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은 평시와는 다른 게 당연하다. 평소와는 달리 되는 게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지는 상황이 위기상황이다. 평소 그렇게 쉽던 휴대전화 통화도 상호 어려워 진다. 대표님에게 급히 상황 보고를 하려 해도 이상하게 대표님이 어디 계신지 연락이 힘들다. 핵심 임원들이 서로 전화통화들을 하면서 심각한 논의를 해야 하는데, 각자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 어디론가 전화들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누구인지 잘 파악이 안 된다.
평소 같으면 일상 업무관리가 잘 되어가던 현장에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된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팀장급들과 달리 아무것도 명령 받지 못한 직원들은 멍하니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마음만 조급해 진다. 간단한 의사결정도 온통 핵심 인력들간 커뮤니케이션이 마비가 되어 적시에 내려지기가 힘들다. 거기에다가 외부 경찰, 시청, 규제기관들, 시민단체, 언론, 고객, 노조 등이 불같이 들고 일어나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설명을 해 달라!’ 폭포 같은 요청을 받게 되면 상황은 거의 재앙 수준이 되어 버린다.
밖의 이해관계자들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해당 회사 대표이사가 긴급 회의를 소집 해 수많은 임원들과 핵심 인력들이 정렬 한 가운데 종합적인 상황 보고를 받고 있을 것이라 상상 한다. 전략적인 위기대응을 위해 전문가들이 도열한 가운데 360도 분석과 신중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180도 다르다. 그런 상황은 영화에서만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이사는 일단 위기관리 회의를 소집하지 않는다. 먼저 주요 임원들의 상황보고를 휴대폰이나 일대일 면대면으로 받기 즐긴다. 나름대로 상황을 파악한다는 게 목적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대표이사실 앞에 기다랗게 줄을 서서 각 부서장들이 각자 상황 보고를 하기도 한다. 생산이 먼저, 기획이 그 다음, 인사가 그 다음, 마케팅, 영업, 법무, 홍보…이런 식으로 부서장들이 줄을 서서 대기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대표이사는 상황을 듣다가 의문 나는 사항이 있으면 비서에게 이렇게 요청한다. “법무실장 좀 들어오라고 해요” 호출 받은 법무실장은 대표이사의 질문에 답변 하고 다시 자기 사무실로 돌아간다. “홍보실장은 자리에 있나?” 다시 홍보실장이 호출을 받아 대표이사의 질문에 답을 한다. 여러 층 엘리베이터로 올라 다니고, 대표이사로부터 어떤 질문이 나올지 몰라 부서장들은 노심초사다. 화장실도 못 가고 대기한다. 부서원들은 대표이사께서 물으실 만한 상황 정보들을 취합하고 문서화 하느냐 정신이 없다. “빨리 빨리” 이런 주문이 문서작업을 하는 과장과 대리들에게 연속으로 전달된다. 사실 이런 “빨리 빨리”라는 명령은 현장에 있어야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부서간 종합적 상황판단과 협업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위기 발생 시 부서별 대표이사 보고서들을 보면 기획과 마케팅과 법무와 홍보와 생산 그리고 고객센터 등에서 올라온 보고서의 포맷과 내용들이 대부분 상이하다. 이 포맷이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보고서인지도 헷갈릴 정도인 기업들이 있다. 부서장 개인적 관점에서 각 부서별 보고 포맷이 결정되다 보니 서로 다르다. 수치나 시간 그리고 여러 팩트 들이 실무자들 사이에서 공유 되어 짜깁기 되다 보니 많은 불확실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당연히 대표이사는 “어떤 수치가 맞는 건가? 이거 맨 처음에 보고 올린 마케팅 상무 들어오라고 해봐” 이런 식으로 또 수북이 쌓인 보고서들을 크로스 체킹 한다. 시간은 마냥 하염없이 흘러간다. 의사결정까지의 속력이 당연히 느릴 수 밖에 없다. 일선에서는 빨리 의사결정이 내려와야 하는데 계속 지연되는 타임라인들을 보면서 속이 끓는다. 결국 일선에서는 변화되는 상황을 어떻게라도 관리하려 시도하게 되고, 개인적 대응이나 애드립들이 난무한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남발되거나, 반대로 일부는 아예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접촉을 끊어 개인적으로 정신적 안정을 꾀하려 시도하기도 한다.
위기가 발생 한 기업들에게 항상 반복적으로 질문한다. “왜 서로 빨리 마주 앉지 않으십니까?”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한 질문이다. 위기관리 체계라는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첫 걸음이다. 위기가 발생하자마자 서로 마주 앉는 기업은 위기관리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대표이사가 위기관리팀을 소집하는 그 단계부터가 위기관리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비상연락망 체계가 존재한다. 위기관리센터나 워룸 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구축된다. 핵심 담당자 부재 등을 대비하여 대체인력들이 지정된다. 또한 모든 체계 구축과 동시에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과 시뮬레이션이 진행된다.
마주 앉지 않고 위기관리를 잘 해 낼 수 있는 기업들은 흔치 않다. 평소 일상 경영 의사결정 라인에서 벗어나 있는 오너 체계라고 하면 전문경영인들을 중심으로 해 일부 대응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도 대형 위기 시에는 마주 앉지 않고서는 제한이 많다. 아무리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해도 서로가 서로를 한꺼번에 마주 보면서 통합적 분석과 의사결정을 하는 것 만큼은 효율성이 없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돌발적 대형 사고나 사건 등이 발생할 때 서로 마주 앉는 시간이 제일 빠르다. 그러나 점진적 논란이나 문제 등에 처했을 때는 위기관리팀의 시간관리가 상당히 늘어진다. 대표이사 보고가 논란이나 문제 감지 후 수일이 걸리는 경우들도 흔하다. 시장에서 부정적 논란이 생겼는데 그 상황 추이를 감지 한 영업임원들이 대응 의사결정 회의를 9일 후에 하는 기업을 본적도 있다. 영업임원들이 “상황이 심각하니 경쟁사의 논란 확산 시도에 강력 대응하자” 결정 후에도 실제 현장에서의 실행 개시는 5일이상 걸렸다. 이 또한 심각성을 빨린 분석 해 적시에 서로 마주 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마주 앉지는 않아도 상황추이 보고는 계속 받고 있었어요”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 마주 앉지 않은 채 이메일로 보고되는 추이만으로 위협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일관되게 바라보는 경영진 시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보통 각 부서장들간에 상황 인식에 이견이 생긴다. 법무에서는 ‘별 것 아닐 것’이라 보는 상황에 대해 홍보에서는 ‘불안한 상황이고, 실제 언론에게 알려지면 폭발적일 상황’으로 인식한다. 영업에서는 ‘이걸 해결 안 하면 나중에 이것 저것 다 엮여 들어 갈 것’이라 고민한다. 마케팅에서는 ‘이건 홍보에서만 잘 막아 주면 이상 없을 것’이하고 안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통합되고 일관된 하나의 상황인식이 없으니 나중에 때를 놓치고 위기 대응 회의가 소집되면 부서장들의 인상이 각기 다르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OO부서와 OO부서는 그렇게 수선들을 떠느냐?”하는 반응들을 보이는 부서들이 꼭 있다. 이에 대해 “그쪽에서는 만약 상황이 안 좋은 쪽으로 간다면 책임을 질 거냐?” 반격하는 임원들이 생겨난다.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하지만 대표이사에게 각각의 부서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점차 상황에 대한 통합적 인식이 어느 정도 구성되고, 여러 관리 지시들이 하달된다.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표이사가 주재하는 위기 대응 회의에서는 단 한 시간 만에 내려질 의사결정이 왜 일주일이나 걸렸을까를 한번 생각 해 보자는 이야기다. 얼굴을 서로 마주해 함께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점을 상기해 보자. 서로가 서로에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고 믿을 뿐이지, 실제 커뮤니케이션은 되지 않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어느 기업에서는 부서간 파티션을 정보가 하나 넘어 가는데 한 달이 걸린다. 소위 말하는 사일로(silo)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은 반대로 무슨 일이 있으면 대표 이사 실에서 스탠딩 미팅이 열린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내용을 여러 임원들이 마주 보며 서서 대표이사에게 보고하고 즉석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다. 정보가 파티션을 하나 넘어가는데 한 달이 걸리는 기업인지, 스탠딩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즉석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기업인지. 위기가 발생했을 때 우리 회사는 어떤 유형인지 한번 생각 해 보자. 그리고 무조건 마주 앉아라도 보자. 스탠딩 까지는 욕심내지 말고 말이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goo.gl/ayhk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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