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크로스파이어로 유명한 스마일게이트의 새로운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이자 보금자리가 되는 오렌지팜(Oranage Farm) 개소식에 다녀왔습니다. 최근 스마일게이트가 최대주주로 올라선 ‘애니팡’을 만든 선데이토즈 이정웅 대표도 오랜만에 얼굴을 봤군요. 오렌지팜 자체에 대해서도 기대가 많이 되지만, 어제 많은 시간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저 자신의 개인사 일부에 대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것이, 이제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완전히 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급하게 정리를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은 많은 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PC통신의 시대였습니다. 저도 PC통신을 매우 일찍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역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동호회 활동들입니다. PC서브의 셈틀소리, 케텔의 애니동, 소리모꼬지, OS동호회, 비주얼파워툴 동호회 등 기억에 남는 곳들이 많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동호회의 게시판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제 만남을 가지고 다양한 인연을 남기게 된 경우도 많았는데, 남상규 대표와의 만남도 그랬습니다. 이제는 기억이 희미해서 처음에 어떻게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추측하기로는 애니동 아니면 소리모꼬지를 통해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한참 빠져있었던 미디 음악과 특히 게임에서 롤랜드의 미디기기를 지원하는 명작 게임음악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임은 시에라온라인의 1988년 작품인 실프히드(Silpheed)였습니다. 롤랜드 MT-32를 지원했던 이 게임음악은 정말 당대 최고의 명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튜브를 뒤져보니 있네요. 여러분들도 한 번 들어보시죠.
오늘날의 잣대로는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당시로는 정말 파격적이었던 음악이죠. 이런 토론을 하다가 당시 많은 사람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던 용산전자상가에서 가끔 남상규 대표를 만났습니다. 주로 만났던 장소는 지금은 사라진 한국의 게임 제작사인 만트라입니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만트라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게임 소프트를 유통(?)한 곳입니다 (사실 불법복제를 많이 했지요). 그 당시 사장님 얼굴은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성함이나 이런 것은 이후에 연이 닿지 않아서 생각이 나지 않네요. 여튼 저보다 나이가 몇 살 많은 남상규 대표와 형-동생하면서 자주 봤는데, 당시 남상규 대표는 음악작곡자로 국내의 여러 드라마나 광고음악 등을 많이 만들었고, 나름 알려진 음악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워낙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죠.
그러던 어느날, 남상규 대표가 포항공대의 한 친구가 너무 멋진 횡스크롤 게임엔진을 만든 것 같다면서 같이 보자고 했습니다. 이 때가 1990년으로 저는 의과대학 1학년을 다니던 시절이죠. 그 형님의 이름은 김성식이라는 분이었는데, 실제로 연락을 해서 만나서 제일 연배가 위였던 남상규 형님이 팀장이자 대표를 맡고, 프로그래밍 김성식, 그래픽디자인 이장원으로 만들어진 소프트액션이 탄생합니다. 당시 국산게임으로 세계적인 게임회사가 되겠다는 당찬포부가 있었죠. 당시 아지트는 북한산 밑에 자리한 (구파발 역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한적한 곳) 남상규 대표의 집이었는데, 밤새 작업하고 시끄럽게 연주하고 하더라도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는 아주 좋은 개발(?)환경을 갖춘 곳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실력도 달리고, 의과대학 재학생이고 하는 핸디캡이 있어서 정식 팀원은 아니고, 가끔 들러서 구경하고 심부름(?) 비슷하게 하는 정도로 형님들의 재미난 작업을 지켜봤지요. 그러다가, 역시 학교공부 등의 여러 이유로 작품 출시를 보지 못하고 발길을 끊게 되었습니다.
여튼 이 분들의 작업이 결실을 맺어서 1992년 4월 20일 SKC 소프트랜드를 통해서 MS-DOS용 국산 횡스크롤 슈팅게임이 출시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폭스레인저(Fox Ranger)입니다. 우리나라 국산 PC게임 사상 처음으로 1만 카피를 넘긴 제품이고, 많은 사람들이 최초의 상용 국산 PC 게임으로 기억하는 작품입니다.
PC통신을 통해서 1스테이지 데모 버전을 배포했는데, 케텔에 업로드한 데모가 순식간에 다운로드가 급증하면서 성공을 예고했는데, 이는 오늘날로 치자면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이 난 것이죠. 무엇보다 이 게임에는 남상규 대표의 영향으로 정말 뛰어난 게임음악으로도 유명했는데, 심지어는 1993년에는 이후의 소프트액션의 작품들의 게임 사운드트랙을 모은 음반까지 발매가 되었습니다. 아래에 폭스레인저 게임영상하나를 임베딩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연락이 끊어져서 알 수가 없네요. 혹시라도 남상규 대표가 이 글을 보시면 14년 전의 일이라 기억을 하실지 모르겠지만, 꼭 연락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의 인생에서 게임을 뺀다면 너무나 많은 것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런 경험들이 현재의 저를 만들어 주었겠지요 …
글 : 하이컨셉
출처 : http://goo.gl/vNCm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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