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180개국 예술·창업가 모였다…가장 핫한 `스타트업 용광로`

서독과 동독을 갈랐던 베를린 장벽을 기념해 세워진 독일 베를린 월 메모리얼 인근 로젠슈트라세(Rosenstrasse) 거리. 오래된 유럽 도시답게 100년도 더 되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우편함마다 컬러풀한 회사 로고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6층짜리 한 건물에는 10개 기업이 입주해 있었는데 8곳이 스타트업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인 오후 6시가 되자 후드티와 청바지, 스니커, 캐주얼 차림을 한 20·30대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베를린
베를린에서 창업한 모바일앱 스타트업 ‘앱 리프트’ 직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중국 한국 인도네시아 등 국적이 다르지만 하나같이 베를린은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한 도시라고 말한다.

서울 홍대입구나 가로수길처럼 젊은이들이 모이는 명소인 하케셔 마르크트가 바로 옆이다. 레스토랑과 펍(pub), 갤러리, 패션 잡화점 등이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는 젊은 사람들로 가게들이 북적거렸다. 노천카페에서 삼삼오오 모여 병맥주를 마시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베를린 한복판인데도 독일어는 전혀 들리지 않고 유쾌한 영어로 깔깔 웃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poor but sexy city).’ 베를린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다. 독일 정치 수도지만 동서독 통합 이후에도 별다른 산업·경제 기반이 없었던 베를린이 자유분방한 문화와 스타트업이 결합하면서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베를린시에 따르면 최근 매년 일자리가 2만~3만여 개 생겨났다. 스타트업 활약이 컸다는 분석이다. 2013년 기준 인구 1만명당 스타트업 수는 베를린이 121개로 독일 도시들 가운데 가장 많았다. 부동산 평가 포털인 라무디 등은 베를린 스타트업 수가 5년 안에 영국 런던을 제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베를린에서도 옛 동독에 속했던 지역은 쓸모없어진 공장과 노후 주택 등으로 우중충했다. 이런 공간을 빠르게 채워나간 게 저렴한 집값과 물가를 찾아 전 세계에서 밀려든 젊은 예술가와 벤처 창업가들이었다. 2013년 구글이 무너진 베를린 장벽 바로 옆에 있던 대형 공장을 개조해 스타트업 지원 시설인 ‘더 팩토리 베를린’을 열면서 스타트업 붐이 한층 뜨거워졌다. 하케셔 마르크트도 주변에 스타트업이 늘고 젊은 사람들이 모이면서 서울 홍대처럼 패션과 음악, 미술 등 젊은 예술문화 발신지로 거듭났다. 새로운 레스토랑과 갤러리가 생기고 기존 가게는 인테리어를 바꾸는 등 거리 풍경이 밝아졌다.

모바일앱 마케팅 플랫폼을 만드는 ‘앱리프트‘도 2012년 창업해 이곳에 본사를 뒀다. 현재 서울뿐 아니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인도 델리 등으로 지사를 확장했다. 프랑스에서 건너와 앱리프트에 취직한 토머스 소머 씨는 “주택 임대료가 런던·파리보다 절반 이상 싸다 보니 주변에 월세 때문에 이사를 간 사람을 못 봤다”며 “파리만 해도 일하기엔 좋지만 월세가 비싸 젊은 사람들이 살기 어려운 반면 베를린은 일하면서 동시에 살 수 있고, 살고 싶은 도시”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국적인 키아라 가렐리 씨는 “교통이 편리하고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이 잘 갖춰진 데 비해 물가가 저렴해 꿈을 갖고 도전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각국에서 모인다”며 “다른 유럽에서 느낄 수 없는 베를린만의 활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베를린은 180여 국가에서 온 이방인으로 이뤄졌다.

젊은 예술가도 도시에 활력소다. 베를린 시내에는 낙서(그래피티·graffiti)가 된 건물이 수두룩하다. 형형색색 스프레이로 기하학적 무늬를 그린 것도 있지만 금색 수갑을 찬 손으로 넥타이를 매는 모습 등 사회 메시지를 담고 있는 그림도 많다. 다른 유럽 도시들은 그래피티를 단속하지만 베를린은 지자체와 건물 소유주까지도 ‘컬처 브랜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도시가 거대한 ‘캔버스’인 셈이다. 이 때문에 베를린은 아티스트에게 가장 저렴한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도시로도 인기가 높다.

독일2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핫한 스타트업 도시로 부상했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성장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로켓 인터넷’, ‘우가(Wooga)’, ‘잘란도(Zalando)’ 등을 제외하면 성공한 스타트업이 많지 않은 데다 베를린 스타트업에 흘러들어간 투자금은 실리콘밸리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어서다.

하지만 세계에서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계속 모이고 참신한 아이디어가 쌓이면 베를린에서 제2의 구글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낙관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었다. 독일 정부도 최근 독일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5억유로(약 5900억원)에 달하는 성장펀드를 운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베를린 벤처기업 딜리버리 히어로의 콜린 다비셔 세일즈 글로벌 총괄 이사는 “베를린이 부유한 도시가 되려고 했다면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폄하됐을 것”이라며 “도시의 다양성과 실용성이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고 매력 있는 도시로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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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근우 차장(팀장) / 정승환 기자 / 임영신 기자 / 안병준 기자 / 국토연구원 = 이왕건 연구위원 / 박세훈 연구위원 / 박정은 연구원 / 송지은 연구원
원문: http://goo.gl/knYU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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