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매체환경이 변화하면서 기업이나 정부, 조직, 기관 그리고 유명인사들로부터 발표되는 사과문들은 그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개인 블로그 사과에서 트위터, 페이스북, 또는 카카오톡 사과들까지 그 유형도 셀 수 없이 다양화 돼가고 있다. 물론 기자들에게 직접 나와 머리를 조아리는 중대 사과도 예전보다 훨씬 흔해 졌다.
일부 위기관리 전문가들은 “사과할 행위 자체를 미연에 방지했었더라면, 사과 행위들이 이런 정도로 다양하고 흔하게 늘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 지적 하기도 한다. 예전보다 기업, 정부, 조직, 기관 그리고 유명인사들이 사과해야 할 경우들이 많아진 이유는 주로 매체환경의 변화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사회에 비밀이 없어져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 만큼 투명해져서 거짓말이나 숨김 또는 회피가 통하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다양하게 발달되어 여론을 형성하는 온라인 및 개인매체의 성장이 사회적 투명성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투명성 강화로 인한 사과들이 점차 반복되어 가면서 사과 자체가 하나의 ‘통과의례(ritual)’화 되어간다는 점이다. 부정적 논란에 휩싸이면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주체들이 ‘사과’를 돌파 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의외로 간단하게 사과하면 여론들이 잊어주거나 용서 해주는 경우들을 꽤 목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여기 저기 사과 의례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기업, 정부, 조직, 기관 그리고 유명인사들 입장에서는 간단히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문을 발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 만으로도 자신에게 향한 여론을 상당부분 관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기 시작한 듯 하다. 그 자신감으로 인해 사과문 등의 형식에서 창조성(?)을 발휘하거나 광고 카피처럼 매력적인 문구로 사과 메시지를 꾸미는 웃지 못할 상황들까지 목격 되고 있다.
사과를 한다는 행위 자체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조직들에게 최고 수준의 정치적, 사회적, 법적, 윤리적 행위로 해석되어야 한다. 유명인사의 사과도 그냥 개인의 “미안(sorry)”과 같은 통과의례로 해석될 수는 없다. 사과란 해당 주체가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를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한 것이다. 그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서 그 책임에 합당한 여러 어려운 약속들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사과’란 그 내용에 있어 주체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조아리며 태풍이 물러가기를 바랄 수 있는 중립적인 내용들로만 채워서는 그 효과나 수용이 어처구니 없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자칫 더 큰 위기가 재발되거나 연결되기 까지 한다. 사과를 하는 주체는 어떤 전략을 가지고 커뮤니케이션 해야 할 것인가?
많은 해외 선진기업들과 정부조직 그리고 유명인사들의 사과문들을 분석해 보면 상당히 의미 있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물론 그 각각의 사과문들은 성공적인 사과로 해석되는 것들이다. 그들의 사과에는 항상 ‘원칙에 대한 언급과 강조’가 존재한다는 것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되거나, 논란의 중심에 있거나, 사건 사고 갈등 등과 관련된 위기에 대응하는 사과 형식 속 ‘원칙’에 대한 이야기다.
소비자와 관련된 문제라면 그에 대해 사과하는 기업들의 사과문에는 소비자들을 향한 자사의 원칙이 항상 언급되어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 중 아기 엄마들이 우려하는 아기용품의 안전성과 관련된 문제라면 “저희는 아기와 엄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모든 제품들을 최고로 안전하게 만들려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는 것과 같이 자사의 소비자 및 안전 관련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 진행하는 해당 기업의 사과문에는 “저희 경영원칙에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소비자 신뢰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원칙이 있습니다”는 자사의 공정거래 원칙을 강조한다. 경제민주화 관련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사회적 구성원 모두가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사의 원칙은 항상 변함 없습니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낯간지러워(?) 보이는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왜일까? 사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이런 원칙들을 강조하는 것이 역효과를 내지는 않을까? 그냥 이런 원칙에 대한 강조가 통상적인 미사여구인 것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사과문에 담는 원칙이란 사과를 더욱 정교하고 확실하게 하기 위한 장치의 성격을 갖는다. 또한 사과하는 주체가 평소 어떤 생각과 철학을 기반으로 운영되었던 곳인지를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함이다. 사과문에 담는 원칙은 “우리가 무엇을 잘 못 했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의미와 “그래서 앞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심각하게 노력할 것”이라는 의미를 동시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런 강조의 부분은 원칙을 언급한 바로 뒤에 이어지는 메시지에 의해 활성화 된다. 앞의 원칙들과 연결해 보자. “저희는 아기와 엄마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모든 제품들을 최고로 안전하게 만들려 지난 30년간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는 원칙 뒤에는 다음과 같은 사과가 들어가야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OOO제품의 유해성분 함유는 엄청나게 큰 실수였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지켜져 온 원칙을 지키지 못한 이번 실수에 대해 전임직원이 가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실수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다음과 같은…”
“저희 경영원칙에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소비자 신뢰를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원칙이 있습니다”라고 언급한 기업의 사과문에는 다음과 같은 통렬한 사과 메시지가 더해져야 한다. “이런 중요한 원칙이 이번 사안으로 인해 훼손된 것에 대해 전임직원은 큰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회적 구성원 모두가 상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사의 원칙은 항상 변함 없습니다”라는 상생 원칙을 언급한 기업의 경우에 그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 사과 메시지가 들어가야 한다. “이번 논란은 이런 저희의 원칙이 정확하게 공유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전임직원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좀 더 명확히 공유하기 위해 저희는 다음과 같은 활동들을…”
우선 핵심 주제와 관련한 자신들의 원칙을 강조한다. 그 다음엔 해당 원칙에 반하거나 일부 원칙에 맞지 않는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한다. 더 나아가 그러한 원칙을 계속 지켜 나가기 위해 어떤 개선이나 재발방지 조치들을 실행할 것인지 등을 연결해 설명한다. 이 부분이 사과문의 핵심이다.
반면 한국 기업, 정부, 조직, 기관 그리고 유명인사들의 사과문에는 이런 원칙에 대한 언급이 잘 보이지 않는다. 대신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연대 책임을 지겠다”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사과 드린다” 등의 명확하지 않거나 대략적인 사과가 중심을 이룬다. 당연히 이해관계자들은 ‘이 사과주체가 가지고 있는 핵심적 원칙은 과연 무엇인가?’ 궁금해 한다. ‘이 사과 주체가 이번 핵심적인 사안에 대한 원칙을 가지고는 있던 것인가?’ 의심한다. 일부는 ‘정확히 무엇을 잘 못했는지 알고는 있는가?’ 묻는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절대 생략돼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원칙에 대한 언급과 강조’다.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일단 해당 위기 주체의 원칙이 준수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위기 주체 스스로 아무 원칙 없이 문제를 일으킨 말썽쟁이로 인식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올바른 원칙을 가지고 따르고 있었던 책임 있는 사회적 주체로서 이번 불미스러운 일이 의도적인 것이나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 ‘개선을 전제로 한 실수’였음을 커뮤니케이션 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확한 원칙과 개선조치들을 연결하여 커뮤니케이션 하자는 것이다. 심각한 위기 일수록 원칙을 기억하자. 그리고 원칙을 강조하자. 위기가 물러가지는 않겠지만, 원칙은 살아 곧 우리를 도울 것이다.
글 : 정용민
출처 : http://goo.gl/BCN5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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