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조직들의 위기관리 실패 공식 6개 중 이번엔 2번. ‘타이밍을 놓치고 뒤 늦게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공식에 대한 설명을 해 보겠습니다.
-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다.
- 타이밍을 놓치고 뒤 늦게 커뮤니케이션 한다.
-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하지 않는다.
- 전략 없이 아무렇게나 커뮤니케이션 한다.
- 아무나 함부로 커뮤니케이션 한다.
- 위기에 대한 정의에 있어 조직내부와 외부간 차이를 보인다.
위기 상황에 처해 본 위기관리 매니저들은 공감할 텐데요. 얼마나 스스로가 느립니까? 평소 같은 의사결정 단계와 속력으로는 어떤 위기도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아주 절실하게 깨닫게 되죠. 일선에서는 항상 “위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내려져야 우리가 대응을 하고 말고 할 것 아닌가?”하며 불평합니다. 반대로 위에서는 “우리가 실행을 지시한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제대로 된 것이 없나?”하며 화를 내죠.
양쪽 모두에게 랙이 걸린 꼴입니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정확한 정보들이 취합 분석되어야 하는데, 위기라는 것이 그렇게 종합선물세트 같이 단박에 충분한 정보를 허락하지 않으니 문제입니다. 단편적 정보들과 그 정보들을 딜리버리 하는 많은 관련 직원들의 해석과 의견들이 뒤섞여 취합된 채 의사결정을 종용합니다. 당연히 우물쭈물하게 되죠.
CEO 의사결정을 앞에 두고도 일부 임원은 맞다, 다른 임원은 아니다 논쟁을 하게 마련입니다. 부서장들끼리 서로 손가락질 하면서 왜 문제를 만든 거냐 비판도 하고, 일부는 서로에게 하소연을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CEO는 점점 더 두려움과 혼동의 나락으로 빠져들죠.
병목현상도 늦게 위기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는 큰 이유입니다. 기업 내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가 되는 과정에는 항시 병목이 있습니다. 그 병목이 긴 조직의 경우에는 보고라인도 층층입니다. 또한 보고방식이 상당히 권위적/형식적입니다. 급박한 위기 시에도 잘 정리된 보고서를 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쁜 폰트와 형식을 맞춘 보고서들을 놓고 수정과 수정을 반복하죠. 팀장이 임원에게 임원이 또 상위임원에게 상위임원이 최고임원에게…줄줄이 이어지며 상황은 더욱 더 왜곡되고, 시간은 시간대로 늘어납니다. 결국 상당시간이 흘러 최고의사결정권자에게 보고 되었을 때는 이미 해당 보고서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역사 기록이 되어버린 거죠.
빠르게 대응하길 원하는 기업/조직들은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워룸(war room)을 만들어 한자리에 빨리 마주 앉는 훈련을 하곤 합니다. 대형 위기가 발생하면 모든 평시 커뮤니케이션 채널은 그 역할을 상실합니다. CEO와 임원들간에 휴대전화 통화가 여의치 않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화를 돌리다 보니 출동이 쉴새 없이 일어나기 때문이죠. 위기 시 물리적 공간에서 모두가 서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은 수 백년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소중한 위기관리 체계입니다.
자, 그러면 의사결정이 어떻게든 빨리 내려지면 상황은 금새 달라질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대응 전략이 세워지고 이런 저런 실행 명령이 담당 부서들에게 떨어 집니다. 그 다음엔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상상하시는 그대로입니다. 다들 인상을 찌푸립니다.
법무팀에게 “관련해서 대응 할 로펌을 빨리 선정하세요”라는 긴급한 명령이 떨어졌다고 해보죠. 법무팀장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이슈를 가장 잘 아는 로펌을 수소문합니다. 각각 로펌에 지인들을 찾아 또 전화를 합니다. 미팅을 의뢰하고요. 미팅을 해보고 견적이나 제안을 받아보거나 하는 일상적(?)인 프로세스들이 진행됩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을 하는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홍보팀은 어떤가요? “홈페이지 팝업으로 일단 해명문을 띄우고, 고객들의 불만사항들을 접수하도록 어랜지 하세요”라는 아주 간단한 명령을 받았다고 해보죠. 홍보임원이 홍보실에 내려옵니다. 홈페이지는 누가 관리하는지 물어봅니다. 과장급에게 보도자료 해명문을 한번 써오라고 하죠. 과장이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 청취 하고 감을 잡아서 해명문 초안을 씁니다. 부장이 또 수정과 수정을 하고 임원에게 가지고 올라갑니다. 이후에도 여러분들의 의견이 포함되어 해명문이 완성되죠. 근데 불행하게도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해명문을 자사 홈페이지에 올리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담당하는 부서에 가서 해명문을 줍니다. 디자인을 잡아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 로고를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 폰트는 어떻게 하고, 팝업 사이즈는 어떤 사이즈로 해야 하는지, 홈페이지 어느 섹션에 넣는 것이 좋은지 등등의 질문들이 쏟아집니다. 해명문을 배달했던 홍보실 대리는 수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홍보부장에게 대시 보고 하죠. 또 왈가왈부가 이어집니다. 홈페이지 첫 화면 팝업은 어떠냐? 아니다, 게시판 속에 심자. 아니다, 고객들이 아이디를 치고 로그인 하면 그 때 팝업으로 하자…논란은 이어집니다. (읽기만 해도 지루해 지죠???)
여기에서도 끝이 안 납니다. 일단 어떻게 해서 반나절 시끄럽게 준비 해 팝업을 올렸습니다. 근데 또 문제가 있네요. 모바일로는 팝업이 깨져 보인다는 겁니다. 또 난리가 납니다. 모바일 버전을 또 만집니다. 시간이 갑니다. 중간 중간 실행 프로세스 보고를 하곤 했지만, CEO께서 외부 미팅 나가시면서 모바일로 체크하신 바 엉터리 같은 해명문 팝업이 뜬다고 전화 하셔서 홍보임원에게 싫은 소리를 하십니다. 제대로 일하라고요. 실행 명령이 떨어지면 이렇게 실행을 준비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리니 문제입니다. 뭐든 제대로 하려면 한나절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위기관리 케이스들을 볼 때 대응 시간을 많이 체크합니다. 해당 기업이 상황 발생 이후 빠르게 잘 대응한다는 것은 그 만큼 해당 조직의 위기관리 역량이 발전되어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행준비도 최대한 사전에 가이드라인과 훈련으로 완성되어 있다는 의미죠. 불필요하게 왈가왈부하는 시간을 평소에 미리 제거해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빠르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의미를 가집니다.
외국기업들의 경우에는…정말 이 보다 더 한 ‘참극’이 벌어집니다. 해외본사와의 시차, 사용하는 언어의 다름, 로컬에 대한 이해 부족, 대응 전략에 대한 시각차, 정치적 역학관계 등 여러 이슈들이 더해져서 한국기업들 보다 훨~~~씬 더 많은 대응 시간을 소모합니다. [참고 포스팅: 위기관리 국내기업 VS. 외국계기업]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내부에서는 이렇게 푸닥거리가 생기고 어느 한 명 할 것 없이 패닉에 빠져 여러 활동들을 하는데요, 밖에서 보면 해당 기업은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내부에선 준비라 부르지만, 밖에서는 그걸 침묵이라고 부릅니다. 느려도 너무 느리게 보여지는 거죠.
얼마전 해외에서 대형 항공사고가 발생했을 때 종편의 한 앵커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OO항공은 왜 이 시간에도 아무런 발표나 상황 업데이트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언제까지 우리가 기다려야 할까요?” 이런 상황을 의미합니다. 늦는다는 것은 성공과 멀어진다는 것입니다.
기타 기업/조직이 위기 상황 발생 시 대응에 있어 늦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감지가 늦어서
- 일선 정보보고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쳐서
-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 상 병목이 있어서
- 위기관리 위원회가 의사결정에 시간을 끌어서(경험 부족 등)
- 실행 그룹이 여러 문제로 실행까지 준비시간을 과도하게 소모해서
- VIP께서 침묵하셔서
- 초기에 침묵하다가 더 이상은 안되겠다 해서
마지막으로 이에 대해 종종 위기관리 매니져들이 하는 질문입니다. “대응이 완벽하지 않아도 빠른 게 낫나요?” 근데 이건 전략의 품질에 대한 이슈입니다. 신속성에 대한 측면에서는 일단 최초 대응이 빠르면, 수정 대응의 시간이라도 벌 수 있으니 형편없이 늦는 것보다는 낫다고 봅니다. 대응이 완벽에 가까우면서 빠른 게 당연히 최고죠.
글 : 정용민
원문 : http://jameschung.kr/archives/13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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