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하이드] 하이드편:: 어떻게 해야 글솜씨가 늘까

어떻게 해야 글솜씨가 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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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얘기하자면 이 글은 ‘글솜씨’에 관한 것이다. 글쓰기의 본질, 작가로서의 진정성, 이데아의 진실을 현실로 옮겨오는 문장, 이런 것에 관해서는 조금도 쓰고 있지 않다. 글솜씨에 관한 개인적 경험담과 생각을 풀어쓰는 것이니 반론이 있다면 나도 생각을 넓힐 겸 좀 들어보고 싶다.

몇 년 전 몸을 담았던 전략기획파트의 한 팀장은 촌철살인의 한 마디로 보고나 회의를 요약하는 버릇이 있었다. 전략기획파트의 팀원들은 파트가 파트니만큼 항상 머리를 쥐어짜내서 무에서 유를 만들고 유에서 더블(double)유를 만드는 아이디어와 기획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그 아이디어라는 것이 언제나 현실성에 기반한 것은 아니어서 때때로 있을 법 하지 않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을 제시하는 팀원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 팀장은 언제나처럼 ‘문서로 만들어서 가져와’라고 했다. 말로는 누구나 줄줄이 떠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서의 양식을 갖춘 글로 써서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트레이닝된 능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나 기획을 보고서로 만들 때는 군더더기는 버리고 하나의 ‘스토리’를 머리에 그려야 한다. 즉, 간결한 요약형의 보고서라 할지라도 그 속의 내용이 물 흐르듯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기획의 목표가 무엇인가, 그것을 목표로 한 배경은 무엇인가, 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사업을 실행했을 때의 이익은 무엇인가, 실행 간 고려사항 혹은 제한사항은 무엇인가, 고려사항과 제한사항을 충족시켜 일정기간이 지났을 때의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만일 이 기획안이 통과된다면 향후추진을 어떻게 할 것인가처럼 위에서 아래에까지 한 눈에 술술 읽히도록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잘 읽히는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름의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한데 또 그런 노력과 경험이 있다고 해도 ‘글솜씨’가 없으면 세련된 보고서를 만들지 못한다. 글솜씨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노력과 경험의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다.

글솜씨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이미지화할 수 있는 공간지각 능력과 그것을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는 묘사력의 합이다.

 

첫 째. 명확하게 이미지화하기 = 단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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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명확하게 이미지화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단순화’이다.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공간 혹은 사건의 핵심, 본질, 특징을 한 두 가지의 개념이나 이미지로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생각이 복잡하고 말이 두서없는 사람은 이 단순화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글솜씨도 부족하다. 이런 사람은 생각을 글로 만들어내기 위한 중간과정을 소화할 능력, 경험, 장치가 없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고 말을 잘 하는데 글은 제대로 쓸 줄 모른다.

그러니 평소부터 생활습관, 업무방식을 ‘단순화’하는 것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첫걸음인 셈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나 대화를 가능한 한 추리고 추려내서 핵심이 무엇인지를 짚어내는 것이 단순화의 훈련방법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예전에 진로에 대해 생각이 복잡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던 후배와의 대화 일부를 적어보겠다.

“선배, 나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꼭 대학을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노래하는 게 좋은데 대학 안 가고도 할 수 있잖아요. 집이 어려워서 등록금 내기도 벅찬 상황인데, 실용음악학과를 나온다고 먹고 사는 게 나아지지도 않잖아요.”

“단순하게 생각해. 결론은 결국 실용음악학과가 있는 대학을 간다 / 안 간다의 두 가지잖아. 중간의 다른 걸 전부 버려.”

“그러니까요. 저는 음악을 할 때가 제일 좋은데 미래를 생각하면 이걸로 먹고 살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주변에서는 해보라는 사람도 있고 관두고 직장생활하면서 사는 게 낫다는 사람도 있어요. 지금 솔직히 대출 안 받고 대학 다닐 수는 없는데 그거 결국 제가 다 갚으려…”

“잠깐. 말 끊어서 미안한데. 단순하게 하라니까.”

“어떻게요?”

“네가 하는 말들을 간단하게 핵심만 정리해봐. 네 고민은 그러니까, 첫째, 왜 실용음악학과를 가야하는가. 둘째, 대학 가는 게 음악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 셋째, 등록금이 비싼데 돈이 없다. 넷째, 이걸로는 먹고살기 힘들것 같다로 요약되지?”

“네.”

“그런데, 들어봐. 이걸 또 다시 한 번 거르자고. 실용음악학과, 대학, 음악 어쩌구 꺼낸 얘기는 첫째, ‘목표를 정하지 못했다’로 정리되고, 먹고 사는 문제 이 얘긴 둘째,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거고 나머지는 어쨌든 간에 셋째, ‘돈이 없다’는 거잖아. 그렇지?”

“네.”

“그런데 말이야. 미래란 원래 불투명한 거야. 원래 불투명한 거라고. 알 수 없고 불안하고 그런 거야, 원래가 말이야. 그렇지? 네가 어떻게 할 수 없지? 나도 못해. 그리고 집에 돈이 없는 문제를 네가 어떻게 할 수 있어, 없어?”

“없죠.”

“그럼, 남은 거 한 가지는 뭐야.”

“……”

너는 지금 목표를 정하지 못 한 거야. 그거 하나야. 목표를 정하지 못하니까 미래가 불투명한 게 더 불안하고, 목표가 없으니까 내야할 등록금이 아깝게만 느껴지는 거야. 목표부터 정해, 목표부터. 구체적으로, 육하원칙에 의해서. 그냥 술 먹고, 누워서 고민하지 말고 책상에 앉아서 적어도 세 시간 이상 진지하게 고민해. 니 인생이 달린 문제니까.”

이런 것이 (극단적 대화의 예를 들긴 했지만) 단순화이다. 쓸모없는 생각의 가지를 쳐내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골라내는 작업이다. 글쓰기 전의 준비작업과 같은 것이다. 자신 주변의 공간, 사건, 그리고 여기에 대한 내면 심리의 움직임이나 인식을 단순화하지 않으면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둘 째. 그대로 글로 옮길 수 있는 묘사력 = 묘사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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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더하기 1은 2’ 라는 말처럼 들릴 법하지만, 실제가 그렇다. 묘사력은 묘사하는 훈련을 통해 키워질 수밖에 없다. 공간, 사건, 인식과 같은 다차원의 세계를 글이라는 평면의 영역에 담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반복훈련 이상의 방법이 없다. 다만 문제는 이 글의 애초 작성 배경이 ‘직장에 다니는 현대인이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서는 글솜씨가 필요하니 글솜씨 기르는 법을 주장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안 그래도 바쁜 직장인이 언제 어떻게 무언가를 묘사하는 글쓰기 훈련을 반복해서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내 경험에 의하면 ‘할 수 있다.’ 그리고 직장인이 보고서를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글쓰기 훈련을 ‘해야만’ 하지 않는가? 좋은 방법은 출퇴근 길의 대중교통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머리 속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잠 안 오는데 억지로 자거나 눈도 아플텐데 스마트폰으로 오락하지 말고 지하철 안에서의 군상들, 버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묘사해보는 것이다. 물론 직접 운전을 한다면 한계가 있다. 운전을 하는 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위험하니까 말이다. 어쨌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다음과 같이 머리 속에 풍경을 묘사해보는 것이다.

‘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의 반은 건물이고 반은 사람이었다. 겨울의 을씨년스런 바람을 피해 건물에 바싹 붙어 걸어가는 한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초록색 어그부츠를 신고 있었는데 나는 초록색 어그부츠 따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발에 커다란 애벌레를 신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고보니 추위에 움츠린채 걸어가는 그녀의 걸음걸이 역시 꾸물꾸물 기어가는 애벌레와 비슷했다’

이런 묘사를 몇 번의 시도로 해내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또 익숙해지기 전에는 머리도 아프고 다른 생각이 들어와서 한 문장을 만들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일주, 한 달, 일 년을 반복하다 보면 단순화한 이미지를 묘사하는 능력은 분명히 성취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글솜씨는 아이디어와 기획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행가능한 계획과 보고를 위한 문서로 변환하는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아, 참고로 앞서 예시로 든 음악을 하고 싶어하던 후배는 결국 뚜렷한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지방의 이름 없는 2년제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했다. 목표를 정하지 못했으니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고 치열히 연습도 못한 채 복잡한 고민만을 했다. 학교가 지방에 있고 정규 4년제가 아니라도 음악은 실력이 입증하는 것이라서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삶의 목표를 스스로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는 후배의 남은 인생이 얼마나 고달플지 나는 그게 걱정이다.

글/ 칼럼리스트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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