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 아침, 사고 싶은 물건은 많고, 밖에 나가기는 귀찮다. 일주일 중 하루는 머리를 감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런 행동을 세속의 삶에 찌든 직장인의 일탈이라 감히 정의하고 싶다. 물론 머리는 감지 않는데, 세수를 한다는 것은 얼굴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이니, 내 몸에게 오늘은 ‘평등의 날’이라 선사한다.
여름이다. 화장품도 사고 싶고, 탐스도 사고 싶다. 그런데 나가기가 정말정말 귀찮다. 하지만 한국엔 온라인쇼핑샵이 있다. 엉클어진 머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 전원을 켠다. 어디를 접속할까? 브랜드 상품들의 온라인 샵보다는, 아직까진 모든 브랜드들이 모여있는 오픈마켓을 선호하는 습성이있기에 11번가에 접속을 한다.
한참동안 메인을 들여다보고있다. 무얼 먼저 사야할까, 어느 카데고리를 들어가야 할까. 오픈마켓 던전에 빠져버리면 시간이 어찌흐르는지도 모른 채, 오후 시간을 다 버릴 수 있으니 최적경로를 찾아야한다… 화장품. 화장품을 사야하니 남성 화장품 페이지로 이동을 한다.
마음에 드는 화장품을 찾았다. 하지만 한 가지 요소를 더 고려해야한다. 배송 기간 역시 중요하다, 화장품은 오늘 내일 수명을 다 할 것 같은데, 택배가 일주일 후에 온다면 내 피부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다. 화장품이 내 방까지 배달되는 시간은 2일이 넘지 않기 때문이다.
2.
화장품을 2일만에 받아 볼 수 있다니? 온라인에서 구매한 물건을 택배로 받을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 갑작스레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게 다가왔다. 화장품과 택배는 어떤 관계가 있기에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고객이 받아 볼 수 있는 것일까. 궁금증이 생겨 구글트렌드에서 ‘택배’와 ‘화장품’의 검색 빈도를 찾아보았다. 아래 사진에서 ‘택배’와 ‘화장품’의 검색 트렌드를 볼 수 있다.
비슷하잖아!!!!! 파란색은 택배, 붉은 색은 화장품의 검색 트렌드이다. 2011년 4월, 2012년 1월 중순 높게 솟은 두 꼭지점을 보자. 이게 어찌된 현상일까. 화장품과 택배 산업은 전혀 다른 업계이다. 화장품은 미용 산업에 속하고, 택배는 운송과 물류산업에 속하는데 2005년 부터 시작된, 이 둘의 검색량 통계 그래프가 어찌 이리 비슷하게 나오는 것일까? (구글 트렌드의 검색량은 검색된 ‘검색어의’ 트렌드의 흐름과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 글이 쓰여진다. ) 그래프를 보면 2011년 이후 두 검색어의 검색량이 급등한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두 산업의 검색량이 저렇게 늘었을까.
ㄱ. 2011년이 되면서 화장품 산업이 본격적으로 온라인 유통 시장에 진입하였고, 온라인으로 구매된 화장품들이 택배로 배달되기 시작했다.
ㄴ. 택배산업이 발달되어 배송기간이 짧아짐에 따라, 화장품을 비롯한 많은 생필품들을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경향이 늘어났다.
3.
화장품과 택배의 검색트렌드는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다. 결국 두 검색어는 독립변수가 아닌, 서로간에 영향을 미치는 상관변수이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어떤 ‘요소’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연결된 것일까? 단순히 연관 ‘검색어’관계가 아니라, ‘화장품’과 ‘택배’로 대표되는 산업들 사이의 연관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관계가 어떻든 답은 ‘온라인에서 물건 구매가 편리해졌기때문이다.’
결국 온라인에서 물건 구매가 편해진 가장 큰 이유는 ‘오픈마켓’의 등장이다. 기존 오프라인 스토어샵에서만 화장품을 구입해야했던 고객들은 빠른 배송과 낮은 가격을 강점으로 내새운 오픈 마켓으로 이동 비롯한 온라인 스토어로 이동하였을 것이고, 온라인에서 구매된 상품들을 배송해야하기에 택배 산업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O2O의 정의와 일맥상통하지만, 이 개념이 한순간 새롭게 나타난 것도 아니고, 글의 주제가 O2O가 아니기 때문에 넘어간다.)
이 논리가 맞다면 ‘오픈마켓, 화장품, 그리고 택배산업’이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논리의 진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구글 트렌드를 돌려보았다.
트렌드 검색 그래프의 모양이 똑같다. 옥션과 G마켓은 2006년부터, 그리고11번가의 검색 트렌드는 2009년 부터 똑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화장품과 택배 트렌드를 추가해보겠다.
화장품과 택배 트렌드의 흐름과, 오픈마켓 3사의 검색트렌드가 2010년 정도부터 똑같이 움직인다. 2011, 2012년에 보이는 급격한 쌍봉과 검색량의 오르내림이 90%이상 일치한다. 검색 트렌드의 움직임의 비슷하다는 것은, 실제 산업의 트렌드와 소비자의 관심도 동일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오픈마켓이라는 공룡의 등장으로, 오프라인을 기반의 유통 산업이 온라인으로 이동했고, 이에 따라 택배산업이 성장 할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물론 디테일한 data와 흐름을 통해 이 연관 트렌드의 발생에 다른 요인이 들어갔다는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크게 열어두고 있다.
4.
추가적으로 오픈마켓과 택배 산업의 성장에 일조한 지역이 궁금해졌다. 오픈마켓과 화장품의 검색 트렌드가(검색한다는 말은 필요에 의해서 검색을 하는 것일 거고, 필요로 한다는 것은 상품 구매를 하길 원한다는 상식을 전제) 높은 지역은 어느 도시일까.
11번가를 가장 많이 검색한 지역은 거제시
옥션 역시 거제시가 1위를 차지.
마지막으로 지마켓 역시 거제시가 1위를 차지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서울의 인구가 다른 도시들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어떤 검색어라도 웹에서 검색을 하는 빈도가 높게 나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오픈마켓을 가장 많이 검색한 지역으로 서울이 나올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거제와 부산등 남부지역의 순위가 수도권을 압도하고있다.
(이 역시 검색 트렌드의 빈도는 실제 오픈마켓의 이용 빈도와 동치라는 가정으로 글이 진행된다.) 물론 지역별 검색량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누적 빈도를 바탕으로 특정 시점,(예를 들어 2013년 7월)등의 검색량을 세부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상식’을 깨기엔 충분한 움직임이다.
결국 거제에서의 오픈마켓 검색 빈도가 높은 이유에 대해 개인적으로 내린 답은 ‘사회적 인프라망의 차이’였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선 굳이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사지 않아도 된다. 집 밖을 나서면 보이는게 대형마트이다. 또한 트렌드를 리드하는 명동, 홍대의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어차피 매일 지나는 길, 오랜시간 검색하는 것보단 집 앞에서 구입하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마음도 편하다. 또한 미리 온라인에서 검색해보고 마음에 드는 상품을 직접 만져보고 입어보기위해 매장에 방문 구매 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난다. 눈앞에 트렌디한 상품들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게 되는 구매 패턴이다.
하지만 거제와 같은 도서 지역, 섬지역, 또는 부산과 같은 경우 한국 제2의 도시이지만 서울과 지리젹 거리가 가장 떨어져있다. 거리의 차이는 트렌드와 욕망의 차이를 불러 일으키고,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유행하는 트렌디한 아이템을 쉽게 구입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도권이 아닌 한국의 중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고객은, 매일매일 뉴스에 나오는 상품들을 보며, ‘나도 저걸 갖고 싶다.’는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오픈마켓을 통해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오픈마켓의 트렌드 검색 비중이 수도권을 앞지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경향은 몇 년 전까지 열풍을 일으켰던 ‘롱테일 법칙’과 관계있다. 중남부지방의 도시들의 검색 트렌드 합이 수도권의 검색 트렌드를 넘어선 그 자체가 롱테일 법칙으로 설명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롱테일(The Long Tail), 또는 롱테일 현상은 파레토 법칙을 그래프에 나타냈을 때 꼬리처럼 긴 부분을 형성하는 80%의 부분을 일컫는다.파레토 법칙에 의한 80:20의 집중현상을 나타내는 그래프에서는 발생확률 혹은 발생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새로운 물류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 부분도 경제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를 롱테일이라고 한다.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며 양의 X축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그래프의 모습에서 나온 말이다. 2004년 와이어드지 20월호에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되었으며 이후 책으로 나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러한 분포를 보여주는 통계학적 예로는 부의 분포, 단어의 사용빈도 등이 있으며 크리스 앤더슨에 의해 소개된 롱테일부분을 경제적으로 잘 활용한 사례로는 아마존의 다양한 서적 판매 사례 등이 있다.
by 위키피디아 wikipedia
롱테일 법칙에 따라, 서울이 아닌 그외 지역들에서 발생된 오픈마켓 검색 트래픽이 서울의 검색 트래픽을 압도한 것이다. 사회적, 문화적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수도권보다, 트렌드 전파가 늦고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및 도서지역에 사는 사람들 역시 좋은 물건, 새로운 물품 등을 갖고 싶어 욕구를 쉽고 빠르게 해결해주었던 도구가 바로 ‘오픈마켓’인 것이다.
이와 같은 흐름이 결국은 화장품과 택배 업계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그 결과 오픈마켓의 검색 트렌드와, 다른 산업(온라인 시장으로 진출한 산업 및 긍정적 외부효과를 얻을 수 있었던)등에 영향을 주어 트렌드 그래프의 움직임이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화장품과 택배로 시작했던 궁금증은, 오픈마켓과 거제시로 결론을 내리게되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ㄱ. 왜 2011년과 2012년에 오픈마켓의 검색 빈도가 높아졌을까?
ㄴ. 오픈마켓과 화장품, 택배의 관계에서 택배를 제외하고 ‘쿠폰’,’이마트’, ‘백화점’등을 넣어도 비슷한 트렌드가 나오는데 이 이유는?
ㄷ. 검색트렌드가 높은 지역이 거제시라고 나왔는데, 왜 하필 거제시일까?(현대중공업등 공업도시라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으로 귀결되는 3가지 궁금증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현상들에 궁금증을 가진다면 상식 밖의 결론을 얻게 된다. 스타트업, 1인 벤처의 고민 중 한가지는 제대로 된 서비스, 비즈니스 모댈을 만드는 것이다. 문득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도 ‘이건 누가하는데, 이건 나왔던건데, 이게 되려나?’는 생각으로 멈칫하게된다. 수 십 시간 고민을 해봤고 오늘도 머리를 쥐어 틀고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는 없다고 한다. 결국 기존의 서비스에서 한 부분의 장점만 극대화하여도, 충분히 혁신적이라고 평가받을 서비스가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호텔에서 Air B&B가 나왔고, 블로그애서 인스타그램이 나왔다. 문자메시지에서 위챗과 같은 메시징 서비스가 나왔으며, yo가 나왔다.
결국 기존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트렌드에 맞게, 고객의 입맞에 맞게 개선하느냐가 서비스 성공의 요인이 된다. 트렌드는 이유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혼자 움직이지도 않는다. 분명 감지하지 못한, ‘어떠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드러난 현상의 이면을 관찰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IT 스타트업의 시대가 도래했다. 한국의 trend catcher는 누가 될 것인가.
‘화장품은 2틀만에 배송된다.’
작성자 : AJ
블로그 : http://daylatte.com/?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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