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나 대형 사고가 발생 했을 때 리더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 최소한 현장에서 가시성을 확보해야 한다.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발생한 초대형 기름 유출사고. 오바마는 현장으로 달려가 비를 맞으며 기자회견을 했다. 이번 사고의 책임이 BP에게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 했다. 근데 왜 오바마는 비를 맞았어야 했을까?
2010년 4월 20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 멕시코 만에 있는 세계적 석유회사인 BP의 딥워터 호라이즌 석유 시추 시설이 폭발했다. 원유 시추가 진행 중이던 시추공의 원유가 부근의 멕시코만으로 흘러 들어갔으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해상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사고 인근 지역인 루이지애나주 베니스 해변을 방문했을 때는 비가 오고 있었다. 많은 기자들이 오바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바마는 검정색 점퍼만을 입은 채 세차게 내리는 빗속으로 걸어 나왔다. 국가 원수에게 흔히 지원되는 검정색 대형 우산을 쓰지 않은 채였다.
기자들도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오바마의 연설을 들었다. 그는 “이번 사고의 책임은 BP에게 있다. 환경에 대한 피해 복원도 BP의 책임이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최선을 다해 이 난국을 헤쳐 나가자고 역설했다. 그의 얼굴에는 빗물이 흘러 내렸고, 가끔 얼굴을 손으로 훔쳐가며 이야기했다.
왜 오바마는 실내에서 진행되는 안락한 기자회견을 원하지 않았을까? 모든 메시지를 통제하고 관리하기로 유명한 백악관 홍보담당자들은 현지 날씨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대통령에게 왜 우산조차 씌우지 않았을까? 왜 배경으로 갈매기가 울어대는 산만한 바닷가에 서서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을까?
이 상황은 미국 대통령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품질에 있어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재해 발생 시 현장에 들르는 리더들의 모습들을 기억 해 보자. 민방위복이나 점퍼를 입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은 비슷하다. 하지만, 우천 속에서 대부분 리더들은 우산을 쓴다. 비서들이 우산을 들고 현장에서 리더들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분명 오바마와는 다른 모습이다.
오바마가 진행한 빗속의 기자회견속에는 많은 장치들이 숨어 있다. 일단 검정 점퍼를 입었다. 화려하지 않은 색깔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장치다. 비를 맞는 것은 현지에서 고통 받는 주민들과 해변에서 당시에도 열심히 방재작업을 하는 모든 조력자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장치다. 작성된 연설문은 백악관 홍보담당자들에 의해 미리 투명 비닐로 한 장 한 장 포장되어 있었다. 종이 연설문이 비에 젖는 것을 미리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오바마 앞에 걸려있는 마이크는 빗물에도 견디는 마이크였다. 해변을 배경으로 하여 재해 현장에 대통령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모든 것이 ‘미리 고안되고 준비’ 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이었던 것이다.
이런 고품질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은 리더의 열린 마음과 주변 전문가들의 조언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해야 가능하다. 아무리 훌륭한 전략과 경험에 기반한 조언들이라도 리더가 개인적으로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을까?” 또는 “나는 비를 맞는 게 정말 싫어”했었더라면 전혀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또한 주변 조언자들이 “감히 대통령에게 어떻게 비를 맞으라고 할 수 있겠어?”라던가 “최소한 우산이라도 큰 걸 마련하자”하며 리더의 눈치를 보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악관의 조언자들은 기자들까지 감동시키는 방식으로 훌륭하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대통령이 홀로 비를 맞는다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 그들도 선뜻 우산이나 우비를 두를 수가 없었다. 이 재해를 한마음으로 헤쳐나가자는 대통령의 메시지에 공감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장면을 지켜보던 수억의 미국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준비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얼핏 사소해 보이는 많은 장치들과 의미들이 간과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작은 것 하나 조차도 고안 해 조언을 했고, 리더는 그 조언을 시원하게 받아들였다. 커뮤니케이션의 품질은 위기 시에 극명하게 나타난다. 준비할 시간이 많고 혼란스러움이 적은 평시와는 전혀 다른 여러 압박이 있기 때문이다. 위기 시에 고품질의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할 수 있는 조직이 바로 톱 클래스다. 오바마는 비를 맞으며 이 점을 뽐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위기관리는 상황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로 나뉩니다. 이 글은 위기 발생 후 기업, 정부, 공기관등이 위기관리를 위해 실행 한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의 성공 포인트만을 잡아 예시한 것입니다. 즉, 이 원 포인트가 해당 케이스 위기관리 전반의 성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goo.gl/IqeSl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