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승장구하던 구글도 3년 전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구글 월렛 때문엔 쓴맛을 봤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앞으론 휴대폰이 지갑을 대체할 것이란 장밋빛 환상을 갖고 구글은 3억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도 인수했다. 그러나 구글월렛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구글과 소비자 사이에 수많은 기업들의 협력이 필요한 점을 간과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구글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너무 높은 수수료를 요구해 구글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쓰는 휴대폰 제조사들은 보안을 이유로 구글월렛을 휴대폰에 기본 장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통신사들은 자체 서비스를 내놓으며 구글 월렛을 배제했다. IT공룡 구글마저도 소비자들을 놀라게 하는 아이디어만으론 시장의 수많은 장애물을 뚫고 돈을 벌기엔 역부족이었다.
어딜 가나 혁신 예찬론이 들린다. 반짝이는 혁신만 있으면 기업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있다. 그러나 혁신만이 능사가 아니다. 놀라운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장 상황과 맞지 않거나 기업이 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없을 때 그 혁신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구글월렛처럼 아이디어는 좋아도 막상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려면 만만치 않는 벽에 부딪히는 혁신은 수없이 많다.
오히려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혁신에만 몰두하기보다는 기업 내부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은 개선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애플이 대표적인 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란 혁신적인 상품만으로 지금의 이 자리에 오게 됐을까. 그렇지 않다. 스티브 잡스 뒤의 그늘에서 재고관리, 수요예측과 같은 생산자 위주의 혁신에 묵묵히 힘써 온 팀 쿡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애플은 가능했다. 그가 스티브 잡스 뒤를 이어 애플의 조타수를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의 소비자 위주의 혁신만큼 팀 쿡의 공급자 위주의 혁신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혁신 자문 컨설팅회사 파렌하이트 212의 창업자이자 대표를 맡고 있는 마크 페인은 매경 MBA팀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기발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실행하기 위해 돈이 많이 들거나 역량이 안 된다면 쓸모 없다. 시장과 기업에 통하지 않는 이런 아이디어에 연연하지 않고 바로 돈을 벌 수 있는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마크 페인 대표와의 일문일답.
―모든 기업이 혁신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혁신이 있어야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아닌가.
▶혁신에 매달리다보면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행이 불가능한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추기 쉽다. 많은 회사의 혁신팀들은 실질적인 영향력이나 시장이 신제품을 수용하는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새롭고 신기한 것만을 만들고 싶어한다.
결국 중요한 건 창의성과 수익성을 결합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을 ‘매직(magic)’과 ‘머니(money)’의 결합이라 부른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면서도 상업적으로 실현가능한 일인지를 프로젝트 구상단계에서부터 검토하는 것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혁신을 추구하다보니 성공률은 높아진다. 우리 회사에서 기존의 프로젝트 성공률이 5~10%였다면 수익성을 염두에 둔 혁신을 추구하니 성공률은 70%까지 높아졌다.
―반짝이지만 시장에선 통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판별해 낼 수 있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사람은 일단 낙관론에 사로잡히기 쉽다. 그러나 낙관의 영역에서 빠져 나와 수많은 장애물이 있는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단 이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을 갖춰야 하는지를 질문해 보면 된다.
만일 아이디어가 지금 회사에서 갖추지 못하고 앞으로도 갖출 가능성이 없는 전혀 새로운 기술수준을 요구한다면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다. 회사 전략의 드라마틱한 변화나 대규모 인력 투자가 요구되어도 투자수익률이 떨어지니 실효성이 없다. 소비자나 유통상의 행태가 바뀌어야 하는 사업도 곤란하고 많은 파트너들의 복잡한 협력이 요구되어서도 안 된다. 구글월렛의 예처럼 말이다.
―시장을 파괴할 만한 아이디어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지 않는가.
▶시장을 파괴할 만한 영향력이 있지만 동시에 기업을 파괴할 만한 부작용도 내포한 아이디어도 많다. 창의성 측면에선 칭찬받을 만하지만 아예 새로운 성장 전략을 요구하거나 과도한 재정적 지원을 요구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이다. 물론 시장을 파괴하면서도 기업을 파괴하지 않는 아이디어라면 아주 좋다. 문제는 시장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으면서 기업도 파괴하는 고위험 고보상의 영역이다. 이 경우엔 위험을 제대로 세분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오히려 시장을 파괴하는 수준이 낮아도 기업을 파괴하는 수준이 낮은 사업이 괜찮다. 점진적인 라인 확장이나 개조(renovation) 수준의 변화 말이다.
―왜 사람들은 소비자 중심의 혁신에만 열광할까. 예를 들어 사람들은 삼성전자가 공급망관리(SCM) 같이 기업경영 측면에선 놀라운 혁신을 거둔 점은 관심을 두지 않고 갤럭시폰이 보여 줄 혁신만을 기다린다.
▶우리는 혁신적인 기술이나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이 사람과 돈을 모으는 것을 수시로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성공적인 스타트업 기업가는 록스타 같은 대우를 받는데 이들이 내놓은 아이템들은 거의 B2C 제품이다.
그러나 소비자 측면의 혁신만큼 중요한 것은 기업 내부의 시스템을 바꾸는 혁신이다. 숙련된 혁신가는 수익성이 높은 혁신은 제품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시스템에 기반을 둔 것이란 걸 안다. 제품은 수없이 교체되니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지만 기업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다르다. SCM 같은 시스템을 구축해 놓으면 10년이 넘도록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이게 곧 돈을 버는 길이다.
―소비자나 기업들에 가치 있는 차별화된 아이디어는 ‘와우(Wow)’, 실제로 부닥칠 기술적, 재정적, 법률적 문제를 ‘하우(How)’라고 표현했다.
▶많은 기업들은 ‘하우’를 무시하고 ‘와우’에만 집착하는 우를 범한다. 물론 차고나 기숙사에서 홀로 혁신을 추구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투자자나 직원들을 생각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선 무책임한 일이다. 많은 프로젝트들이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지, 어떻게 시장에 도달할지, 법규나 규제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어떻게 자금을 대도록 경영진을 설득할지를 도외시하다가 결국 쓴맛을 봤다.
‘하우’ 측면이 해결하기 어려울 것처럼 보이면 전형적인 혁신 절차를 아예 근본적으로 뒤집어 버려야 한다. ‘하우’와 관련된 까다로운 질문들을 먼저 해결한 다음 시장을 짜릿하게 만들 참신한 ‘와우’로 가는 것이다. 운영과 재정 측면에서 가장 대응하기 어려운 일을 드러내고 혁신의 여정을 시작하는 방법이다.
―그렇지만 초반부터 운영과 재정을 생각하라고 하면 창의성이 제한되지 않을까.
▶수익성의 논리가 창의성을 죽이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혁신팀이 상업적 고려 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수익성에 대한 질문을 나중에 받으면 꼼짝없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상업적 고려를 하면 창의성을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경영진이 알아서 수익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됐다. 아이디어를 처음 낸 혁신팀이 경영진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설명 못하는데 그 아이디어를 처음 받아본 경영진이 어떻게 수익화 방법을 제대로 찾겠나.
―‘하우’가 있으면 ‘와우’도 해결되지 않나. 택시 공유서비스 우버(Uber)를 보면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는 아이디어 하나로 지금까지 수많은 법률상 문제와 경쟁업계의 반발(택시운전자 단체의 시위와 로비)을 극복해내고 있지 않나.
▶물론 ‘와우’가 ‘하우’ 문제를 푸는 단서가 되는 일이 있긴 하다. 우버처럼 대중의 인기와 지지를 지렛대로 활용해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식 말이다. 그러나 우버의 경우도 중요한 몇 가지 하우 문제들은 다 해결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수요 조사를 한 후 운전자들은 모집하고 시작했다. 기업 운영에 관한 연구도 제대로 했다.
그러니 우버처럼 ‘와우’를 갖추고 ‘하우’도 일부 해결하고 난 경우가 아니라면 사업은 리스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우’와 ‘와우’를 모두 잘하는 회사는 어디인가.
▶디즈니는 말 그대로 매직과 머니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실력을 보여 줬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이기도 한 매직을 영상에 구현하면서 이걸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시키고 새로운 수익 창출원을 계속 만들어낸다. 영화를 통해 구현한 혁신적인 콘텐츠를 캐릭터 상품의 형태로 시장에 안착시켜 콘텐츠의 가치를 더 올리는 기술은 디즈니의 장점이다. 디즈니 테마파크는 디즈니의 매력을 강화하면서도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시장 상황이 신제품을 수용하기엔 아직 미성숙해 보일 때가 많다. 이럴 때는 수익성을 생각해 창의성을 잠시 접어둬야 하나.
▶혁신가라면 지금 현존하는 기술과 미래를 주도해 나갈 기술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만약 시장이 미성숙하거나 아예 태동되지도 않는 제품을 설계하고 있다면 현재 시장 사이즈에 대한 데이터보다는 미래를 보는 비전에 더 강조점을 둬야 한다. 만약 혼자 창립한 스타트업이라면 자기와 가족을 희생할 리스크만 감당하면 되겠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희생의 강도가 세진다.
―수익성과 창의성의 결합이 중요하다면 조직이나 인사관리 시스템을 이에 맞춰 바꿔야 할까.
▶다른 타입의 사람들을 뽑고 조직 구조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조직의 방법론과 문화가 바뀌지 않고선 성공확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조직에 수익성과 창의성을 투여하기 위해선 어떻게 두 가지를 실질적으로 결합시킬지에 대한 견고한 방법론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 역량이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게 하는 성과 중심의 문화도 필수적이다.
―수익성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역할을 한 사람이 동시에 수행할 수 있나.
▶그렇다. 창의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뽑은 사람들에게 비즈니스의 관점을 더 생각해 달라고 주문하면 수익성과 창의성을 골고루 만족시키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수익성이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통념과 달리 오히려 하나의 시각이 더 추가되면 문제를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더 많은 관점을 상황에 대입할수록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수익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음을 감안한다면 하나의 부서에서도 두 과제를 함께 다룰 수 있을 것이다.
■ 적자 나더라도 혁신해야 할 때가 있다
혁신을 할 때 수익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항상 지금 당장 돈을 만질 수 있는 혁신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혁신도 있다. 마크 페인은 다음 두 가지 경우는 이윤을 남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지적한다.
1. 미래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초고화질(UHD) TV의 경우
UHD TV는 엄청난 개발 비용이 들어간다. 비싼 가격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 아직 많진 않다. UHD TV에 들어갈 TV 프로그램 콘텐츠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나 LG 같은 TV 생산업체들은 UHD TV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미래 시장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선도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평판을 얻기 위해서다.
이렇게 선도기술이 중요한 분야에선 단기적인 손실을 감당하는 일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흔하다. 자동차, 의류, 화장품 등 여러 분야에서 당장 시장 수요는 없어도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상징물을 내놓고 있다. 마크 페인 대표는 “모터쇼에서 나오는 콘셉트카는 혁신과 창의성 그자체다. 수익성을 생각하면 안 만드는 게 나았을 테지만 기술 수준을 과시하고 소비자들에게 환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러 카 메이커들은 앞다퉈 콘셉트카 경쟁을 한다”고 말했다. UHD TV 역시 비슷하다. 지금 당장엔 적자지만 소비자들의 기대를 고취시키고 콘텐츠 제공자들이 관련 콘텐츠를 만들게 하기 위해선 선도기업들이 먼저 대규모 투자과 개발을 할 수밖에 없다.
2. 시장 독점력을 위해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아마존
유통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아마존. 그러나 아마존은 줄기차게 적자만 계속 내고 있다. 3분기엔 손실이 4500억원(4억3700만달러)에 달할 정도다. 매출은 분기당 200억달러에 달하는 공룡 기업이지만 드론 배송 같은 장기적 프로젝트를 위한 투자 비용을 회수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아마존이 추구하고 있는 혁신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다. 일단 아마존은 낮은 가격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운 기업이다.
마크 페인 대표는 “아마존은 수익성 문제는 뒤로 미뤄두고 아이디어만 생산해 실패한 기업들과는 다르다. 아예 처음부터 유통의 저마진을 감당하는 것을 넘어 가격을 더 낮춰 시장 점유율을 올리는 전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이 아마존을 주목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존의 낮은 가격과 직접 배송이 갖는 파괴력이 결국엔 압도적인 시장점유율과 수익으로 돌아올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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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제림 기자(매일경제)
원문 : http://goo.gl/DIxn4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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