 전형적인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는 산업 아닐까? 아무리 다양하고 독특한 맥주를 찾는 소비자 니즈가 있다고 해도, 그런 장벽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사실 맥주 제조에서 규모의 경제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은 술 자체가 아니다. 맥주를 만드는 것 자체는 쉽게 말하자면 통에 재료를 넣고 물을 끓이고 발효시키는 등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아주 간단히 얘기하자면 몇 개의 양철통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거대 맥주회사의 설비는 다만 이 통이 엄청나게 클 뿐이다. 효율은 낮을지언정 작게도 가능한 것이다. 초기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은 기존의 맥주 제조용 탱크들이 너무 커서, 우유나 치즈를 만드는 탱크를 사용하기도 했다.
규모의 경제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포장이다. 맥주회사의 비용에서 원재료비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병이나 캔 등의 포장비용이다. 대규모 맥주 회사 같은 자동화 설비를 하려면 큰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크래프트 업체들은 대량생산적 고정관념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아주 초기에는 아예 소매점을 위한 병 포장을 포기하고, 맥주집을 타깃으로 (또는 직접 맥주집을 운영하여) 통으로만 팔았다. 그러다가 소매점에 팔기 시작하면서는 수작업으로 병 포장을 하였다. 와인처럼 병 포장으로 소량 생산하는 곳들이 있었기에, 소량의 병 포장을 위한 사람이 작동하는 기계가 있었던 것이다. 최근 책상에 올려놓을 정도의 수작업용 소형 캔 포장 기계가 나오자 캔 포장을 도입하는 회사들도 늘고 있다. (수작업용 병이나 캔 포장 기계는 1-2개의 병이나 캔을 선반에 올려놓고 뚜껑을 올려놓은 후 사람이 기계 덮개를 누르면 뚜껑이 닫히는 기계를 상상하면 된다. 문서에 펀칭기로 구멍을 뚫는 작업과 비슷하다고 할까.)
포장에 대한 또 하나의 해결책은 외주다. 설비를 차량으로 끌고 다니면서 병 포장을 해 주는 Mobile bottling 업체들이 생겨났고, 최근엔 Mobile canning (이동식 캔 포장)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점차 크래프트 업체를 위한 생태계가 발달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도 도움이 되었다. 지역 맥주회사들이 어려움을 겪자, 미국은 1977년에 맥주에 부과하는 주세율을 소형 맥주사에게는 낮추어 주었다. 1979년에는 집에서 맥주를 담드는 Home Brewing을 합법화하였다. 크래프트 맥주 창업자의 실험실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80년대부터는 맥주집(pub)의 맥주 직접 제조에 대한 주(state) 규제가 완화되기 시작하여, 84년에 6개의 주만 허락하던 맥주집의 맥주 제조를 95년에는 2개주만을 제외한 모든 주에서 허락하였다.
이들에게 코웃음 치던 거대 맥주사들도 90년대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방어책을 내놓고 있다. 한가지는 소매상과 맥주회사를 연결하는 도매상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찾는다는 것을 알게 된 유통업체들은 점점 더 크래프트 맥주를 취급하는 추세이고, AB InBev나 MillerCoors의 전속에 가까운 도매상이 아닌 크래프트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도매상도 생겨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전통적으로 금지되었던 제조사의 직접판매를 허용하여, 크래프트 맥주사가 도매상을 통하지 않고 소매점에 직접 판매를 하기도 한다.
대형 맥주사들의 또 하나의 전략은 자신들도 크래프트 맥주를 내는 것이다. AB InBev는 Shock Top, MillerCoors는 Blue Moon이라는 크래프트 맥주를 출시하였다. 또한 AB InBev는 시카고의 크래프트 맥주업체인 Goose Island를 몇 년전 인수하였다. 하지만 성과가 기대만큼 좋지는 않다. 어느 크래프트 맥주 소비자가 남긴 온라인 댓글에서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 애용자이자 취미로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맥주에 들어가는 것들(이야기, 원료, 열정)이 지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 최고의 크래프트 맥주사의) 맥주병 하나 하나에는 당신이 마시는 맥주에 대한 짧은 소개문구가 있다. 이름이 무슨 의미인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지, 어떤 원료가 사용되는지, … 기본적으로 맥주의 구상에서 소비자가 마실 때까지의 맥주의 일대기이다…”
즉, 크래프트 맥주를 마시는 이유는 단지 맥주 맛뿐이 아니라, 그 맥주의 정체성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 등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사들은 광고를 많이 하지 않는 대신 자신의 맥주 제조 현장에서 고객과 만나는 투어 프로그램으로 인간적인 접촉을 많이 하는데, 이것도 대형사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인간적인 매력을 전달하는 한 경로이다.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크래프트 맥주사들이 대형사들을 비판하는 하나의 공격 포인트는 투명성이다. 대형 맥주사들의 크래프트 맥주는 포장에 제조사를 AB InBev나 MillerCoors등으로 밝히지 않고, 그 맥주가 주조된 공장 이름만 보여주는데, 이를 비판하는 것이다. 자신의 맥주가 그렇게 좋다면 왜 정정당당하게 회사의 이름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냐고 말이다.
그리고 이런 대형사의 크래프트 제품을 (진짜) 크래프트 맥주회사들은 Crafty Beer라고 부른다. 한국말로 하자면 ‘짝퉁 크래프트 맥주’, ‘무늬만 크래프트 맥주’ 정도로 해석될 것이다. 큰 회사가 만든 맥주는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창업열기는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2700개 이상의 크래프트 업체가 이미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준비하는 곳이 2013년말에 1500개 이상이다. 선배 크래프트 맥주회사들의 성공에 고무되어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진입에는 크래프트 맥주 회사를 시작하고 운영하는 방법에 대하여 많은 지식 공유가 인터넷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취미를 가진 Home Brewer는 미국에 120만명이 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잠재적 창업 예비군이 있는 것이다.
2013년 3월에 미국의 유명 온라인 매체인 허핑턴 포스트는 “현재의 트렌드가 계속되면 금액기준으로 2020년에, 물량기준으로 2033년에 (미국 시장 1, 2위 업체인) 안호이저부시와 밀러쿠어스를 크래프트가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담긴 기사를 내보냈다. 기자의 장난기가 섞인 기사였지만, 크래프트가 시장의 일부에 머물지 않고 주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사람들이 하기 시작한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업체들의 미래에 대하여 보스턴 비어컴퍼니의 짐 코흐도 긍정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더 많은 소비자들이 크래프트 맥주를 찾고 있다. 소매업체들은 선반을 더 마련하고 있고, 맥주집들은 맥주꼭지를 더하고 있다. 내 생각엔 2-3천, 어쩌면 4천개의 크래프트 맥주회사가 추가적으로 생길 공간이 있을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단체의 경제학자인 Bart Watson은 “지금 미국에 있는 와이너리는 7000개가 넘는다. 맥주보다 물량이나 금액에서 맥주보다 작은 시장임에도 말이다.”라고 얘기했다. 대형 맥주사 입장에선 상상하기조차 싫은 끔직한 시나리오겠지만, 맥주의 와인화까지 거론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 혁명은 이제 시작이다. 한국의 온라인 옷 쇼핑몰 시장으로 따지면 2003년 정도라고 할까. 초기에는 크래프트 맥주 창업자들이 스스로 장비, 포장, 유통 등 사업 전반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지만, 붐이 일면서 점점 크래프트 맥주회사를 도와주는 협력업체 생태계가 생겨나고 있다. 그들이 더욱 사업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협력자들이 생겨나면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글: 장효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