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소송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피해를 배상하라 소리 지르는 고객들도 없었다. 그럼에도 자사의 고객정보를 도둑 맞은 회사가 고객신뢰를 다시 찾고 싶다며 고객들에게 2천억원을 보상하겠다 고개를 숙였다. 내부와 외부로 뼈를 깎는 각오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리도 피해자다!”라 항변하는 일부 기업들과는 조금 달랐다. 일본 최대 교육기업 베네세의 이야기다.
2014년 7월 9일 일본의 최대 교육 및 출판 기업인 베네세홀딩스가 기자회견을 자처했다. 이 기자회견에서 베네세홀딩스의 하라다 에이코(原田泳幸) 회장은 계열사인 베네세가 보유했던 고객정보 약 2070만건이 유출되었다고 밝혔다.
이번 규모는 일본 기업 역사상 고객정보 유출건으로 최대규모로 알려졌다. 유출된 정보는 취학이전과 초등학생 그리고 입시코스에 가입해 있는 어린이들 및 중고생들 그리고 그 부모들의 개인정보들로 성명, 생년월일, 주소 및 전화번호였다.
베네세홀딩스측은 해당 고객정보들이 외부인력에 의해 유출되었으며, 불법적으로 경쟁사 등에 판매된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기관들은 이 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베네세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부에서는 얼마 전 취임한 하라다 에이코(原田泳幸) 베네세홀딩스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평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 일본 경찰은 베네세로부터 고객정보를 도둑질 해 판매한 범인을 잡았다. 베네세의 서버를 관리하는 협력업체의 일용직 직원이던 그는 베네세의 서버로부터 몰래 고객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아 유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베네사홀딩스는 경찰의 범인 검거와 함께 다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하라다 회장은 “소중한 어린이의 공부와 관련된 기업으로써 이런 사태를 일으킨 데 대해 다시 한 번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와 함께 깜짝 놀랄만한 보상책을 제시했다. “고객들에게 200억엔(약 2000억원)을 보상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통신교육 수강생의 교육비 할인이나 회원 계약을 탈퇴하는 경우의 위약금면제 등의 대책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런 대규모의 보상액 발표가 소송이나 고객의 보상 요구들이 미처 생겨나지 않은 상황에서 마련된 것이라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유출된 고객정보가 성명이나 생년월일 등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라 상대적으로 위해도가 높지 않은 정보라고 지적하며 베네세홀딩스의 ‘뼈를 깎는 보상책’에 대해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하라다 회장은 “우리는 이번 사고를 아주 중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 만큼 진지하게 보상하고 용서를 빌겠다는 전략을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별도로 중립적인 조사단을 구성해 유사한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여러 시스템적인 보완을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최근 들어 국내 교육업체들에서도 고객정보유출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다. 수년 전에 이미 유출된 고객정보관련 사안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면서 각 교육업체들의 때늦은 대응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일반적 대응 방식들을 하나 하나 분석해 보면 일본과 한국간 고객정보유출 사고를 받아 들이는 자세와 철학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기업에게 고객정보유출건은 사실 위기라고 정의하기도 힘든 성격이 있다. 외부로 유출 사실이 잘 밝혀지기 힘든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가 입을 다물고 있다면 딱히 고개정보유출건이 외부로 밝혀질 가능성도 적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고객정보를 도둑질한 자가 공개 협박을 하거나, 외부 규제기관이 수사 및 적발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유출 사실을 공개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나서 ‘우리 회사가 고객정보를 도둑 맞았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그렇게 도둑맞은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었답니다’라 자랑(?)할 회사들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베네세홀딩스는 이런 면에서 달랐다. 먼저 자사 보유 고객정보들이 유출되었다 실토했고, 범인을 잡아 달라고 정부에 부탁했다. 범인이 잡히자 베네세홀딩스는 고민과 고민 끝에 ‘우리들의 각오를 보여주자. 그리고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하겠다’ 결심 했다. 심지어 고객들이 대부분 회사에게 피해를 보상하라 이야기 하기 전에 베네세홀딩스는 2천억원을 내놓고 고개를 다시 숙였다.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다투려 하지도 않았다.
하라다 회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고객님들로부터의 신뢰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경영자로 평가 받는 하라다 회장은 이렇게 자신의 뼈를 내 놓아 각골난망(刻骨難忘)의 자세로 소중한 고객신뢰를 다시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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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는 상황 관리와 커뮤니케이션 관리로 나뉩니다. 이 글은 위기 발생 후 기업, 정부, 공기관등이 위기관리를 위해 실행 한 커뮤니케이션 중 하나의 성공 포인트만을 잡아 예시한 것입니다. 즉, 이 원 포인트가 해당 케이스 위기관리 전반의 성공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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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용민
출처 : http://goo.gl/yjDD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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