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서 시작하여 드라마까지 ‘미생’이 대박을 치고 있다. 미생은 상사맨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어디 상사맨 뿐이랴. 게임맨이라고 어찌 다를까.
일전에 게임회사 직장인과 사업자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야생과 동물원이라는 4컷짜리 만화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작가는 인디게임개발을 하고 있는 도톰치게임즈 장석규 대표다. 만화를 좋아하던 아이가 어쩌다가 게임회사에 입사하여 원화를 그리게 되었고, 원화보다는 게임기획도 하게 되고, 개발자에게 굽실대기 싫어 급기야 개발까지 독학으로 마스터한 별난 사람. 그러나 결국은 회사를 나와 1인 게임개발자가 된 작가 본인의 경험이 녹아든 이야기다. 도톰치는 장 대표가 2000년부터 사용하던 캐릭터와 닉네임이다.
장석규 대표는 2000년 게임기획자로 게임에 입문하여 델피아이, 트리거소프트, 웨메이드엔터테인먼트 등을 거친 후 2013년 도톰치게임즈를 창업했다.
2009년 단지 기획을 더 잘하기 위해 독학으로 아이폰 개발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모바일 게임 리버스오브포춘, 디펜스오브포춘, 미스테리오브포춘 등 이른바 포춘 시리즈를 개발했다. 2009년부터 평균 1년에 하나 정도 모두 6개의 게임을 만들었고 현재도 스토어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던 디자이너가 개발까지 한다고 하니 비결이 궁금했다. 열쇠는 데이터를 정리하던 엑셀 프로그램에 있었다.
“엑셀 간단한 함수와 수식만 잘 사용해도 프로그래머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다 한계를 느껴 비주얼베이직(VBA)을 공부하게 되고 또 이 툴로 안되는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C#을 배우는 식이죠.”
장 대표는 개발을 배울까 말까 지금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장 대표는 “회사가 제공하는 달콤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개인생활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게하고, 내가 만든 게임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겨주고, 그런데 월급도 주고, 잘하면 유명인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 회사가 제공하는 ‘기회’다.
반면 상대적 박봉과 잦은 야근, 고무줄 같은 개발 스케쥴 등 회사를 그만둘 이유도 100가지가 넘었다. 어느 쪽도 잘못된 길은 아니지만 동물원이든 야생이든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의 결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 대표는 동물원 대신 야생을 선택했다. 회사(위메이드엔터테인먼트)가 본사를 판교로 옮긴 것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퇴사만 하면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루 18시간의 노동과 줄어드는 통장 잔고. 그래도 작업성취도만은 최고라며 엄지를 세웠다. 하루 3시간만 자도 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일하는 것이 노는 것 보다 더 재미있었다.
게임회사는 마치 연예기획사와 비슷하다. 많은 게임을 출시해서 하나만 대박을 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게임을 만들기도 한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인 게임개발자는 그야말로 인디음악가와 같다. 돈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세계관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다. 돈과 명예는 꾸준히 내 길을 가다보면 언젠가는 저절로 따라 온다고 믿는다.
장 대표는 또 회사의 게임 개발을 많은 사람들이 팀으로 모여 같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에 비교했다. 사람이 많으면 역할분담이나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일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조율해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아무리 뛰어난 운전기사가 있더라도 이 개발버스의 연비는 리터당 6킬로에 불과하게 된다.
반면 1인 개발자의 경우는 기획서나 회의도 없고 설득시킬 사람도 필요 없다. 차는 작지만 연비는 빵빵하다. 문제는 차가 연비만으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승용차든 버스든 게임개발은 어렵다는 것이 장 대표의 결론이다.
“1인개발의 장점이라면 기획서를 안 써도 되고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적용하면 되고, 유저의 피드백을 바로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이점은 모든 매출을 개발자가 독식한다는 것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금액이 크지 않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얼마 전 미스테리오브포춘이 앱스토어 한국 유료게임앱 분야에서 1위를 했습니다. 거의 1년만이었기에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채 1주일을 못 버치고 한국은 물론이고 북미, 일본에서도 곤두박질을 쳤다. 반면 구글플레이에서는 초반에는 반응이 없었으나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동시에 역대 최고의 유저 피드백이 쏟아졌다. ‘전투가 지루해요’. ‘아이템도 자동으로 줍게해 주세요’, ‘새로운 던전은 없나요’ 등등. 매일 유저의 피드백을 처리하는라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었다. 혼자 모든 일을 하다보니 충분한 테스트를 할수 없는 상황이었다.
급기야 ‘이 정도로 오류가 많았으며 출시하지 말아야죠. 아마추어같이..’라는 항의도 받았다. 그래도 관심이 무관심보다 낫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고.
요즘 나오는 모바일 게임의 수익은 대부분 부분결제 방식인데 장 대표의 포춘 시리즈는 처음부터 다운로드 할 때 과금하는 유료앱을 고집하고 있다. 모든 유저는 레벨1에서 시작하고 노력만큼 높은 레벨이 될 수 있다. 아이템을 구매해서가 아니라 노력에 의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근성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동물원보다 야생이 훨씬 나아 보인다. 정말 그럴까.
“모든 것이 자유로운 만큼 책임도 막중합니다. 스케쥴 관리, 마인트컨트롤, 멘탈 관리도 힘들고 무엇보다 불안정한 수익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인디게임시장은 생존조차 힘들다는 것이다. 또 모든 일을 혼자 해야 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회사 생활이 좋다 나쁘다 판단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지금은 필살의 기술을 연마할 시기입니다.”
장 대표는 회사에서의 고단했던 경험이 결국은 노하우가 된다고 강조했다. 또 무엇보다 동료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인디로 투신을 결심했다면 보다 확실하고 철저하게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지금 게임회사에서 일하고 있거나 취업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그가 남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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