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더 열전 #2]프라이머 권도균 대표, “안정된 직장? 이제 없다”

서른 다섯. 부인 뱃속엔 둘째가 있었다. 무모한 도전인가 싶기도 했다. 빚만 지지 말자, 망해도 개발자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마지노선을 잡았다. 자신은 있었다. 그렇게 10년 몸 담았던 회사를 나와 1997년 보안 회사 ‘이니텍’을, 1998년에는 국내 최초의 전자결제 시스템 ‘이니시스’를 설립했다. 그리고 2008년 3천 300억 원 가치로 이니시스와 이니텍을 매각. 당시 국내 투자회수금액(Exit)중 최고 금액이었다.

프라이머’ 권도균(51) 대표는 회사원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변신한 IT창업 1세대다. 현재는 여러 파트너들과 함께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라이머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스타트업 멘토링으로 바쁜 권대표님을 강남역 부띠끄모나코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초인종을 누르자 권 대표님이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성공한 창업자였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수수한 모습. 갈색 뿔테 안경 뒤로 보이는 눈웃음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묻어났다. 작은 체구, 조근조근한 목소리. 하지만 왠지 모를 기업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그가 왜 스타트업 업계에서 존경 받는 멘토 중 한 명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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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머 권도균 대표

그가 처음 창업을 시작한 나이도 35세. 부양할 가족이 있는 서른 중 후반, 마흔의 나이에도 새로 시작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도전해라. 이제 스타트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안정된 직장은 없다. 젊었을 때 나오는 게 좋은데 무서워서 못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기업에 소명이 있다면 기업에 있는 것도 좋아요… 조만간 프라이머에서는 직장에 있으면서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계획 중이다. ”

권대표의 단호한 목소리에서 스타트업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읽을 수 있었다.

프라이머는 2010년 한국의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이 후배 창업자들을 돕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권대표를 비롯해 이재웅(전, Daum CEO), 이택경(전 Daum CTO), 송영길(Ncomputing, 부가벤처스), 장병규(본엔젤스) 대표들이 함께했다.

지금까지 온오프믹스, 마이리얼트립, 퀵켓 (번개장터), 스타일쉐어 등이 프라이머의 엑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투자 받고 성장했다. 프로그램은 시즌제로 운영되며, 올 1월부터 ‘시즌 3’이 시작됐다. 권대표에게 지난 시즌과 시즌 3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시즌 1, 2,3모두 법인만 다를 뿐 같은 가치관, 방식을 갖고 운영한다. 시즌이 끝나면 새로운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 시작한다. 이번 시즌의 다른 점은 헬스 케어와 HW&SW 융합 분야로 투자 저변을 확대한 것이다.”

이번 시즌에는 대웅제약의 윤재승 대표가 새 파트너로 참여한다. “나는 그쪽으로 경험이 없지만 윤회장님이 그 분야에 통찰력이 있어서 좋은 회사를 소개해 주기도 한다. 그런 도움을 서로 주고 받는다.” 권대표는 앞으로 헬스케어 시장, 먹거리 시장이 점차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구상은 창업 교육 쪽을 좀더 강화하는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고 소진되는 일이지만 그런 일들을 외면할 순 없다. 후배 창업가를 돕는다는 취지로 프라이머를 설립했기 때문에 파트너들도 긍정적이다. 프라이머의 정신을 잃지 않는 길이다.”

프라이머는 다른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들보다 더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들을 발굴해 투자한다.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성공 가능성이 있는 원석들을 찾는다. 프라이머가 대학 내 ‘캠퍼스 세미나’를 많이 여는 이유다. 프라이머는 투자회사로 보이지만 멘토링과 함께 경영 하는 것에 더 가깝다. 원칙과 기본을 중시한다. 파트너가 많아도 지금까지 27 개 스타트업 밖에 투자를 하지 않을 정도로 신중한 편이다. 멘토링 때는 한번 미팅에 5시간 이상 투자 하기도 한다.

“프라이머는 스타트업의 첫 번째 파트너이다. 첫 단추를 잘 끼우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 돈은 때로는 재앙이 될 때도 있다. 돈을 많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멘토링, 경영이 중요하다고 생각 한다. 창업교육과도 연관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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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큐베이팅 스타트업에 거의 공동창업자 처럼 참여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사내 CEO 가 아니라 사외 CEO라고 부른다. 지역과 거리의 장벽은 없다. 구글닥스로 지표를 공유하고 파트너들이 인사이트를 갖고 함께 고민한다.

프라이머의 원칙을 중시하는 정신은 투자 기준에도 적용된다.

투자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주안점을 두는지.

“자기자신을 아는 사람이다.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일정기간 동안 그것에 몰입을 했던 사람. 프라이머는 그런 사람을 찾는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사람이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내 인생을 사는 것 같지만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들을 위해 산다. 삼성에 들어가기 위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남들이 한 이야기를 따라 한다. 자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 하지만 유니크 하다.”

그런 스타트업을 만나보았는가. 사례가 있다면.

‘스타일쉐어’의 윤자영 대표가 인상적이었다. 패션얘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사실 다 똑같다. 특별하지 않다. 하지만 윤자영 대표는 아주 미묘한 생각의 차이와 관점이 있었다. 오랜 관심과 고뇌 속에서 나온 생각들이다. 그리고 ‘텔레톡비’의 서동준 대표. 대학교 1학년이 형,누나들을 이끌고 창업했다. 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은 사업 아이템을 가지고 이 아이템에 관심 있다 하며 찾아온다 ‘참을 수 없는 관심의 얄팍함’ 이 느껴진다.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자신의 철학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다.

권대표는 “프라이머가 특별한 투자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덧붙였다. 내부에서 투자기준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가장 주관적인 것이 객관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프라이머의 주관을 믿는다고 답했다.

투자를 받기 위한 피칭에 골머리를 앓는 스타트업을 위해 피칭 기술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피칭 2분이면 충분하다’ 는 글을 올려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기도 했다.

피칭 정말 2분이면 충분한 것인가.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상대를 간파할 수 있는가.

“피칭이라고 하면 네트워킹 하는 자리에서 잠깐 소개 하는 것이다. 2분이면 충분하다. 설명 해야 할 것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보통 자기가 무엇을 하려는지 모른다. 좋은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말은 안 된다. 윤자영 대표가 스트릿 패션 한다고 했을 때 딱 알았다. 2분이면 안다. 피칭은 명함 받아서 스케줄을 잡는 게 목적이다. 투자자 뇌리에 나를 기억시키는 것. 피칭의 목적은 투자결정이 아니다. 한번에 끝내려고 하지 말아라.”

권대표는 “종종 페이스북에 번개 모임을 만들 때가 있다” 며 “그 때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인데 이상하게 그 때는 아무도 안 온다” 며 웃었다.

최근 스타트업 관련 기관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창업 열풍이 과열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권대표는 “2000년대 열풍에 비하면 열풍은 아니다” 라며 “스타트업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기관들이 많긴 하다. 그리고 모두 똑 같은 방식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전문성이 있는 기관들이 필요하고 지속 가능한 지원인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최근 스타트업 열풍을 따라 가짜 멘토도 많은 것 같다. 이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어떠한지 듣고 싶다. 

“사업가의 멘토가 되려면 사업을 해봐야 한다. 창업은 독특한 영역이다. 실제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멘토를 해야 한다. 남을 흉내내지 않는 멘토가 진짜 멘토다.”

 

스타트업노매드 2014 '오피스아워'에 멘토링하는 권도균 대표
스타트업노매드2014 ‘오피스아워’에 멘토링하는 권도균 대표

 

권도균 대표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업무는 주로 스마트 워킹으로 일한다. 한국에는 일년에 5~6번 방문해 스타트업들을 만나고 멘토링을 한다.  두 시장을 모두 경험한 입장에서 미국과 한국의 스타트업 분위기는 어떻게 다른지 물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환상을 쫓는다. 사실 실리콘밸리가 더 척박하다. 그래서 한국에 들어가라고 조언한다. 한국이 지금 훨씬 분위기가 좋고, 정부지원도 많고, 엔젤 투자자들도 더 우호적이다. 미국은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있다. 그리고 투자를 받기가 굉장히 힘들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줄 알지만 아니다. 미국 역시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

권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에서 배워야 한다” 며 “최근에는 How to Start a Startup 강좌를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미국에서 배워야 할 건 많다. Y –Combinator, How to Start a Startup 강좌를 보면서 미국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인사이트를 얻고 있다. 나 역시 배움을 좋아한다 그래서 여전히 열심히 공부한다.”

예정된 인터뷰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준비한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 주시는 모습에서 냉철한 경영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국 스타트업들의 해외 진출이 아시아로 한정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아시아든 어디든 계속 글로벌 진출을 해야 한다. 미국은 환상을 갖고 가긴 하는데 사실 어렵긴 하다. 나쁜 건 아니다. 삼성, LG 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동유럽 같은 척박한 곳 부터 진출했다. 지방 방방곡곡 팔았다.”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한 성공은 언제쯤 나올지.

“우리가 노력을 더 해야 된다. 노력하면 선진국도 진출 할 수 있다. 실패한다면 실패의 경험이 후배에게 전달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권도균 대표는 앞으로 3주 가량 한국에 머물며 여러 스타트업과 예비창업가들을 만날 예정이다. 2015년 TIPS 운영사로도 선정된 프라이머는 올해 역시 스타트업들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뛸 계획이다. 그의 페이스북을 잘 살펴보자. 가끔씩 올라오는 그의 만남 주선은 조금은 갑작스럽지만, 우리가 원하는 기회를 잡기엔 충분히 좋은 기회가 될 테니까.

글/벤처스퀘어 주승호 choos3@venturesquar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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