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이 화두입니다. 벤처스퀘어는 비욘드 시큐리티(Beyond Security)의 창업자이자 CEO로서 이스라엘 멘토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시드 펀드인 코이스라 시드 파트너스(KOISRA Seed Partners)의 이사인 아비람 제닉(Aviram Jenik)이 글로벌을 지향하는 한국 스타트업에게 전하는 칼럼을 연재한다. 국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기사 게재를 허락해 주신 아비람 제닉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 말씀 전한다. 칼럼 전체 내용은 여기를 참고바란다.
저의 사무실을 방문하는 한국 손님들이 저와 제 파트너가 내부적인 논의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그들은 자주 어리둥절해 하곤 합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부분은 바로 서로가 서로의 의견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할 때입니다. 대게 우리 중 한 명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 다른 한 쪽은 완전히 반대인 의견을 표명하는 식이지요. 그 것도 아주 큰 목소리로, 모두의 앞에서요.
이런 식의 논의를 나눌 때 손님으로부터 오는 창피함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이야기를 히브리어로 나누려 합니다만, 때때로 이는 더욱 큰 혼란으로 이어질 뿐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우리의 히브리어 대화를 바라보는 측에서는, 비록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진 못할 지어도 열띤 모습으로 토론하는 모습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반대가 난무하면서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식의 토론은 한국인들의 순응주의적인 토론과 아주 다른 형태를 보입니다.
반대의 극단적인 경우를 보자면, 일본의 회사들은 목표로서 ‘화합’을 제시하곤 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가 아니라면, 그건 톱 리스트 목표 중 하나라는 식이죠. ‘고객과의 화합’이 될 수도, 또는 ‘파트너와의 화합’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어떤 형태든 화합인 겁니다. 이스라엘 회사들의 경우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분열’입니다. 이렇듯 이 두 사회 간의 차이는 더 이상 벌어질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 스타트업들은 오늘에서야 의견의 분열 방식을 사용하지만, 이스라엘에 있어 이 방식의 토론은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오던 방식이었답니다.
이러한 행동은 저와 제 동료들에게만 나타나는 특성이 아닙니다. 최근에 저는 유명한 유대인 랍비인 Elijah ben Shlomo Zalman Kremer(‘GRA’으로도 알려짐)의 주석을 읽었는데요, 그는 18세기의 유대인 리더로서 성경 주석을 적은 사람입니다.
제가 읽었던 주석에서, 그는 역대 가장 훌륭했던 유대인 종교 지도자이자 제가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Mosheh ben Maimon (‘Rambam’으로도 알려짐)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는데요, 12세기 스페인에서 랍비 활동을 하던 그는 무슬림들이 스페인을 정복하던 그 시기에도 오히려 무슬림들에 의해 가장 전설적인 박사이자 학자로 추앙 받는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그가 무슬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Rambam은 유대 계에선 아주 유명하지 않았지만 세계적으로는 명성이 있었습니다. 그의 성경 주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공부 되고 있으며, 그가 죽은 지 800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그는 유대인 율법 상의 가장 위대한 권위자로 통칭 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가 12세기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인 오늘 날에도 여전히 현대적일 수 있는 철학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를 특히 좋아합니다. 앞서 언급한 GRA를 포함한 이후 모든 세대의 유대 학자들이 Rambam의 책들을 통해 배움을 전수 받았지요.
그러나 GRA의 경우, Rambam의 견해에 의견 충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여기서 가장 예의 바르고 조화로운 행동이 무엇이냐 한다면, 600년이나 먼저 태어난 Rambam(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사실 GRA는 이 대신 언쟁하는 쪽을 택하였고, 단지 의견에 반대 만을 표하는 것 외에도 “Rambam은 머리를 맞아 실신했는지 결국 거짓말을 적어놓았다”고도 적었습니다. 한 랍비가 다른 랍비에게 이런 식으로 무례를 저질렀다는 걸 상상할 수 있나요?
21세기 이스라엘인들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지만, 사실 이는 단지 예전에 비해 조금 더 표현을 하는 것 뿐입니다. 논의하는데 있어 반대 의견은 여전히 중요한 부분이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가장 먼저 제시한 의견이 항상 옳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요?
우리는 모두의 의견을 듣고 열심히 토론하여 결론을 내려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건 지극히 인간적인 부분입니다. 그렇기에 토론이 점점 열띠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떠한 결론에 도달했을 때, 그 결론이란 리더가 만든 것이라던가, 가장 존경 받거나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고, 화합을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닌, 모두의 면밀한 조사를 견뎌낸 결론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결론은 가장 어리거나 교육을 덜 받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에 대해 부인하지 않는다면, 그 것은 옳은 결론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선생님과의 논쟁도 배움의 방법입니다. 무언가에 대해 이해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실제론 그러지 못했음에도 이해했다고 대답을 얼마나 많이 해보았나요? 정말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렇다고 솔직히 말하거나 또는 선생님에게 방금 가르쳐주신 부분이 잘 성립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요? 칼을 날카롭게 갈듯이, 지식도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누군가의 지식과 충돌해야 할 겁니다.
저는 가끔 한국의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탈무드의 방식을 가르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곤 하는데요, 탈무드 방식이라는 게 정말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를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왜냐하면 탈무드 방식이란 건 사실 학생들로 하여금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모든 주장에 대한 증명을 원하며 다른 의견을 자주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스라엘인들은 이런 방식에 익숙하여 더 이상 자각하고 있지 않을 정도이지만, 제가 이스라엘 친구와 전화로 이야기하는 모습을 한국 사람이 볼 때면, 방금 전화로 어떤 논쟁이 있었는 지를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논쟁을 한 것이 아니었죠. 단지 무언가에 대해 친숙한 방식으로 토론했을 뿐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식 ‘토론’은 자주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탈무드 방식의 교육을 생각하시는 한국 선생님들이 있다면 이를 혼동하지 말아주세요!
Argue it!
Korean visitors who come to our offices to meet my partners and I are often puzzled by our internal discussions. The first look of amazement usually comes when we seeing how we disagree with each other. More often than not, once one of us will say his or her opinion, someone else will express a completely opposite opinion. Out loud. And in front of everyone.
To save embarrassment from guests, we now try to conduct these types of discussions in Hebrew, but I must admit it sometimes only leads to further confusion: the viewer, even without understanding what we’re saying, can easily see us engaged in a heated discussion. Conversation volume may rise, with disagreements all around the table. The Israeli discussion is very different than the conformist discussion Koreans will have with their colleagues.
On the extreme, it is Japanese companies who often present their company’s objective as “Harmony”. If not the primary objective, it will be one of the top. It may be “harmony with the customers”, or “harmony with the partners” but it will always be some form of harmony. For Israeli companies, the top objective is often disruption. The two societies could not be further apart. Koreans startups are used by now to disruption and chaos – but Israelis have been using this technique for centuries.
This behavior isn’t unique to my colleagues and I. Recently I read commentary by a known Jewish Rabbi, Elijah ben Shlomo Zalman Kremer (known by his short acronym: GRA). GRA is an 18th century Jewish leader who wrote commentary on the bible. In the commentary that I read, he was commenting on one of the greatest Jewish religious leaders of all time, and my personal favorite: Mosheh ben Maimon, known as “Rambam”.
Rambam is a 12th century rabbi from Spain, and to emphasize how great he was, the muslims that conquered Spain in the 12th century consider Rambam to be one of the legendary doctors and scholars of all time, this despite the fact he was not a muslim. So Rambam was not just a prominent Jew, he was world renowned.
His interpretation to the bible is studied still today, 800 years after his death, and he is considered one of the greatest authorities to Jewish laws. I especially like his modern philosophical views (yes, believe it or not, a 12th century religious man can have views that are even modern to the 21st century). All generations of Jewish scholars learned from the Rambam books, including GRA.
But GRA had a disagreement with Rambam. One of Rambam’s notes was different than GRA’s teaching. The polite (and harmonious) thing to do would be to give respect to a Rabbi that was born 600 years earlier and is renowned for generations. But GRA decides to argue, and not just disagree but to phrase it in writing as so: “Rambam was hit on the head and that caused him to write these lies”. Can you imagine such disrespect from one Rabbi to another?
Israelis in the 21st century are more respectful to each other, but just a little more. Argument is an important part of discussion and disagreement is a way to solve problems: how can we be sure the first opinion voiced is the right one? We need a healthy debate to get everyone’s opinion and decide. Many people think their opinion is the correct one – it’s a very human feeling – and so debates can heat up.
But out of this heat, a decision is reached; not one that was made by the leader, the older or the most respected, and not one made for the sake of harmony – but rather one that withstood scrutiny by all others. This opinion could be of the youngest and least educated of the group; but if no one can refute it – it is deemed correct.
Also, challenging the teacher is our way of learning; how many times were you asked if you understood and you said yes, even though you didn’t? Wouldn’t it be better if you can say you didn’t understand – or even – that what the teacher just taught you does not make sense? By challenging the teacher you can learn better; and just like sharpening knives, if you want to sharpen your knowledge you need to strike it against someone else’s knowledge.
I sometimes hear Korean teachers tell their students they want to teach them “the Talmud way”. I wonder if they realize what it would really mean: having students telling them they are wrong, asking them to prove every claim and frequently disagreeing, often in very vocal ways.
Israelis don’t even notice it any more, but often when I speak with a friend on the phone, a Korean that is listening to the conversation will ask me what we were arguing about. We weren’t arguing, I tell them, we were just discussing something in a friendly way. But the Israeli ‘discussion’ can often be aggressive. Korean teachers, beware!
글 : 아비람 제닉(Aviram Jenik)
원문 : http://goo.gl/h1yq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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