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의 컨설턴트였던 2008년 겨울.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상과 퇴근을 가늠할 수 없는 근무 시간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며 당연하게 여겼던 어느 날, 조금 소원해진 5살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아들의 유치원 가는 길을 데려다 주려고 했다.
히터를 틀고 아들과 아내를 기다리며 자신을 보고 환하게 웃을 아이의 얼굴을 기대했지만, 차에 올라탄 아이의 한 마디에 망치로 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아빠는 내리고 엄마가 운전해. 아빠는 유치원이 아니라 회사 가서 일해야지.” 세상 무엇보다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온 레이즈 윤준민 대표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그 길로 자신에게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뜻을 함께 하는 컨설턴트들과 기업에 제공하던 컨설팅 서비스를 개인에게도 적용해서 ‘비전수립을 통해 더 나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퍼스널 비전(Personal Vision) 컨설팅’이라는 업을 발견했다. 누구나 가슴 속 깊이 품고 있는 꿈과 미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타트업, 레이즈 지엘에스(Raize GLS)의 시작이었다.
“여태까지 커리어 상담은 아는 사람을 통해 구전으로 이루어지곤 했어요. 누구와 상담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진로가 크게 바뀔 수 있었습니다. 레이즈는 그 부분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오프라인의 커리어 상담, 교육과 온라인 비전 계발 플랫폼을 함께 제공해서 효과적으로 커리어를 계발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레이즈는 중고등학생, 대학생, 기업을 대상으로 커리어 계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 지금까지 커리어 계발은 곧 ‘취업 교육’을 뜻하며 이는 ‘자소서 첨삭, 면접 잘 보는 방법’으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세상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직업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개인이 존재하는데, 대다수 사람들이 ‘안정된(다고 여겨지는) 직장으로의 취업’을 향해 자의 반 타의 반 돌진하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괴상한 현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비전과 역량을 제대로 파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분위기에 휩쓸려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만다. 고생 끝에 취업문을 열었다고 해도 또 다른 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조직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이 맞지 않아 발생하는 내적 갈등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의심을 낳고, 이는 곧 조직의 발전 저하와 개인의 업무 의욕 상실을 초래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불명확한 비전을 갖고 아무 조직에나 들어간다면 결국 살아남지 못할 거에요. 저희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자신의 경험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미래의 커리어를 설계하고,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단순히 취업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지난 5년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대상으로 커리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대학생 약 7,000여 명을 포함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커리어 계발 프로그램을 제공했어요. 자연스레 오프라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2년 여의 연구 개발을 거듭해서, 작년 9월에 ‘R팡‘이라는 커리어 계발 웹서비스를 오픈했어요. 동시에 페이스북에 ‘어쩌자고 벌써 4학년‘이라는 커리어 관련 페이지를 운영하기 시작했고요. 별다른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출시 5개월 만에 R팡은 128개 대학의 학생들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페이스북 페이지도 16,000이 넘는 좋아요 숫자를 모았어요. 그만큼 많은 학생이 자신의 커리어에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창업 이후 레이즈는 다소 생소한 ‘커리어 계발 프로그램’을 갖고 전국의 학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되돌아온 답변은 ‘그래서 얼마나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데?’라는 것이었다. 그저 취업 성과를 높이는 데 혈안이 된 대학과 이를 이용하여 ‘기업이 요구하는 자소서 작성하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일부 취업 컨설턴트가 망쳐놓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웠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진심을 전달했다.
결국, 정성이 통한 걸까. 경희대에서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80명의 학생이 자신의 비전과 역량 계발에 집중하여, 이를 취업으로 연결해 마침내 97%라는 우수한 취업률을 달성하면서 레이즈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연락이 쇄도했다. 기업에도 입소문이 퍼지면서 다수의 대기업과 강소기업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맡기거나 채용 과정을 함께 진행하자는 요청도 들어왔다.
그렇게 5년 동안 오프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커리어 계발과 연관된 50개의 핵심 키워드 계발 콘텐츠를 추려낼 수 있었다. ‘R팡’은 이를 기반으로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따라 비전 수립, 역량 개발, 취업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쉽고 편하게 맞춤화하여 실행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데이터로 저장되기 때문에 휘발되지 않고, 지속해서 관리가 가능하다. 자칫 의미가 모호할 수 있는 ‘커리어 계발’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통합 O2O 솔루션을 통해 접근했다는 점에서 여타 커리어 컨설팅 업체와 다른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저마다 남다른 개개인의 커리어를 데이터로 계량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윤준민 대표는 서비스를 기획하면서 ‘비전과 역량(Competency)’에 집중하여 개인이 직접 자신의 비전을 작성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레이즈의 온오프라인 통합 솔루션 ‘R팡’을 통해 키워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현실여건 상 취업할 때 요구되는 정형화된 ‘스펙’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취업뿐만 아니라 창업이나 은퇴자 재교육에 필요한 역량 콘텐츠도 갖춰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레이즈의 커리어 계발 프로그램을 실제로 이수해본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윤 대표는 ‘2012년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을 받은 이동진 학생’의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까지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던 이동진은 레이즈를 만나면서 인생이 뒤바뀌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오로지 취업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과 다른 인생을 살고 싶었던 이동진은 윤 대표와의 상담을 통해 ‘멈추지 않고 세상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발견하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울진에서 독도까지 수영해서 가기, 아마존 420킬로 정글 마라톤, 미국 대륙 자전거 횡단 등 비전에 따라 한계에 도전하더니 방송 출연, 세바시 강연, 책 출간, 대통령상 수상까지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 놀랍기만 한 이 모든 성과가 윤 대표와의 짧은 만남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많은 학생들이 레이즈를 통해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고, 인연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일에 치이던 컨설턴트에서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놓은 ‘선생님’으로 불리며 윤 대표 또한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보람과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흔한 좌절 없이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윤 대표와 레이즈에게도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
“작년 연말에 투자 유치에 도전했다가 생각지도 않았던 이슈로 투자가 결렬되면서 조금 낙담해 있었어요. 하지만 앞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그보다 더 어려운 일들이 비일비재할 텐데 너무 상심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죠. 레이즈는 큰 범주에서 ‘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타 스타트업들과는 다르게 즉각적인 실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기 때문에 좀 더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더 나은 R팡 웹과 앱 솔루션 개발을 위한 투자가 많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여 미래를 위한 인재를 길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살피면 안 된다고 한다. 윤준민 대표가 그리는 레이즈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저희의 비전은 ‘드림 투 리얼리티(Dream to reality)’에요. 많은 사람의 꿈을 실현해주고 싶어요. 구체적으로 스스로 커리어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것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러면 기업은 더 훌륭한 인재를 수급할 수 있고, 개인은 원하는 분야에 취업하거나 창업을 해서 국가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겠죠. 우선 국내에서 자리를 잡고, 중국과 동남아를 타겟으로 해외 진출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더욱 많은 기업과 개인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레이즈의 비전입니다.”
윤준민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문득 그의 얼굴에 세바시에서 수많은 청중 앞에 섰던 이동진 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윤 대표와의 상담을 통해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그의 책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의 한 문단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내가 하고 싶고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시작하자. 사람들이 미쳤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당신은 그걸 당장 시작해도 좋다는 뜻이다. 모두가 반대하면 할수록, 미쳤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 화려한 비상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일이라면 그게 정말 어렵고 특별한 도전일까? 이제 사람들이 반대하면 이렇게 외쳐보자. “나이스! 사람들이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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