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0주년을 맞은 버크셔해서웨이 연차보고서에는 어느때보다 긴 워렌버핏의 주주서한이 있었지만, 버크셔 주주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밋밋한 내용 뿐이었다.
3년 연속 S&P500 지수를 하회한 버크셔 순자산가치 증가율과, 앞으로 버크셔가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낮아질 것이라는 마지막 말이, 현대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존재인 워렌 버핏과 버크셔의 50년이 에필로그에 다달았음을 일깨워 줄 뿐이다. 심심하고 길기만한 보고서를 읽다가 2013년도 연차보고서의 내용이 생각나 다소 요약해 번역해본다. 이게 버핏이 남기는 투자에 대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투자에 대한 생각
(Some Thoughts About Investing)
‘투자는 사업처럼 할 때 가장 현명한 것이다’
– 벤 그레이엄
나의 투자관은 벤 그레이엄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므로 그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한다. 주식투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나의 작은 투자 사례 두 개를 언급하고자 한다.
1970년대 말 인플레이션 광풍으로 중서부 농장 가격은 폭등했다. 그러다 버블이 붕괴되고 토지 가격은 50% 이상 하락했고 과도한 차입금을 끌어댕긴 농부들은 파산했다. 08년 금융위기 때보다 5배나 많은 아이오와와 네브라스카 소재 은행들이 파산했다. 86년 나는 오마하 북부 400에이커의 농장을 28만불에 구입했다. 몇년 전 파산한 은행이 그 농장을 담보로 농부에게 빌려준 금액보다 약간 낮은 금액이었다. 나는 농장일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농사를 좋아하는 아들로부터 농장의 소출량과 비용에 대한 구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이야기로 나는 농장에서 10% 정도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향후 농장생산성이 개선되고 농작물 가격이 조금더 오른다면 이 수익률은 개선될 것이라 기대했고 그 이후에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이 농장에 대한 투자가 손해볼 가능성은 적고, 상승잠재력은 있다는 것을 판단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은 필요없었다. 흉년이 들수도 있고 농작물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서 뭐 어쩌랴. 풍년이나 농작물가격이 갑자기 치솟는 해도 있을 것이고, 흉년이 든들 내가 빚독촉을 받을 일도 없는데. 28년 뒤, 이 농장의 매출은 세 배가 됐고, 매매가격은 5배 올랐다. 나는 여전히 농사를 모르고, 최근 그 농장에 간게 농장을 산 이후 두번째 방문이었다.
1993년에는 당시 내가 경영하던 살로몬 증권의 직원에게 RTC라는 회사에 대해 들었다. 그때도 마침 버블이 터졌을 때였는데, 그땐 상업용 부동산이 문제였다. RTC는 부실 은행이 매각한 빌딩을 갖고 있었다. RTC에 대한 분석도 심플했다. 농장과 마찬가지로 RTC의 빌딩에서 나오는 수익률은 10%였다. 하지만 RTC의 자산관리는 타이트하지 않았고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였다.
더 중요한건 빌딩의 20%를 임대하고 있는 세입자가 시가 70불인 임대료를 5불 밖에 내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9년 뒤 이 임대계약은 갱신될 것이고 RTC의 이익은 증대될 것이다. 살로몬의 직원과 같이 회사를 샀고, RTC의 이익은 세배가 되었고, 배당수익률은 투자원금 대비 35%에 달한다. 게다다 96년/99년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미 원금의 150%를 회수했다. 나는 여전히 RTC의 빌딩에 가본 적이 없다.
농장과 RTC에서 나오는 수익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대박은 아니지만, 이 두 투자는 내 인생 내내 꽤 괜찮았고, 내 아들과 손자 때까지도 괜찮을 것이다.
투자를 할 때,
- 당신은 전문가가 될 필요 없다. 당신 자신의 한계를 알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판단과정을 단순화하고 당시 설정한 한계를 벗어나지 말라. 누군가 빨리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면, “됐어요”라고 답해라.
- 자산의 미래 수익성에 집중해라. 미래 수익에 대한 러프한 가정이 편안하지 않으면 역시 “됐어요”라고 하면 된다. 전지전능따윈 필요없다.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만 알면 된다.
- 당신이 자산의 가격 변화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건 투기다. 난 내가 투기를 잘 못한다는 걸 알고 있고, 투기로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동전을 던지면 반은 무조건 맞는다. 하지만 동전던지기 첫판을 맞췄다고 그 다음판에 대해 뭐가 달라지는가. 최근에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자산을 산다는건 좋은 이유가 안된다.
- 위에 언급한 두 투자에서 나는 대략적인 수익률에 대해서만 생각했을 뿐 가격에 대한 전망은 전혀 한 적이 없다. 경기장에 벌어지는 일에 집중하는 선수가 이기지, 전광판에 써지는 점수를 쳐다보고 있는 선수가 이기겠는가. 주말에 주가를 안쳐다보고 즐겁게 산다면, 주중에도 그렇게 해라.
- 거시 경제에 대해 생각하는건 시간 낭비다. 오히려, 중요한 걸 놓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 두 투자는 86년과 93년에 했는데, 나는 87년과 94년의 금리나 주가지수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그 당시 경제신문에 무슨 얘기가 있었는지 기억도 안난다. 하기사 무슨 얘기가 있었던들, 네브라스카에서는 옥수수가 자라고 빌딩 옆에 있던 뉴욕대학에는 학생들이 입학할 것이다.
내 두 투자 사례와 주식투자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하나 있다. 농장이나 빌딩과는 달리, 주식은 매분 매초 가격을 알려준다. 수시로 가격이 변한다는 건 사실 엄청난 메리트다. 만약, 기분파인 어떤 사람이 내 농장 앞에서 매일매일 큰 소리로 자기가 지불하고 싶은 가겨을 외친다고 해보자. 기분 좋은 날 비싼 가격을 외친다면 그 사람한테 농장을 팔았다가, 기분이 우울할때 싸게 산다면 돈을 훨씬 더 많이 벌었을 것이다.
주식투자자들은, 변덕스럽고 비합리적인 그들의 동료들에게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다. 경제, 이자율, 그리고 가격 그 자체에 대해서 말들이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들 얘기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얘기에 맞춰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장이나 아파트를 사면 수십년동안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가 차트를 보면 그렇게 얼굴이 벌개진다는건 신기한 일이다. 이런 사람들한테는 가격이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저주에 가깝다.
가격변동은 가격이 비쌀때 현금을 쟁여 놓을 수 있는 ‘진짜 투자자’에겐 너무나 좋은 일이다. 공포는 투자자의 친구고, 열광은 투자자의 적이다.
08년 금융위기 때, 나는 농장이나 빌딩을 팔 생각 한 적 없다. 장기적으로 전망이 좋은 건전한 사업체를 100% 갖고 있다면 그걸 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좋은 회사 주식을 갖고 있다면 그건 또 왜 팔겠는가. 물론, 좋은 주식도 실망시킬 때가 있다. 하지만 좋은 주식을 여럿 갖고 있으면 전체적으로는 늘 만족스러울 것이다. 미국의 인재들과 우수한 자산들이 모두 사라져 버릴 수 있겠는가?
찰리와 내가 주식을 살때는, 회사 전체를 인수할 때랑 똑같이 생각한다. 향후 5년 이상 이익의 변동범위를 예측할 수 있는지 먼저 생각해본다. 답이 예스이고, 예상변동치의 최저치와 비교했을 때에도 가격이 매력적이라면 산다. 이익 예측이 어렵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관심 끈다.
지난 54년 동안 일하면서 경제상황이 안좋다고 혹은 사람들이 안좋게 말한다고 해서 매력적인 거래를 물리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범위, 생각할 수 있는 범위 (circle of competence)를 잘 알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게 가장 중요하다. 투자하다보면 실수도 있지만, 원칙을 지키면 그게 재앙이 되지는 않는다. (긴 상승장에서 향후 가격에 예상이나 소망으로 투자하면 재앙이 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향후 5년간의 사업전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희소식이 하나 있다. 그런 전문성이 필요 없다. 미국 기업들은 전체적으로 봤을때 늘 놀라운 성과를 낸다. 다우존스 지수는 20세기에 66포인트에서 11497포인트로 올랐다. 21세기에도 미국기업들은 잘 해낼 것이다. 인덱스 펀드를 사라.
“뭘 살지”만큼 “언제 살지”가 중요하다. 아마추어에게 가장 위험한건 극단적인 과열이 있을때 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럴땐 바톤 빅스의 말이 좋다. “강세장은 섹스와 같다. 끝나기 전이 가장 짜릿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장기간에 걸쳐 분할매수하고, 주가가 많이 빠졌거나 뉴스가 안좋을때는 절대 팔지 말라는 거다. 이 규칙을 따르고, 자산을 다변화하고 수수료같은 비용을 최소화하면 반드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둘 것이다. 사실,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현실적이지만 전문적이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약점을 잘 모르는 전문가보다 성과측면에선 훨씬 나을 것이다.
투자자들이 농장을 서로 사고 팔기를 반복한다면 농장에서 얻는 수익이 거래비용과 자문비용으로 빠져나가 모두가 더 가난해질 것이다. 주식투자에서도 자문을 구하고 거래를 유발하는데만 집중한다면 사회 전체에 수반되는 비용은 커질 것이다. 농장처럼 주식하라. 내 아내에게 남기는 내 유산도 이렇게 투자한다. (이하 생략)
——
블로거가 덧붙이는 말;
주식시장이 단기적인 투기로 넘실 거릴때, 가만히 앉아 바보가 된 기분이 들때 버핏의 이런 말들은 위로가 된다. 단기에 고수익을 구가하는 훌륭한 거래자들이 많고, 그 보다 못한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적어도 이런 말을 생각하면 앞으로 뭘 추구해야하는지 정도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전문투자자가 되는 직업을 택했지만, ‘전혀 전문적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확률적으로 덜 깨지고 좀 더 벌 수 있는 투자에 매료되어 만 10년을 보냈다. 덕분에 여전히 전문이지 않은 사람이 되었지만 즐거운 10년이었다. 앞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일을 해야할 것이다.
버핏은 인덱스펀드를 권하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글로벌기업 500개로 구성돼 있는 S&P500에 비해 아쉽게도 한국의 주식시장 인덱스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1년간 코스피의 상승률은 세계적으로 최악의 수준이다. 울며겨자먹기로 해외 인덱스에 투자하거나, 20년뒤에 존속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업을 골라 장기간 분할 매수해서 투자하는 것이 대안이 될 것이다. 올해 버크셔 보고서에 나와있듯이 주식은 긴 시간흐름에서는 채권이나 현금보다 안전한 자산이다. (인플레이션에서 보호되며, 훌륭한 기업들은 정부나 개인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낸다.)
최근에 집값이 오르고, 전세는 실종되면서, 주택 구입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투자 목적의 주택구입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겠지만, 주거가 목적이라면 버핏의 말을 생각하면 심플하다. 향후 금리나 경제전망에 관심을 갖지 말고, 향후 주택가격이 어떻게 될지에도 관심을 갖지 말고, “내가 지불하는 것은 가격이요, 얻는 것은 가치”라는 말에 집중하면 된다. 집을 사는데 무리하게 빚을 내지 않아야 하며, 최근에 소위 ‘핫’한 지역은 피하고, 10년 뒤에도 이 집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집이라면 매수해도 된다. 소득으로 원금을 갚을 수 없는 규모의 대출이라면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피해야 하고, 3-4년 뒤에는 아이들을 위해서 혹은 직장때문에 집을 팔고 다른 집으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라면 무리해서 억지로 집을 살 이유는 없다.
올해 상반기 건설사들은 사상 최대의 분양물량을 쏟아낸다. 작년에도 분양은 많았고, 2016년부터는 입주가 빠르게 증가한다. 반면에, 가구수 증가율은 내년부터 눈에 띄게 떨어진다. 여유를 갖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정확한 판단. 겸손함. 여유로움. 가장 갖고 싶은 세 가지이지만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흩어져서 늘 어렵다.
그런면에서 자신을 일깨워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동반자, 기다려줄 수 있는 지원자가 있다면 행운일 것이다.
글: 강대권
원문: http://goo.gl/PXMQ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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