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시작하는 스타트업들의 치명적 약점은 투자자를 모두 천사(엔젤)로 본다는 점이다. 때문에 투자자가 쳐놓은 그물망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가벼운 조언 정도라면 아무래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 관계를 생각하거나, 상당한 지분까지 제공해야하는 것이라면, 투자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지하게 투자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 투자자가 다음 항목에 해당하는지 대조해볼 필요가 있다. 그 이후 선택은 당신 몫이다.
1. 스타트업의 꿈을 존중하지 않는 투자자
스타트업은 하고 싶고, 꿈꾸는 일이 있다. 하지만 어떤 투자자는 스타트업의 꿈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격려하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너희 수준을 알아야지.” 현명함을 가장해 스타트업을 가라앉히는 소리. 이런 투자자 곁에선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질식당할 수 있다.
2. 어장 관리하면서,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 투자자
차갑게 거절하는 투자자는 차라리 고맙다. 바로 돌아설 수 있으니까. 문제는 계속 여지를 주는 투자자들이 있다. “괜찮은 사업이긴 한데 상황이 안 좋아.”, “아직 검토할 시간이 필요해.” 등등. 뭔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잘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절대 잡지 못한다. 투자자 입장에선 이런 ‘가망 스타트업’들을 주변에 두는 게, 자존감 유지나 실리적 측면에서 도움이 될까? 모르겠다.
3. 속이는, 거짓말하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투자자
영어에선 이런 투자자를 ‘flake’라 부른다. 약속을 하거나 만나기로 해놓고,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거나 바람맞히거나 퇴짜를 놓는 투자자들이다. 비교적 나이가 적은 투자자 중에서 이런 스타일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스타트업의 애를 태우는 투자자의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업력이 돼서도 이러면 곤란하다. 모든 관계의 바탕은 신의에서 비롯됨은 두 말하면 잔소리.
4. 바람피우는 투자자
어떤 투자자는 카사노바만큼이나 이 스타트업, 저 스타트업을 쫓아다니며 소위 바람을 피우지만, 감추는 데는 더 능하다. 문제는 바람피우는 게 밝혀져도,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자존심과 주변의 평판 때문에 그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말 괜찮은 투자자란 걸 보여주겠어.”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이 때 쓸데없이 난리 부리지 말고, 헛된 분노를 표출하지 말고, 바람피운 걸 발견한 첫 단계에서 우아하게 빠져 나와라. 10년이 지나 웃으면서 얘기할 때가 올 것이다.
5. 차갑고 무정한 투자자
인간과 세상을 몹시 냉정하고 차갑게 바라보는 투자자가 있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걸 넘어, 싸늘한 투자자다. 사람 자체가 정이 없다. 투자자는 스타트업에 있어 어머니의 역할이다. 차가운 투자자는 언제나 스타트업을 차갑게 버릴 수 있고, 아이들에게도 역시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없다.
주의할 것은 처음에 스타트업을 차갑게 대한다고, 원래 차가운 투자자인 건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 그런 투자자일수록 사실은 따뜻하고 속정이 깊은 사람이 많다. 섣불리 마음을 주면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에 처음에 보호막을 치는 것이다. 오히려 처음에 따뜻해 보이는 투자자가 겉만 그런, 빈 강정인 경우도 종종 있다.
6. 조건만으로 스타트업을 판단하는 투자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타트업의 조건(스펙)은 투자자의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 스펙이란 유학파 팀원이 얼마나 많은지, 명문대학 혹은 대기업 출신인지 등등 비즈니스 보다는 외적인 부분을 말한다. 스펙을 무시 할 수는 없지만 스펙만으로 스타트업의 등급을 매기는 투자자는 위험하다.
별 볼일 없는 스펙의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유형의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다. 하지만 스펙까지 갖추고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조심해야 한다. 스타트업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스타트업이 가져 올 돈과 차를 더 사랑하니까. Gold Digger!
7. 매사를 드라마로 만드는 투자자
드라마를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는 유형이 있다. 별 거 아닌 상황인데, 그 안에서 온갖 스토리와 음모와 추측과 반전을 만들어 낸다. 그런 상황이 없으면, 본인이 직접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에 따라서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강렬한 감정’ 중독자로서, 밋밋하고 잔잔한 상태를 참지 못한다. 얼핏 보기엔 굉장히 흥미롭다. 그러나 스타트업이 그 드라마 속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 드라마 속 비극적 주인공 같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8. 욕심도 관심도 없는 투자자
성공에 대한 정상적인 욕구를 가진 스타트업이라면, 이런 투자자 앞에서 곤혹감을 느끼게 된다.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 이것도 몰라?”, “투자자가 봉인 줄 알아?” 등등의 소리를 들으면 괜히 속물이 된 것 같은 자책감이 생긴다.
그런 식으로 세월은 계속 가고… 인정하자. 마음만큼이나 몸의 대화가 스타트업과 투자자 사이엔 중요하다. 부부도 속궁합이 잘 맞는 사람은 다른 측면이 안 맞더라도 훨씬 행복감을 느낀다는 소리도 있다.
9. 지나치게 의지하는 투자자
반대로 조금이라도 떨어지지 못하는 유형이 있다. 항상 전화해줘야 되고, 항상 만나야 되고, 항상 보고해야 한다. 그렇게 안하면 스타트업은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투자자는 보통 성공의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불안하고 또 불안해서 정서적 필요가 끊임없이 채워져야 한다.
오래 가는 투자자와 스타트업의 관계는 두 독립적인 인격이 서로를 도우며 같이 성장하는 관계다.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사사건건 개입이 필요하다면 스타트업은 머지않아 질식당하고 말 것이다.
10. 대화가 안 통하는 투자자
대화가 안 통하는데도 여러 다른 이유로 만남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꽤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생각해보자. 결국 스타트업과 투자자가 만나서 하는 행위의 대부분은 ‘대화’다. 몸의 대화, 좋다. 하지만 그 다음엔? 대화가 즐겁지 않다면 관계에서 무슨 낙이 있겠는가.
11. 스타트업을 이용하는 투자자
사실 투자자에게 손해는 필수다. 중요한 건 ‘의도’다. ‘실리적인 이유’로 스타트업을 곁에 두는 투자자들이 있다. 기억하자. 스타트업이 투자자를 좋아한다고 고백한다고, 그 투자자도 스타트업을 좋아하게 되진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자신을 좋아함을 알게 됐을 때, “아, 내가 이 회사를 통해 생존을 도모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하는 투자자들이 있다.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지체없이 빠져 나와라.
이 글은 ’피해야 할 여자친구 유형 13가지’ 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스타트업과 투자자의 관계와도 비슷한 부분이 많아 살짝 각색했다. 웃자고 한 소리에 죽자고 덤비는 투자자는 없길 바란다.
글: 김재학
원문 : http://goo.gl/wYykLa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