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안 보이는 사람한테 스마트폰을 파는 놈들도 참…”
김하늘, 유승호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에서 나오는 대사다. 극 중 시각장애인인 수아(김하늘 분)에게 기섭(유승호 분)이 비아냥거리며 던진 말이다. 사실 피처폰은 물리적 자판을 사용하기 때문에 손끝의 감각으로 번호를 눌러 사용할 수 있지만, 스마트폰은 화면에 나타난 가상 자판을 터치해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에게 스마트폰은 사용하기 어렵고, 불필요한 물건일까? 아니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TTS(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나 STT(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해주는 기능) 등 사용자 접근성을 높이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저시력자를 위해 텍스트 크기를 키워주는 기능도 있다.
영화 블라인드의 경우 수아는 스마트폰으로 위기 상황에서 탈출했으며,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주인공 오용(송혜교 분)역시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사용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시각장애인(29만여 명) 중 7%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다누온은 장애인에 관한 인식개선을 위해 힘쓰는 기업으로, 서울 성북구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 센터의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이다. 다누온이라는 기업명은 다 함께 누리는 따뜻한(溫) 콘텐츠라는 의미다. 다누온 김용태 대표를 만나 명함을 주고받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명함에는 그의 이름과 회사 이름, 전화번호 등이 양각 처리된 점자로 새겨져 있다.
“많은 분이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합니까?’라고 말하지만,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을 쓰는 시각장애인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LG전자가 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1,500대를 무상 보급했고, 올해는 삼성전자가 2,000대를 기부했습니다”
이런 것을 봤을 때, 국내 시각장애인 중 3만 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쓸 것으로 추측한다. 그가 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하드웨어 공급은 있지만, 그들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드물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대부분의 국민이 사용하는 모바일 게임과 스마트폰을 통해 장애인에 관한 인식을 제고하자고 결정했지요”
그는 시각장애인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별로 없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즐기는 게임을 만들었다. 바로 ‘소울메이트 리나&하나’다. 시각장애인 리나가 안내견 하나의 도움을 받아 이리저리 움직이며 목적지를 찾아가는 모습을 게임에 담았다. 조작 방식은 스마트폰을 좌우로 기울이는 것으로, 화면을 볼 수 없는 사람도 소리만 들으며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는 내레이션도 있다.
실제로 게임을 기획/제작하는 과정에 시각장애인이 참여해, 그들의 의견도 반영했다. 이 게임의 경우 지난해 한국 콘텐츠 진흥원이 주관하는 ‘제2회 대한민국 기능성 게임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장애재활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게임이 아니라,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입니다. 그들만을 위한 게임을 만든다면, 이것 역시 편견을 조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게임이 많이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그는 소울메이트 리나&하나를 시험작이라고 표현했다. 이 분야의 시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주변에서는 ‘과연 이게 될까’라고 했지만, 이런 종류의 게임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었다. 지난해까지는 회의적인 사람이 많았는데, 결과물을 만들기 시작하니 주변 반응이 될 것 같다 혹은 시장을 만들 수 있겠다 등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학습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 계획입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국악 학습용 앱입니다. 조선 세종 때 시각장애인은 앞을 볼 수 없지만, 소리를 잘 들으니 내전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맹인악공(관현맹인)으로 활동했었는데,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다누온은 앱 개발 외에도 홈페이지 제작, 교육 및 컨설팅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홈페이지 제작의 경우 웹 접근성 준수가 목표다. 지난해 4월 11일부터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웹 접근성이 법제화 됐는데, 이에 따라 모든 법인 사이트는 장애인이 해당 사이트를 차별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참고기사: http://it.donga.com/13966/).
현재 그가 입주해있는 성북구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 센터는 앱 개발자를 전문 육성해주는 곳이다. 장소나 기기는 물론, 개발에 필요한 유료 소프트웨어까지 지원해준다. 일반 투자자나 인큐베이팅 센터와 달리, 다누온처럼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닌 사업도 지원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처음 개발을 마음먹었을 때 개발을 위한 자본/인력이 필요했는데, 그러던 중 1인 창조기업 센터라는 곳을 알게 됐고, 적합한 곳을 찾다가 성북구 센터에 입주했습니다. 저와 함께 입주 중인 개발자도 많아, 개발이나 기획에 관한 조언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는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오프라인 활동도 진행 중이다. 과거에는 UCC 공모전에 시각장애인이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한 동영상을 출품한 바 있으며, 이 밖에도 ‘손끝으로 동물 체험하기’, ‘시각장애인 요트 체험’ 등의 행사도 열어왔다. 법인을 설립하기 전 진행해왔던 ‘소나 프로젝트’다.
“장애인은 도움을 받기만하는 존재라는 편견이 많은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취약계층 김장 나누기입니다. 시각장애인 봉사자가 직접 김장을 담가 지역사회의 취약계층에 기부하는 행사였죠. 온라인 활동도 중요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프라인으로 실제 행동을 보여주고 참여할 수 있는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는 남녀노소, 장애여부를 막론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한다. 게임이나 교육용 앱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으로 영역을 확장해 장애인도 실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아이디어도 고민 중이다.
“벤처 투자자를 만나면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도, 사회적 벤처기업이라고 소개 하면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생각인가 봅니다. 저는 돈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해 초 카카오 사옥 앞에서 시각장애인 이경호 씨가 ‘카카오톡에서 제공하는 이모티콘을 소리로 읽어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용태 대표는 기업이 이런 부분을 고민해서 개발을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이런 세상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 앞장서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쉽진 않겠지만, 장애에 관한 편견이 없는 세상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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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상우 기자(IT동아)
출처 : http://goo.gl/4pBL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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