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고쳐야할 습관 : 생각없이, 무심코
직장에서 관리자가 되면 거의 매일같이 듣는 흔한 말 중의 하나가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이다. 그놈의 생각은 언제쯤 자라려는 건지 맨날 짧기만 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는 내 입에서 나왔던 것을 포함해서 정말이지 삼 백 번 정도는 들은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그것도 약과다. 생각이 짧은 정도가 아니라 아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말과 행동을 해서 손발 고생시키는 사람이 참 많다. 인터넷 때문인지 가정교육 때문인지 그런 것까진 알 수가 없지만 경험적으로 그렇게 느낀다.
1. 김팀장과 이주임의 사례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부서업무 총괄팀장이 우리 팀 사무실에 헐레벌떡 들어와서 팀장을 찾았다. 김팀장은 마침 사적인 용무가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총괄팀장은 우리 사무실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이주임에게 가서 말했다.
“팀장님 없으면 이주임이 대리서명 좀 해줘. 이거 지금 급해. 엄~청. 부장님 결재 받아서 빨리 올려야 돼.”
“제가요? 그냥 팀장님 오신 다음에 협조서명 받으시면 안돼요?”
“안 돼, 안 돼. 이거 오늘 중으로 결재 받아서 넘겨야 돼. 어차피 이 팀 문서작성 이주임이 한 거잖아? 아니야?”
“네, 종합이야 제가 했죠.”
“그러니까 이주임이 하면 되지. 이딴 거 가지고 팀장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자기가 해줘. 아니, 지가 작성한 문서 대리서명도 못해줘?”
총괄팀장은 상대를 살살 약올리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이주임이 ‘아이, 참… 안 되는데’ 하면서 계속 미적미적하니까 총괄팀장은 밉살스런 표정으로 ‘이런 것도 하나 지 맘대로 못하고 팀장 눈치나 보는 사람’이라고 비꼬기 시작했다. 사무실 반대편에 있는 여직원들도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말이다. 결국 이주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인을 했다.
총괄팀장이 사무실을 나가자마자 나는 이주임을 불러서 ‘저거 빨리 가서 다시 받아오라’고 했다.
“왜요?”
“별로 끝이 안 좋을 것 같지 않으세요?”
“결재 빨리 받아야 된다고 해서 대리서명한 게 뭐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이 사람,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구만…
“이주임. 부장이 저 보고서 검토하면서 ‘이건 왜 이주임이 대리서명을 했지?’ 라고 물어보면 총괄팀장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멍하니 있던 이주임의 얼굴은 갑자기 사색이 되었다. 부장은 최근 김팀장의 업무 전반을 못마땅해 하고 있었다. 팀장은 그 방에만 들어가면 박살이 났고, 회의만 끝나면 이주임 등의 부하직원들을 들들 볶아댔다. 그러니까 만약에 이주임이 대리서명한 보고서가 발단이 되어서 김팀장이 일과중 무단으로 사적인 외출을 한 사실을 부장을 알게 되는 순간 일은 아주 더럽고 지저분하게 돌아갈 것이 뻔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이주임은 그가 평소 일을 처리하는 습관대로 ‘생각없이, 무심코’ 대리서명을 한 것이다.
2. 생각없이, 무심코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
이메일을 보낼 때 문서를 첨부하지 않아서 조직에 큰 손해를 입히는 사람, 분위기 모르고 회의시간에 옆 사람 노트에 낙서하다가 공개적으로 욕먹는 사람, 자판기에서 뒤로 홱 돌다가 뒤에 서있던 과장님 와이셔츠에 커피 쏟는 사람 등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
대신 받은 전화에 말실수를 해서 괜히 된통 혼나는 사람, 오후 두시 반에 과장이 ‘팀장 어디 갔나?’ 라고 물어보는데 ‘점심 먹고 못 봤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 “1/4분기 결산보고서 보냈어?”라는 과장의 질문에 일단 보냈다고 해놓고 빨리 끝내려고 “네”라고 대답했는데 옆에서 듣다가 “그거 아직 안 보냈잖아”라고 구지 정정해주는 사람 등 무심코 말하는 사람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옆구리와 등을 내놓은 채 스릴 넘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그런 사람일수도 있고.
3. 어떻게 해야할까. 습관도 연습이다
생각없이, 무심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자각적인 노력을 해서 고쳐야 한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난 후에 언행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후회할 일을 저지르고도 매번 ‘아, 난 왜 이러지’ 하면서 자책하는데 그친다면 그 다음에도 앞으로 나아갈 바가 없다. ‘난 왜 이러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단 하나라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입으로 바로 나오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즉각 반응하지 않는 연습을 하면 좋다. 상대방이 어떤 말을 했을 때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는 연습은 매우 효과적이다. ‘음… 0000 말씀이시죠?’라고 되물어 약간의 시간을 버는 연습도 좋다. (그런데 이건 사람 봐가면서 구사해야 한다.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불난데 기름 붓는 격)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말실수와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고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할 것을 가정하여 자신이 할 말을 적어보는 연습도 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손발부터 움직이고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해보자. 명상과 호흡은 그 지루함만 견뎌낼 수 있다면 상당히 효과가 높다. 가까운 곳에 있는 수련원이나 요가학원을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 제어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다. 시간이 날 때 간단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도 좋고 속으로 숫자를 세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하여 반응속도를 늦추는 방법도 있겠다.
어찌되었건 ‘생각없이, 무심코’는 무조건 고쳐야 한다. 직장생활이 길어지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생각없이, 무심코 저지른 실수의 파장은 커질 것이다. 그와 더불어 주변 사람들의 당신에 대한 평판도 그리 좋지는 못할 것이다. 생각없이, 무심코 말하고 행동하여 스스로를 옭아매고 손발을 고생시키는 사람은 예외없이 잡담이나 회식 자리에서의 놀림감, 안주감이다.
작은 일에 실수가 잦은 사람에게는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을 맡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작은 일을 대하는 태도에 미루어 큰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유추하기 때문이다. 또한 큰일을 맡겼을 때 별것 아닌 실수로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을 수포로 돌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4. 이주임은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에 예로 들었던 일화로 돌아가 보겠다. 총괄팀장은 한번 받은 대리서명을 무효화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보고가 코앞인데 언제 보고서 표지를 다시 프린트해서 어느 세월에 다른 과장, 팀장 협조서명을 받을 것인가.
결국 총괄팀장은 이주임에게 ‘사람이 이랬다저랬다 한다’고 면박을 준 후에 유유히 부장방으로 들어갔다. 회사 외부에 있던 김팀장은 난데없이 걸려온 부장의 전화에 부리나케 사무실로 돌아왔다. 잠시 후 부장실에서는 고함 섞인 질책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김팀장과 이주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나는 이주임이 대리서명을 한 서류를 되돌려 받으러 가자마자 일거리를 생각해내서 외근을 나갔고 거기서 곧장 퇴근했다. 다음날 출근과 동시에 몇 명이 달싹달싹 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고 내게 다가오기에 공개적으로 못을 박았다. ‘어제 외근 나갔을 때 일어난 일 중에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에게가 아니더라도 어제 오후에 있었던 일을 떠들고 다니면 내 귀에도 들어올텐데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고..
이주임은 내 조언과 다음날 내 선언이 두고두고 고마웠던 모양인데, 이주임 미안. 거기에 당신에 대한 호의는 없었어요. 당신이 생각없이, 무심코 저지르는 실수와 그 후일담을 더 이상 보고 듣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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