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하이드] 지킬편 :: 대면보고의 ‘아주 간단한’ 원칙과 준칙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업무협조차 협력회사의 한 사무실에 간 적이 있다. 회사의 분위기도 보고 협상에서의 우위도 차지할 겸 나는 약 4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사무실 한쪽 벽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었다. 평화롭고 평범한 오후였다.

나는 서류를 검토하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도 하고 사무실을 슬쩍 훑어보기도 했다. 건너편에는 한 직원이 상사에게 보고서를 검토 맡고 있었다.

그러다가 본의 아니게 오고가는 대화를 듣게 되었다. 나중에는 듣지 않으려 해도 귀에 들어왔는데, 속사정을 모르고 듣는 내가 속이 다 터질 지경이었다. 추측해 보건데 기존에 축적한 데이터를 정리해서 통합 D/B로 구축/활용하기 위해 용역사업을 제안하는 보고서였던 것 같다. 그 대화 중 한토막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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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만담콤비 같은 대화

“여기에서 아카이브가 D/B랑 뭐가 다른 거지?”

“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함) 아카이브랑 D/B 말씀이시죠? 음… 이번에 아카이브를 만들자고 하는 건, 제가 봤을 때는 그러니까, 기존의 데이터를 업체에서 함부로 나누거나 하면 안 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시스템 구축방안에 대해 미리 토의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시스템 구축방안은 갑자기 또 뭐야?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아카이브가 뭐냐고.

“네? (또 당황함) 아카이브요? 아카이브는 기존의 데이터베이스를 시스템화 해놓은…”

“보고서 다시 작성해와. 아카이브, D/B, 시스템… 너무 복잡해. 실무자가 보고서 내용도 정확히 모르고 뭘 하겠다는 거야?”

그 뒤로도 그 답답한 대화는 더 이어졌다. 남의 일을 가지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참 듣고 있기조차 민망한 대화였다. 상사는 ‘그러니까 아카이브가 뭐냐고 묻잖아. 아카이브가 뭔지 대답을 하라니까 자꾸 뭔 딴소리야’라며 역정을 냈고, 보고자는 ‘과장님, 이 보고서 지금 수정 재보고만 다섯 번째인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말씀을 좀 해주시죠’라고 말했다. 다시 상사는 ‘보고자가 내용파악도 안된 채로 결재를 들어오는데 내가 여기다 어떻게 사인을 하란 말이야’라고 했다. 결국 보고자는 ‘제가 왜 보고자입니까. 이거 제가 기안만 하고 과장님이 보고하실 거 아닙니까. 보고서 작성도 원래 과장님 일 아닙니까’ 라고 말해버렸다. 그 이후는 뻔하다. 이게 니 일 내 일 따질 일이냐 ⟶ 그럼 제 일 입니까 ⟶ 그럼 니 일이 아니면 누구 일이야 ⟶ 자꾸 니 니 하지 마십시오 ⟶ 뭐야?! 그리고 대폭발! 참사도 그런 참사가 없었다.

 

대면보고에 성공 원칙이 있을까?

이런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도 대면보고의 현장에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다. 상사와 보고자의 의사소통 문제일수도 있고 단순한 감정대립일 수도 있으며 상사나 보고자 어느 한쪽의 미숙함이 원인일 수도 있다. 위에 든 사례는 보고서의 내용을 떠난 ‘보고하는 스킬’ 쪽에 문제가 있는 경우인데, 실은 대면보고에서 소위 ‘까이는’ 이유의 대부분이 이것이다. 얼마든지 상사에게 보고를 잘 해서 한쪽 귀퉁이에 필기체로 쓴 ‘good’과 함께 사인을 받을 수도 있는 내용인데 말이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보고의 성공원칙은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일 잘 해놓고 보고 과정에서 성과를 다 말아먹는 보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보고라는 행위 자체가 성공가능성이 낮은 것이어서 그럴까?

전문가들이 손꼽는 보고의 성공원칙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하라

현실적인 한국의 직장 사무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보고 스킬 그 첫번째는 우선 상대가 속 터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물정 모르는 신입사원이나 일 잘 못하는 사람의 공통점 중 하나는 ‘상대가 물어보는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상사가 물어본 것은 ‘아카이브가 뭐냐’는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보고자는 아카이브가 무엇인지를 대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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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내용을 잘 숙지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중의 기본인데, 그는 보고서의 핵심키워드인 ‘아카이브’의 뜻이나 개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이해하는 범위 내에서의 아카이브가 무엇인지는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고자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린 후에 질문과는 상관이 없는 대답을 했다. 자신이 예상하지 않은 혹은 모르는 것에 대한 질문을 했기 때문에 그 상황을 회피하거나 모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묻는 말에 이것이면 이것, 저것이면 저것 대답을 해야 한다.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으면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자신이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내용이면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답변을 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보고자가 그냥 ‘모르겠습니다’ 하면 그것으로 넘어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보고자가 그것도 파악 안 하고 보고서 들고 왔어?’ 라든가 ‘이거 엉터리구만’ 하면서 결재를 반려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모르겠다고 대답하기 보다 다음과 같이 하는 편이 좋다.

“아카이브의 정확한 정의에 대해서는 따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일단, 지금은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보고 드리고 나서 따로 해당 내용을 숙지하고 재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대의 관점에서 보고하라

프레젠테이션이나 보고의 노하우를 다루는 많은 글을 보면 대개 ‘내용을 확실히 파악하라’를 첫 번째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두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이 말하려는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난 후에는 대부분 ‘보고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라’는 조언에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회사의 대리가 보고의 내용을 아무리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더라도, 부장급의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수준의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므로 한발 더 나아가서 보고의 내용을 ‘상대의 관점에서’ 재차 소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상대의 관점에서 보고를 소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대두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검증된 절차와 방법들이 존재한다.

우선 자신이 부장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즉, 보고를 받는 대상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보고서에 사인을 하기 전에 어떤 부분이 궁금할 것인가, go / no go 의 상황 하에서 택일의 의사결정을 한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 될 것인가 등이 그것이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익히 들어본 브레인스토밍이나 트리분석법도 도움이 된다. 육하원칙에 의한 방법, 강약점 분석, 시간-공간-능력에 의한 분석, 직관 및 통찰 등도 모두 유용한 방법들이다.

 

만능열쇠를 준비하라 : 말문이 막혔을 때,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사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시간벌기 방법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예! 생각할 시간을 5초만 주십시오.” 이 말은 생각지 못한 질문을 받았을 때 유용하다. 설사 5초 후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멘트는 내가 신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어떤 부류의 상사는 가지고 온 보고서가 어떤 것이든 반드시 한번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냥 사인만 하면 자신의 존재가치가 엷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럴 때 대답을 섣불리, 잘못하면 ‘다시 검토해서 가지고 와’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그처럼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는 상대를 만족시킬 때도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멘트는 유용하다.

살짝 ‘놀랍다. 역시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음… 딱 5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맞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재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라고 말하여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든, ‘적절한 지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라고 유도하여 끝까지 사인을 받아내든 그것은 상황에 따른 당신의 선택.

 

보고의 타이밍을 잘 잡아라

하고 많은 시간 중에 왜 하필 상대가 기분이 나쁘거나 피곤한 시간대에 보고를 들어가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어느 조직을 가나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깨질만한 사안을 들고 월요일 주간회의에 다녀온 상사에게 골치 아픈 문제거리를 가지고 들어가는 사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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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전에는 사무실 난초조차 피곤해보인다. ‘월요일 오전에는 보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약속이다. 제대로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이 세상 모든 사무실의 문에는 아주아주 작은 글씨로 ‘월요일 오전에는 서로 귀찮게 하지 맙시다’라고 써있다.

퇴근 직전 30분도 마찬가지이다. 상황과 때에 따라 보고를 쉽게 끝낼 수 있는 마법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잘못 걸리면 “지금 나보고 야근하라는거야?“ 라든가, ”퇴근 직전에 보고서를 가지고 오면 내가 어떻게 검토를 하나?“ 라는 핀잔을 들을 수 있다.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할 때도 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행정간소화의 관점에서 보자면 아주 잘못된 관행이다. 프레젠테이션이나 보고서의 형식에 시간을 쏟기보다는 내용이나 실질적 업무추진에 더 관심을 기울이라고 주문하는 기업도 많다.

그러나 ‘현실의 한국 사회와 회사 사무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같은 보고서라도 보고서의 틀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거나 문장이 정제되어 있지 않으면 ‘제대로 고민한 흔적이 안 보인다’고 치부해버리는 상사들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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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어벤져스급 프레젠테이션이 필요할지도..

같은 내용의 기고글을 한컴오피스 명조체로 보냈을 때는 재검토 주문을 받았다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맑은고딕으로 옮겨 그대로 다시 보내니 글이 좋다는 멘트를 받은 적이 있다.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도 마찬가지다. 내용 자체가 중요한 제안에서 기본템플릿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정성이 안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었다. 다시 작성하여 보고하라고 하기에 허례허식이 잔뜩 들어간 모 정부부처의 프레젠테이션 템플릿에 내용을 그대로 붙여 넣었다. 그랬더니 ‘그래. 이거야.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구만. 이렇게 하니까 눈에 확 들어오고 정성도 느껴지잖아. 얼마나 좋아’라고 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떡국 위에 정성들여 다듬은 색색의 고명을 올리고, 시간을 들여 색조화장을 한 후 외출하는 이유도 사실은 다 같은 맥락이 아닐런지..

글/ 남정우

 

이 글은 보고와 보고서 작성의 원칙 등에 관해 정리해놓은 다음과 같은 전문사이트의 글을 참고, 발췌, 정리한 것임을 밝힙니다. www.businesstrainingdirect.co.uk/ ; www.amanet.org,
키워드 : principles, knowhow, presentation, review, paperworks (최종검색일 : 2014.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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