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발자 처우 개선, 과연 개발 환경 혁신이 먼저일까?

지난번 포스팅했던 우리나라가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려면에 이어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아래는 ‘치킨집 사장과 백발의 개발자‘라는 동아 일보 뉴스룸 기사의 일부:

실리콘밸리의 개발 환경은 촉박한 시한에 쫓겨 밤낮없이 일하고 햄버거나 컵라면으로 3분 안에 끼니를 때운 뒤 믹스커피와 박카스를 페트병 용량으로 들이켜는 국내 개발 환경과 너무 달랐다. 그곳에는 개발자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위해 ‘여유’가 필요하다는 이해가 있었다. 국내에서 개발자 하면 불쌍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는 창조적 자아실현이 가능한 멋진 직업으로 느껴졌다.

개발자가 다수였던 이날의 청중은 ‘어떻게 하면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수 있냐’고 앞다퉈 질문했다. 실리콘밸리 기업에 취직하는 노하우부터 체류 비자 및 영주권을 취득하는 루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다.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갈 방법을 묻는 열기(?)를 보며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IT 개발자를 치킨집 사장으로 내모는 이 후진적 개발 환경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소프트웨어 강국 한국’이나 ‘창조경제 실현’은 모두 구호에 불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분당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250명이 참석하고 900명이 온라인으로 시청했던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컨퍼런스를 본 임우선 기자가 쓴 글이다. 한국의 현실을 암담하게 느껴 실리콘밸리로 가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며 느꼈던 진심어린 애정과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이런 많은 글들이 ‘개발 환경 혁신’으로 결론을 짓는다. 물론 맞는 말이고 꼭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출발점일까? 그 혁신을 누가 해야 하는걸까? 정부가 ‘개발자 처우 개선법’을 만들어 규제를 강화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의 고용주들이 비용을 크게 증가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켜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각오하고 개발자들에게 높은 연봉을 주고 근무 시간을 낮추어줘야 할까?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엔지니어들에게 ‘창조적 자아 실현’까지 해준다고 하는 건 좀 지나치게 거창한 말이지만, 많은 회사들이 왜 엔지니어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사회 사업가도 아니고, 딱히 고귀한 성품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을 운영하는 창업가가 많기는 하지만 결국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주주의 이익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회사는 성장하기도 힘들 뿐더러 성장한 후에도 자금난을 겪게 되기 쉽다. 개발자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이유는, 그렇게 좋은 대우를 해주어 훌륭한 제품을 만들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소프트웨에 회사들은 소위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 일본 시계가 3백 달러에 팔릴 때, 똑같이 생긴 스위스 시계가 1만 달러에 팔리듯이, ‘메이드 인 실리콘밸리’이면 똑같은 제품이라도 더 비싸게 팔 수 있고, 영어권 국가를 대상으로 하므로 더 큰 시장에 팔 수 있다. 그러려면 품질이 월등해야 한다. 결국 개발자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품질이 월등한 제품을 만들기 쉽지 않다.

둘째, 그렇게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경쟁이 없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매일 인재 전쟁을 겪고 있다. 소위 Top 20을 제외하면 (이미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 있는 회사, 또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회사), 나머지 대부분의 회사들은 엔지니어 모셔오기에 안간힘을 쓴다. 연간 500달러를 내고 링크드인(LinkedIn) 프리미엄 회원에 가입해서 사람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엔젤리스트(Angel.co)에서는 연봉에 더해 회사 지분을 주겠다며 인재들을 유혹한다.

엔젤리스트(angel.co)에 올라온 Symphony라는 회사의 개발자/디자이너 채용 공고
엔젤리스트(angel.co)에 올라온 Symphony라는 회사의 개발자/디자이너 채용 공고

셋째, 자본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앞서 든 두 가지 요소와 중복되는 면이 있는데 성장성이 있는 회사라면 투자를 받을 수 있고, 투자를 받으면 잘 나가는 회사만큼은 아니지만, 꽤 괜찮게는 대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사기업 투자가 가장 활발한 곳이 실리콘밸리이고, 이렇게 많은 돈의 주 사용처는 ‘개발자 월급’이다 (아래 그래프). 근데, 여기서 간과하면 안되는 것은, 돈이 몰리니까 대우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 설명하겠다. 그리고 애초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죽, 실리콘밸리 회사들이 워낙 많이 다른 기업에 높은 가격에 인수되고, IPO 가서도 가치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돈이 몰리는 것이다. 결국,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모두 가능한 일이다.

2013년, 미국 지역별 투자 금액 (출처: PWC/MoneyTree)
2013년, 미국 지역별 투자 금액 (출처: PWC/MoneyTree)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속해 있는 직군은 다음 몇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전체 경제 규모 중 차지하는 비중을 추정해 보았다.

1. 중, 대기업 핵심 제품 개발 부서 (10%)
2. 중, 대기업 IT 부서 (15%)
3. 하청 업체 / 에이전시 (20%)
4. 기업, 국가 연구소 (5%)
5.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사 (25%)
6. 고성장 스타트업 (5%)
7. 기타 (20%)

중/대기업 핵심 제품 개발 부서의 경우, 고급 인재가 많이 있는 곳이고, 근무 시간이 길 수 있지만 대우는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 생각에 ‘치킨집’ 이야기가 나오는 곳은 IT 부서와 하청 업체, 그리고 일부 게임 개발사가 아닐까 한다. 기업의 ‘IT 부서’는 핵심 부서라기보다는 기업의 전산을 책임지는 부서인 경우가 많아 예산이 충분치 않다. 또한 소위 ‘하청 업체’는 처음부터 품질보다는 치열한 가격 경쟁으로 시작되는 곳이므로 엔지니어 뿐 아니라 누구도 좋은 대우를 받기 쉽지 않다. 기업/국가 연구소의 경우 인재의 질이 높고, 업무 강도가 높지는 않지만 그만큼 보수가 낮을 것 같다.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사의 경우 경력직은 좋은 대우를 받겠지만, 주니어급 (대학 졸업 후 1~3년차) 엔지니어들의 비율이 높은 많큼 평균 보수가 높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에서도 고급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대우가 좋다. 꼭 연봉 이야기가 아니라, 개발자들이 기분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한다는 뜻이다. 이 분야에 해당하는 비트윈, 핸드 스튜디오, 노리(KnowRe), 리디북스(Ridibooks), 아이디인큐(ID Incu) 모두 사무실 방문했을 때 분위기가 참 좋았다.

실리콘밸리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2번, 3번, 그리고 5번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2, 3번 같은 IT/인프라 관리는 단가가 낮은 인도나 중국에 아웃소싱하거나 클라우드 서비를 이용한다 (대신 확장성 높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실리콘밸리에 많다). 한편, 1번과 6번에 해당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많이 발전해 있기 때문에, 대우는 좋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경제에서 분야별로 차지하는 비중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중, 대기업 핵심 제품 개발 부서 (20%)
2. 중, 대기업 IT 부서 (5%)
3. 하청 업체 / 에이전시 (5%)
4. 기업, 국가 연구소 (5%)
5. 온라인/모바일 게임 개발사 (10%)
6. 고성장 스타트업 (35%)
7. 기타 (20%)

한국 vs 실리콘밸리 개발자 직군 분포
한국 vs 실리콘밸리 개발자 직군 분포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개발자 대우를 잘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옮겨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것이 맞다. 정부 지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가지 길이 있다.

한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프트웨어가 해결하는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따라서 부가가치가 올라가는 것
고부가가치 시장만 대상으로 해도 충분히 수익이 날 수 있도록 더 넓은 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파는 것
1번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경제가 지금보다 더 발전할 것이고, 그러면 점차 내수 시장이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옮겨갈 것은 분명하다.

2번의 경우 항상 이야기하는 ‘해외 진출’인데, 사실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 국가에 판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왜 쉽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소프트뱅크 벤처스 문규학 대표님이 2009년에 썼던 블로그, ‘한국벤처해외진출잔혹사‘에서 아주 잘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던 패션/화장품 분야에서 일본이 선전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분야라고 해서 못할 것은 없다고 본다. 조금씩 벽을 깨며 세상을 놀라게 하다보면 언젠가 인식이 바뀌고, 장벽이 무너지지 않을까.

글 : 조성문
출처 : http://goo.gl/kNrJ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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