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동아비지니스리뷰에 실린 휴맥스의 프로세스 혁신 기사를 보면 프로세스 혁신 사례에서 몇 가지 핵심사항이 눈에 띄는데요. 먼저 휴맥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 휴맥스는 벤쳐 1세대 기업으로 셋톱박스로 1990년대 후반 글로벌 시장을 주도했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성장 정체를 경험하다가 2008년부터 프로세스 혁신을 통하여 2010년 매출 1조를 넘는 재성장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휴맥스의 프로세스 혁신 과정에서 혁신실 신설과, 사업부에서 기능부서로 조직개편, 코드 리뷰 등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월에서 주간단위로 생산계획과 실적점검을 단축했다는 점과 달성율이 아니라 준수율을 강조했던 점입니다.
월단위에서 주단위로!
변대규 대표를 포함해 판매, 생산, 구매 부서 담당자들은 주 단위 업무 프로세스에 맞춰 매주 한 번씩S&OP(Sales & Operations Planning) 회의를 열고 장차 16주간의 자재 구매 및 물류, 생산 계획을 검토해 확정했다. 한 주가 끝나고 다음 주가 되면 이전 주에 세운 계획과 대비해 얼마나 목표를 준수했는지를 검토했다. 그리고 각 판매 법인에서 새롭게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금 생산 물량을 조율해 새로운 16주간의 계획을 확정 짓는 의사결정을 반복했다.
처음 혁신실에서 매주 계획과 실적을 점검하는 프로세스를 확립하겠다고 하자 “융통성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 “회사가 경직돼 가고 있다” 등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어차피 매출 목표는 월말 기준으로 체크하고 고객사 역시 월 단위로 움직이는데 왜 굳이 일주일마다 재고 관리를 해야 하냐며 불만이 컸다.
어차피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질 재고이고 이번 주에 안 팔려도 월말이 되면 다 팔릴 텐데 주마다 일일이 매출과 재고, 자재 관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건 업무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혁신실에선 SCM의 기본인 ‘정물일치(靜物一致·정보와 화물의 흐름을 일치시킴)’를 실현하려면 업무 사이클을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바꿔서 4배 정도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상시 점검 체계를 갖추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화물의 흐름이 잘 드러나게 돼 전반적으로 업무의 가시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회사의 생존 능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 나갔다.
조직의 운영사이클을 월에서 주단위로 줄임으로써 내부에 숨어있던 버퍼가 사라져 보다 투명해지게 됩니다. 짧은 사이클 주기로 타임박싱(time-boxing)을 잡아 월말에 몰리는 마감효과가 주단위로 분산되는 것입니다. 밀물일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썰물때 바닥을 들어내는 것처럼 사이클이 길면 관리 및 운영상의 문제점을 감출 수 있습니다.
개발 프로젝트를 보면 단계말이나 출시를 앞두고 야근이나 밤샘이 갑자기 증가합니다. 따지고보면 평소에 그만큼 일을 못했다는 것이고, 갑자기 일이 몰리면서 문제점들이 뒤늦게 발견되고, 일단 질보다 양으로 채워지기 쉽습니다. 운영사이클을 짧게하면 조직 전체에 걸쳐 피드백이 빨라지고 의사소통과 조직원이 긴장감을 향상시켜줍니다.
달성율보다 준수율!
혁신실은 또한 목표 대비 실적치를 단순히 대비시키는 ‘달성률’이 아니라 세분된 목표에 실적치가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따지는 ‘준수율’을 성과 지표로 삼았다. 이는 초과 생산한 물량도 거꾸로 깎는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600개를 계획했을 때 1000개를 생산했다면 달성률은 167%가 되지만 준수율은 60%로 잡는 식이다.
이렇게 지표를 바꾼 것은 SCM의 핵심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실행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과 지표를 바꿔놓고 보니 과거엔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경 제품 총량을 기준으로 한 생산실적 달성률은 90% 이상으로, 심지어 100%를 초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델별 실적을 따로 잡아 계획 대비 목표 달성의 정확도를 고려한 준수율을 따져 보니 고작 50% 수준에 불과했다.새롭게 적용한 평가 지표에 따라 실적을 재평가한 결과를 보자 굳이 번거롭게 KPI 지표를 바꿀 필요가 있겠냐고 불만을 갖고 있던 직원들의 목소리도 쑥 들어갔다. 모두들 “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은 몰랐다”며 문제 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목표달성만 강조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이 내부 프로세스와 규정의 무시입니다. 결과만 보여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성장기에는 목표를 뛰어넘는 매출로 이슈들이 가라앉지만 조직이 커지고, 성장이 정체되면서 프로세스 이슈들도 부각되게 마련입니다. 특히나 제조업의 경우, 조달과 재고는 수익에 직결되는 요인이므로 목표를 초과한 생산량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달성율보다 준수율을 강조하는 것은 준수율이 향상되면 달성율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달성율은 목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목표는 역량에 달린 문제입니다. 또한 달성율은 외부 요인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데, 가령 경기가 좋으면 영업이 부실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러나 준수율은 내부 통제가 가능하고 준수율이 개선된다는 것은 내부역량이 향상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20개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SW공학백서의 결함제거활동과 프로젝트 성과 분석결과를 보면, 결함제거활동 (디자인 및 코드 인스펙션, 테스트, 정적분석, QA)을 잘 준수하는 조직이 프로젝트 성과 (생산성, 품질, 일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즉, 프로세스 준수율이 높은 조직이 프로젝트 목표를 달성할 확률도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글 : 황순삼
원문 : http://goo.gl/Mq2Nw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