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보고서와 Riptide에 담김 혁신의 과제들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신문 혁신’을 주제로 한 위기와 기회에 관한 자기 성찰식 수백페이지 보고서는 신문과 뉴스 뿐 아니라 미디어 업계 전체에 관심 리스트 였다.
뉴욕타임즈 혁신 보고서는 기업 내부의 보고서로 그것이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외부에 유출된 것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 이전인 2013년에 발행된 ‘Riptide’ (한국 번역 : 언론산업을 수장시킨 쉼 없이 밀려드는 혁신의 조류. 조영신 역/한국언론진흥재단)) 는 미국의 신문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1980년 이후의 혁신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이 두가지 보고서를 찬찬히 읽어보아야 비로서 미국의 신문 미디어가 겪은 솔직한 혁신의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 뉴욕 타임즈 혁신 보고서 만으로는 ‘그저그런 디지털 마케팅 전술’ 수준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 2가지 보고서 모두 미디어 산업에 대한 진정성 있는 ‘고뇌’ 를 바탕으로 현장의 미디어 가이들에게 혁신을 부추기는 ‘學’과 ‘産’의 융합 메신저 조영신 박사의 손으로 작성되었다. 이 지면을 빌어 조영신 박사의 노고에 감사한다.
‘Riptide’를 보면 미국의 신문 산업은 온라인의 등장과 스마트 모바일의 빠른 전환을 방관자로 지켜보지 않았다. 1980년대 이전에는 비디오텍스트 기술을 도입하여 오히려 앞선 혁신으로 실패의 과정을 겪었고 AOL의 등장이나 911 테러사건 이후 구글의 갑작스런 등극을 신문 미디어에 활용하기 위해 크고 작은 온라인 기업들을 인수 합병 하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은 기록은 미국의 신문 산업이 끊임없이 온라인 분야의 인력들을 흡수함으로써 혁신의 인자를 내재화 시키려 했다는 점이다. 특히 비디오텍스트 등 실패한 혁신의 ‘선수’들을 끝까지 산업 내부에 품어 이들을 통해 실패를 발판으로 한 새로운 시도를 요구했다.
이들은 왜 혁신하지 못했을까?
뉴욕타임즈 혁신보고서와 Riptide 이 두가지 보고서를 함께 읽으며 중요한 의문을 가지게 된다.
IT의 파도를 동시에 넘고자 했던 미국의 신문 미디어는 왜 혁신하지 못했는가?
지난 시기 중 미국 미디어 업계의 가장 큰 인수 합병으로는 AOL과 타임워너, 뉴스콥과 마이스페이스의 합체이다. Riptide에는 이 합병 과정에 얽힌 이야기들이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아울러 AP 통신과 야후와의 결합이 1990년 당시 성장의 중심에 있던 CNN과의 제휴가 실패한 뒤의 2nd 선택으로 이어졌는지 기술되어 있다.
미국의 신문은 기술과 뉴미디어의 출현 뒤에 결과론적으로 허둥지둥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직의 일부 기능을 떼어 지속적으로 신 기술을 분석하고 대응해 왔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2009년에 출간된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들쳐본다. 이 책에서는 위대한 기업들 조차 왜 실패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답으로 ‘선두 기업 자리에 오르게 해 준 경영 관행’이라고 분석한다.
전통적 미디어 기반 위에 혁신의 집을 지으려 했던 이들의 시도는 야후, 구글 등 당대의 온라인 엣지 기업의 인력들을 편집국 한켠의 디지털 리더로 데리고 왔었더라도 전통과 혁신의 동거는 성공하기 어려웠다.
이들로 Riptide에서 자인하는 바이지만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 처럼 온라인에 미디어 자체를 판박으로 우겨 넣으려 했다.
1996년부터 시작된 신문사들의 ‘웹 러쉬’ 때에도 이들은 유료, 무료 논쟁에 긴 관심을 두었고 온라인 그 자체의 고민은 다소 미흡하였다.
“.. 당시 (차라리) 무료로 제공했더라면 우리 기자들이 디지털 근육을 키우는데 조금 더 적극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 뉴스룸에서는 머리로 받아들였지만 가슴으로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것 같거든요..”
전통 미디어 위에 짓는 혁신의 집은 부실할 수 밖에 없다
AOL과 타임워너의 합병 직후 2001년 닷컴 붕괴를 시작으로 소위 ‘인터넷의 겨울’을 맞이 한다. 이때 미국의 신문들은 당시에 전개하고 있던 다양한 온라인을 활용한 혁신적 시도들을 닫기 시작한다.
그런데 ‘인터넷의 겨울’은 산업적 측면의 불황이었지 온라인 이용자들의 이용곡선(Usasge curve)은 오히려 수직 상승했다고 기술한다.
이때 1996년 NY.com을 시작으로 오프라인 신문을 온라인에 옮기고 무늬만 바꾼 온라인형 광고인 배너광고는 기존 광고주들의 불황으로 철퇴를 맞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증가하는 인터넷 트래픽을 기반으로 새 유형의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하니 그것이 오버츄어를 인수한 구글의 역습이다. 이로인해 2001년 경기 침체 회복 이후 미국 신문 기업들의 효자 사업인 ‘지역 안내 광고’의 붕괴기 시작된다.
그런데 미국 신문들도 2000년부터 온라인의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새롭게 만들고저 했다. 그러나 기술의 속도는 온라인 가이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디지털 페니’의 역습으로 혁신의 맹아를 스스로 품으로 했던 미국 신문 미디어는 그나마 고급 신문 콘텐츠를 기반으로 얕지만 파편적인 온라인 실험들을 지속하며 현재에 이른다.
미국의 신문 미디어는 지난 수십년간의 혁신의 주변을 맴돌며 스스로 ‘디지털 근육’을 키우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특히 기술 인력의 결합력이 약했던 조직 문화. 결국 이것은 온라인 트래픽에 대한 비즈니스 실험을 따라가지 못했음을 반성한다.
물론 온라인에도 유료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자하는 이들의 노력은 2003년부터 Times Select (무료 접근 가능한 기사와 유료 접근 가능 기사의 분류) , 2012년 Metered Subscrption Model 등을 통해 작은 성공을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모바일을 타고 급속도로 번지는 SNS를 활용한 새로운 언론 파괴자들 (버즈피드, 허핑턴 포스트 등) 의 출현을 억제하지 못하였으니 기존 미디어 세력과는 전혀 다른 디지털 문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달러’와 ‘디지털 페니’의 차이 말이다.
디지털 퍼스트 전략은 디지털 문법의 이해로부터
이러한 반성이 뉴욕 타임즈 혁신 보고서에 이르러 ‘디지털 퍼스트’전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초식으로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이해해서는 안된다. 절절한 미국 신문의 반성의 결과이고 기존의 경영 관행에 대한 처절한 채칙질이다.
이 지점부터 필자는 이 주제를 방송 미디어로 환치시켜 본다.
신문 미디어와 방송 미디어는 각기 다른 가치 사슬(Value Chain)을 가지고 있다.
방송 미디어 산업을 평가할 때 사용되는 가치사슬 관점에서 보자면 신문은 제작과 유통(플랫폼)이 일원화 되어있다. (이점에서 혁신 보고서는 본래 신문이 가정의 집 앞까지 직접 배달되는 ‘업’ 이었고 이 본질에서 출발하여 수용자 발굴을 주장한다)
반면 방송은 제작과 플랫폼이 분리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분리되어 가고 있다)
신문이 제작과 유통이 일원화되어 제작과 유통 모두를 동일한 경영 체제 하에서 디지털 파도를 넘어야 하지만 방송은 제작과 플랫폼 영역이 각기 다른 디지털 리더쉽으로 펼쳐지고 있다.
특히 플랫폼 영역은 유료 방송의 폭발적 성장으로 네트워크에 기반한 플랫폼 기술이 결합되어 제작 의 가치사슬을 견인하고 있다.
그런데 신문과 방송은 콘텐츠의 포맷 측면에서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다. 신문의 콘텐츠들이 생산자의 손을 떠나는 순간 링크와 피드를 타고 무한대로 전파가 가능한 반면 방송의 영상 콘텐츠는 저작과 출연자들의 권리 캡슐에 쌓여 허가받은 링크 안에서만 움직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차이로 인해 신문 미디어가 소위 ‘파괴자’ 로 부르는 대안 매체 (버즈피드, 고커 등) 들의 동종 괴물의 탄생을 쉽게 용인한 반면, 방송 미디어는 자신들의 콘텐츠 권리를 스스로 통제하며 유투브와 같은 글로벌 파괴자와는 제휴의 고리를 엮어 스스로 파괴자의 공격을 조절하고자 한다.
영상 미디어 산업은 이 점에서 콘텐츠 진영과 플랫폼 진영 모두 ‘온라인 포옹’전략을 스스로 펼치며 파괴자와의 동거를 시작하고 혁신의 속도를 장악해 가는 것 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콘텐츠 진영의 연합 OTT(훌루 또는 푹) 출현과 미국 케이블, IPTV 플랫폼의 TV Everywhere 전략을 꼽을 수 있겠다)
미국의 1위 방송, 네트워크 플랫폼 컴캐스트와 2위 타임워너의 합병에서 보듯 네트워크를 장악함으로써 가치사슬을 공고히 하려는 전략은 일시적으로는 파괴자의 속도를 늦추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가치사슬 내부의 내분도 발생하여 OTT 전략이 더욱 다양해짐으로써 스스로 파괴자의 맹아를 키우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콘텐츠 진영은 본래 가입자를 보유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수익을 챙겨가는데, 플랫폼과의 분배의 몫에 이견이 발생하고 장기적으로 플랫폼의 노후화가 가속화 되는 상황을 목격하며 콘텐츠 진영 스스로 온라인 공간에서 OTT 플랫폼을 열고 있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타전되는 미국 콘텐츠 진영의 독자 OTT 서비스 런칭이 그 예이며 한국의 경우 지상파를 위시로 한 빅 콘텐츠 진영의 연합 시도가 그것이다.
콘텐츠 진영의 OTT 전략은 콘텐츠 원천 권리를 무기로 포털, 검색, SNS 등 디지털 세력과의 경쟁 전략(콘텐츠 제공기회의 박탈 등) 을 펼치기도 하는 등 스스로 파괴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신문은 기존의 종이 신문 세력이나 파괴자인 온라인 신문들이 콘텐츠 포맷이나 장르의 공통 분모가 많다. 반면 방송은 기존의 프리미엄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유형의 콘텐츠들이 출현하고 이를 기반으로한 플랫폼이 속출한다. 모래시계가 퇴근을 결정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10대는 그들만 알고 있는 게임 방송의 본방사수를 위해 아프리카 앱을 열고 있다.
방송 역시 신문과는 다소 속도는 다르지만 마치 매트릭스의 센티널과 같은 파괴자들의 파상적 공격을 받고 있다.
‘디지털 퍼스트’ ‘수용자 개발’은 신문과 방송이 공통 과제
그런데 ‘혁신 보고서’의 2가지 주제는 신문과 방송 미디어에 공히 공통적 과제이다. ‘디지털 퍼스트’ ‘수용자 개발’이 그것이다.
미디어 산업 전체 던지는 ‘디지털 퍼스트’의 핵심 주제는 디지털 인력의 중요성과 데이터 기반 디지털 로 나누어볼 수 있다.
콘텐츠의 생산 직후로부터 온라인을 유랑하는 링크들의 괘적안에 묻혀있는 이용자들의 개인화된 콘텐츠 감상이나 욕구들을 추적하기 위한 미디어 종사자들의 전방위적 관여와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콘텐츠 관리 시스템 (CMS) 이나 빅데이터에 기반한 추천 엔진의 결합으로 나타나는 디지털 우선 전략은 생산과 전파 그리고 재생산의 순환 구조를 디지털 공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야 함을 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디지털 퍼스트’에 필요한 DNA가 기술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자기성찰식 혁신 보고서의 고해성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미디어는 제작(또는 기사의 작성)의 디테일과 끝단의 화질 (신문으로는 편집) 에 전문성이 필요했다면 디지털 퍼스트는 이에 비해 훨씬 세분화된 프로세스 마다의 기술력이 중시된다. 모바일 앱의 로딩 속도를 1초 단축 시키거나 이용자가 쉽게 전파시킬 수 있도록 장치하는 SNS 공유의 장치의 사용성이 교과서적인 답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다.
완성품이 몇번의 기사 탈고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간의 싸움이라면 온라인 공간의 디지털 궤적들은 지속적인 반복을 통한 피봇팅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 점에서 디지털 퍼스트는 기술 인력의 우대(?)나 보호를 주장한다.
버즈피드와 넷플릭스는 공히 신문과 영상 미디어 분야의 파괴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데이터 기반 사업 구조’ 라는데 있다. (긴 지면으로 이 문제는 좀 줄이기로 하자) 버즈피드의 데이터 활용 방법은 블로터닷넷의 기사를 읽어보자.
수용자 개발의 핵심은 세분화, 세분화
결국 디지털퍼스트 전략은 수용자 개발로 이어진다.
신문 기사를 정독할 유료 가입자를 2배 증대 시킬 수 있다는 전략적 자신감은 이미 버린지 오래다. 뉴스의 링크가 퍼지기도 전에 허드슨강의 기적을 트위터로 타전하는 일반인들의 미디어 행위에 뉴욕 타임즈의 브랜드를 지킬 수 없는 노릇이다.
물론 혁신 보고서 내내 고급 품질의 콘텐츠 제작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 있다. 그러나 1년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스노풀 기사’들이 네이버 뉴스의 연예인 가십 기사 보다도 못한 링크수를 보인다면 수용자들의 지적 능력을 한탄할 수 만은 없지 않을까.
어제 방송된 무한도전에는 재미있는 대목이 있었다.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어떤 이유에서든간에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스토리인데, 기존의 라디오 DJ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 청취자들의 성향을 기가막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라디오 방송 중에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청취자들의 채팅, 문자메시지들은 이들에게 빅데이터라는 거창한 시스템이 없더라도 누적적인 경험치에 의해 고객 분석이 가능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위 ‘수용자’의 유지나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 두시의 데이트는 임산부들이 참 많이 들어요. 태교 방송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지요..” 넋두리 같은 DJ의 변에는 혁신 보고서의 거창한 수용자 개발이라는 것이 결국엔 “세분화, 세분화” 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수용자의 개발은 기존 미디어에서 수용자가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종이 신문이나 TV는 이미 고령화의 길을 걷고 있고 이탈되어 가는 이용자들의 다양한 디지털 유랑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바로 콘텐츠의 힘을 근간으로 만들어질것이다. 비바! ‘에버그린 콘텐츠’
수비적 혁신과 양손전략
뉴욕타임즈가 구글을 인수하거나 NBC가 유투브를 인수했더라면 지금의 미디어 판도는 어찌되었을까?
그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다만, 전통 위에 혁신을 시도하려는 관점에서 보자면 제 2의 구글을 목격 했을 것이고, 전통을 버리고 혁신을 취하는 전략이었다면 미디어 지도는 새로 그려졌을 것이다. 그랬다면 신문이란 미디어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일까?
혁신을 향한 보고서 2권을 통해 필자가 몸담은 영상 미디어의 혁신 속도를 고민해 보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개인, 조직, 기업, 산업 그리고 영상, 신문, 출판 등 콘텐츠 장르 전반을 아우르는 전방위적 관찰과 분석을 필요로 한다.
신문은 기록의 미디어이고 방송은 표현의 미디어다. 어쩌면 본질만 남기고 다 버리려는 전략이 혁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지 하게도 기업의 역사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혁신이란 “진부함을 새로운 그릇에 담는’ 수준으로 전통위에 짓는 다양한 시도가 될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기업 수준의 디지털 근육을 키워 위태롭게 무너질 수 있는 파괴자들의 역습에 대비하는 수비적 혁신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들린다.
물론 전통과 혁신을 두손 모두에 들고 적정 시점에 전통을 과감히 버리고 혁신을 택한 기업의 사례들도 존재한다. 학자, 전략가, 기획자, 마케터 그 어떤 분야라도 ‘양손전략’ 을 펼치려는 다양한 노력의 중심에 있다면 혁신보고서 작성자들의 ‘절박함’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외친다.
한판 붙자. 혁신!
글 : 제레미
출처 : http://goo.gl/CekK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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