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전자제품은 어디로 가나.
‘챌린징 더 칩’이라는 단체에서 펴낸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라는 보고서를 보면 전자 폐기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전자제품은 어디로 갈까. 늘 옆에 두고 만지는 거라 특별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유해 화학물질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낡은 TV와 냉장고, 컴퓨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받거나 잃기도 한다.
인 도의 수도 델리에서는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폐기물을 수집하고 회수하는 일을 한다. 대부분의 작업이 이들의 집 뒷마당에서 이뤄진다는 것도 놀랍다. 지역 중개상들은 컬러 모니터와 컴퓨터를 10~15달러에 사들여서 분해한 뒤 40~50달러를 받고 되판다. 아무리 못 쓰는 부품이라도 분해하거나 녹여서 모으면 헐값이라도 돈이 된다. 인건비가 워낙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를테면 모니터의 부서진 유리조각을 1kg에 2센트 이하로 사들여서 우타르프라데시의 유리 제조업자에게 팔면 4센트 이상에 팔 수 있다. 모니터의 금속 프레임은 200~250g 정도 되는데 고철 판매상에게 팔면 1kg에 15센트를 받을 수 있다. TV 수상기의 전자 튜브에 들어있는 구리는 TV 한 대에 60~200g 정도 나오는데 1kg에 1.3~1.5달러 정도 받을 수 있다. 중고 콘덴서도 1개에 4~40센트 정도 된다.
이밖에도 PVC 플라스틱 케이스는 1kg에 2센트, ABS 플라스틱은 1kg에 32센트 정도 된다. PCB라고 부르는 회로 기판은 1kg에 13센트에 사들여서 납을 뽑아낸 다음 10센트에 되 팔 수 있다. 컴퓨터 마더보드 200kg에서 3kg 정도의 납이 나오는데 1kg에 2.17달러 정도 주고 팔 수 있다. 이밖에도 금 도금 핀은 1kg에 60달러 적층 철심은 1kg에 30달러까지 나간다. 고장난 IC 칩에서도 알루미늄을 뽑아내는데 1kg에 87센트~1.08달러를 받을 수 있다.
노동자들은 컴퓨터 부속 더미 속에 맨 바닥에 앉아서 맨 손으로 작업을 한다. 환기도 제대로 안 되고 고열과 온갖 먼지들, 그 위험을 모르기는 어른이나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드들은 납과 카드뮴, 크롬, 수은 같은 유해 중금속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인도에서 전자 폐기물 재활용 산업이 발달한 것은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자 폐기물 수입을 금지했지만 인도는 아직 그런 규제가 없다.
만약 이런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아니라면 이런 전자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 땅을 파서 묻을까. 바다에 던져 넣을까. ‘챌린징 더 칩’은 ‘생산자 책임 확대 제도’와 ‘컴퓨터 되가져가기 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재사용과 재활용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제품을 설계하거나 독성을 줄일 경우 보조금을 주고 또는 애초에 제조업자들에게 재활용 비용을 선불로 부과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스웨덴은 생산자에게 중고 전자제품의 1 대 1 보상 판매를 의무화하고 그렇게 소화되지 않은 전자 폐기물은 지방정부가 처리하도록 돼 있다. 이런 시스템이 제도화되면 애초에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유해 화학물질 사용을 줄이고 좀 더 재활용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일단 팔고 나면 끝이다. 소비자도 다 쓰고 버리면 끝이다. 버려진 전자제품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일본에서는 생산자가 전체 무게 50% 이상의 부품과 원료를 재활용해야 하는 원칙이 있다. 새로운 제품을 팔려면 소비자가 지금까지 썼던 제품을 수거해야 한다. 이처럼 생산자 책임을 강화한 이후 단기 또는 장기 임대나 중고물품 거래를 중개하는 시장이 부쩍 늘어났다. 만약 보상판매를 하지 않으면 그 비용을 소비자가 댄다는 게 스웨덴과 다른 점이다. 스웨덴의 경우 그 비용을 모두 지방정부가 댄다.
컴퓨터 회사 델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이 회사는 처음에 사용자들에게 수거 비용을 부담시키겠다고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무료 수거행사를 열기 시작했다. 교도소와 제휴해서 컴퓨터 부품을 재활용하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역시 비난에 부딪혀 철회하기도 했다. 결국 델은 제대로 된 비용을 치르고 전자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책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유해 화학물질의 남용을 최소화하고 둘째, 생산자+소비자와 최대한 가까운 지역에서 폐기하고 셋째, 저렴한 노동력을 핑계로 재활용 산업을 해외로 떠넘기는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유해 폐기물은 생산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소비자에게 그 부담이 전가 되겠지만 생산자를 압박하는 것이 유해 화학물질의 남용을 최소화하는 근본 해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컴퓨터 되가져 가기 운동(CTBC, Computer Take Back Campaign)’을 제안해 본다. 되가져 가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를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다시 재활용하는데 비용을 들여야 한다. 제조업체가 먼저 투자를 하고 소비자가 그 비용 부담을 나누는 방식이 돼야 한다. 팔고 나면 끝, 다 쓰고 버리면 끝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에 모두 책임이 따른다는 걸 인식하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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