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캠블리에서 일하고 있는 이희승님이 국내에서는 잘 모르는 실리콘밸리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벤처스퀘어에 기고해 주기로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체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벤처스퀘어 독자여러분!
캠블리(Cambly)의 이희승입니다. 지난 번 포스팅이 스타트업피플이 열광하는 페스티벌 버닝맨 (Burning Man)에 관해 다소 객관적인 입장에서 소개하는 글이었다면, 이번 이야기는 굉장히 일인칭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글을 다 읽고 나신 후에는 제가 이 이색적인 이벤트에 매료되었던 것 만큼, 여러분들도 스타트업 페스티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
블랙락시티 (BRC) 가는 길
버닝맨 축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길이 안 막힌다는 가정 하에 대략 8시간을 걸리는 거리에 있습니다. 저희의 여정은 축제의 공식 시작일인 8월30일보다 이틀 일찍인 금요일에 시작되었는데요. 100여명정도의 캠프 식구들이 머물 공간을 먼저 설치하기 위해 30명 정도의 얼리크류 (early crew)가 타이타닉엔드 (Titanic’s End)와 캠프 소유의 물건들을 컨테이너에 싣고 먼저 BRC에 도착했습니다.
사막은 매번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로 묘한 즐거움을 주는데요. 작년에 축제 바로 전에 폭우가 있었다면, 올해는 엄청나게 거센 바람때문에, 화이트아웃 (white-out)을 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BRC 들어가는 길에도 마찬가지였구요. 정말 심한 화이트아웃 때는 5미터앞에 있는 것도 잘 안 보이더군요. 아래 사진은 믿거나 말거나 새벽3시랍니다.
밤새도록 차에서 모래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 후, 도착한 BRC 는 여전히 건조했으며,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더군요. 아마 축제에 순위를 매기면 세계 탑5에 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기획력이 뛰어난 행사입니다.
보통은 이 5차선이 추석 귀향길처럼 차들로 가득한데요, 얼리크류의 특혜네요. 이 4마일정도되는 무포장 도로를 지나고 나면 드디어 BRC에 도착하게 되는데 대략 이런 레이아웃으로 도시가 만들어집니다.
안쪽부터 에스플라나드, A, B, C… L까지 반원의 도로가 있고 반경으로 가로지르는 도로는 시계방향으로 2 시부터 10시까지 있습니다. 캠프의 위치를 부를 때 “우리 캠프는 2:15 A에 있으니깐 놀러와” 이런 식으로 위치를 설명하곤 하죠. 맨 아래의 게이트 (Gate)를 지날 때 올해의 행사들이 적혀있는 팜플렛을 주는데요. 이번 해의 테마는 카니발입니다. 서비스로 팜플렛 사진도…
무자비한 사막 그리고 준비 과정
캠프 사이트에 도착한 당시 휑한 현장입니다. 멀리서 또 모래바람이 오는게 보이네요. 인터스텔라의 지구를 그대로 재연해 놓은 듯, 토요일은 바람이 너무 심해서 아무것도 못 하고 다들 컨테이너 안에 들어가서 대피한게 하루의 반나절이었습니다. 천막을 치기 위해 나름 유명하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건장한 성인 20명이 구조에 매달려서 아웅다웅하는 꼴이라니.. 사막은 정말이지 무자비했더랍니다 ㅠㅠ
낮에는 다소 삭막해보이지만 밤이 되면 180도 변하는 곳이 또 버닝맨입니다. 석양이 또 놓칠 수 없는 장관인데요. 일몰 시, 캠프 여기저기서 “아우~~” 하며 늑대 소리를 들으시면 꼭 “아우~~”하고 대답해주세요. 그게 BRC에서의 예의니깐요 😉
2,000대의 아트카: 그 열정과 잉여력
제가 소속되있던 캠프는 유난히 스타트업피플이 많았는데요, 막막한 상황일 수록 그들의 실행력이 빛났습니다.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축제 시작 전까지 캠프를 위한 부엌, 샤워 부스, 공동 공간, 개인의 유르트, 그리고 타이타닉 엔드까지 다 세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타이타닉 엔드를 DMV (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 등록하러 출동할 시간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면허를 받는 곳도 DMV인데, BRC에서도 등록을 하러 가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밤이 되면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사람, 자전거, 차 모두 불빛이 나는 무언가를 달고 다니는 것을 권장합니다. 그래서인지 몇 년전부터 밤만 되면 온 플라야가 형광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고 하죠.
차량을 등록하기 위해 모여든 줄서있는 아트카를 보는 것 또한 장관이더군요. 올해는 2000대의 아트카가 등록을 했고, 그 중 800대가 타이타닉 엔드만큼 큰 대형 차량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창작물에 쏟는 열정과 시간과 돈과 잉여력에 감탄, 또 감탄… (타이타닉 엔드만 해도 순수 자본금만 억단위로 들어갔고, 엔지니어 여럿이 모여서 작업을 했는데 말이죠)
아트카 중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핫한 것은 이 불타는 문어 (이름은 El Pulpo Mecanico, 스페인어로 기계문어)가 아닌가 싶은데요. 스팀펑크 스타일의 문어가 머리와 각 다리에 하나씩 불을 뿜어대며 돌아다니는데, 그 주위는 항상 자전거 앙투리지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엔지니어들을 흥분케 하는 요소가 몇 가지가 있는데, 대규모의 불장난이 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네요.
이들을 따라가다보니 사막 한 가운데 레일로 둘러쌓인 공간이 보이는데요 카니발에 가면 흔히 있는 아케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게임에 불을 붙혀서 차니발 (Charnival: charcoal + carnival)라는 작품입니다. 아래 사진은 공을 던져서 구멍에 들어가면 점수가 올라가는 스키볼 (ski ball)이라는 게임인데, 차케이드에서는 점수가 올라갈 때마다 불길이 치솟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임이 여러 개가 설치되어있고, 심지어 불꽃으로 만들어진 대형 테트리스 보드 Fire Tetris도 있었다죠.
예술 작품이 가득한 플라야의 낮
차케이드 옆에 타이타닉 엔드를 세워두고 춤추고 놀다보면, 하나 둘씩 각자의 모험을 찾아서 떠나서 밤을 보내죠. 그리고 옆 캠프 베이스의 울림과 함께 또 찾아온 아침. 낮에는 또 전혀 다른 모습인 플라야. 올 해 가장 인기있었던 예술 작품 중 하나는 혁명 (R-Evolution)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48피트의 두 팔을 열고 당당하면서도 차분하게 서있는 여자의 모습인데, 아주 자세히 보면 숨을 쉬고 있습니다. 팔도 살짝 움직이구요.
좀 더 플라야로 나가보면 나오는 거울의 집. 저 옆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가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내부는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 엄마의 뱃속안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9시 방향에 있는 용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입을 보면 아시겠지만 밤이 되면 불을 뿜어대겠구나 알 수 있었죠. 어디서 연료를 연결시키며 어떻게 불을 만드느냐에 관심을 갖는 제 친구들을 버려두고 강아지 포즈를 취한 용님과 저는 진정한 아시아인답게 포토타임을 가졌습니다. 손가락 하트를 해줬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딮플라야에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는 “어디로 갈까?” “저기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같은데? 10시 방향?” 그러면 그 곳으로 페달을 밟습니다. 도착한 곳은 다름이 아닐까 사운드시스템이 좋은 아트카에서 누군가가 디제잉을 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서 춤을 추고 있더라구요. 가서 차가운 맥주도 얻어마시고, 들고 온 위스키도 나눠마시고 그러면서 놀다보면 주위의 수십명이 금방 친구가 되기도 하죠.
저희 캠프로 돌아오는 길은 저 커다란 서울랜드 랜드마크같은 인스톨레이션을 보고 찾는데요. 크기도 생긴 것도 범상치 않아서 뭔가 더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 같았는데 색깔을 천천히 바꾸는 것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서 다들 조금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순전히 제 생각이지만, 이 작품 혹시 대단한 대기업의 엔지니어들이 모여서 거금을 들여서 만든 인스톨레이션같은데… 아무래도 시간적 제약 및 의견 조율에 어려움이 있어서 플러스알파의 효과를 못 만들어낸게 아닌가 싶어요. 내년에는 더 멋진 작품으로 진화해서 돌아오길 내심 기대해봅니다.
스타트업피플이 운영하는 캠프의 장점이란…
잠시 저희 숙소였던 유르트 (yurt)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1.5인치짜리 폼보드를 잘라서 육각의 피라미드를 미리 만들어서,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면 되게 구상을 했었는데요. 태양 전지판도 설치해서 밤에 전기도 공급하게 만들고, 원시적인 에어컨 (swamp cooler)도 유르트마다 설치를 해두었다죠 (역시 엔지니어 인력이 많아서, 지구 어디다가 던져놔도 이 친구들과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RV에 머무르려면 약 5천달러정도 예상을 해야하는데 (인당 대략 천불정도…) 그것에 비해 훨씬 저렴하면서도 나름 내가 내 집을 만들었다라는 성취감이 드는지라, 작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유르트를 지었답니다. 하지만 매번 조립을 해야하는 점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많이 만들어내서, 내년에는 좀 더 친환경적인 숙소를 고안해내려고 하고 있어요. 캠프의 조직 운영이며, 시설과 기술도 매년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보면서 문명의 시작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구요.
180도 다른 느낌의 버닝맨의 밤
올 해의 맨 (the Man)은 카니발테마에 맞춰서 형광빛 LED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는데요. 작년보다 45피트 작은 60피트 크기의 나무로 된 사람 형상의 조형물입니다. 작년 맨이 현재까지 제일 컸는데 (105피트의 크기!!), 불이 전부 붙는데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 주최 측에서 크기를 좀 줄인게 아닌가 싶습니다. 카니발의 테마답게 맨 밑둥까지 가려면 벽이 전부 거울로 된 펀하우스 (Fun House)를 지나가야 했는데, 미로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너네 지금 나온데는 뭐 있어?”하고 물어보면서 힘겹게 (?) 찾았답니다. 당시 저는 먼지바람때문에 기침과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이었구요 (ㅠㅠ)
버닝맨과 매드맥스와 비교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스팀펑크와 사막 여기저기서 불길을 뿜어대는 아트카 외에 또 눈여겨봐야할 곳이 썬더돔 (Thunder Dome)입니다. 이 돔 안에서는 두 명의 자원자가 번지케이블에 묶인 채 방망이 등을 들고서 싸우는데요. 돔 주위로 사람들이 에워싸고 환호를 하는 등, 정말 SF영화 속 한 장면같은 기분이 들죠. 인상깊은 작품들 중에 이렇게 흥미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작품이 있다면, 다른 많은 작품들은 굉장한 공학 기술과 디자인 작업이 들어간 것을 유추할 수 있는데요.
이 성질 나빠 보이는 뱀 (The Serpent Mother)은 관절 마디마다 불을 뿜어대는 엄마 뱀인데, 가운데 알을 품고 있습니다. 매일 밤 이 알이 부화를 하면서 약 30피트 정도 되는 불길을 뿜어대는데, 하얀색부터 초록색까지 불꽃에 색을 입히는 등 그냥 프로판가스 불 붙히는 것과 차원이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줬답니다. 그리고 썬더돔 바로 옆에 블림프파이트 (Blimp Fight)라고 또 다른 돔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수소를 한가득 품은 두 개의 소형 블림프가 전기가 흐르는 바늘을 상대방에게 들이대면서 싸우는데, 바늘에 찔리는 블림프는 불에 활활 타오르면서 패배를 맞이합니다. 혹시나 수소가 폭발할까봐 벌벌 떨던 저와는 달리 그 자리에 모인 공학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를 하고 싶은 작품은 소형 번개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테슬라”라는 별명을 가진 작품입니다.(실제 작품명은 Coup de Foundre Project) 거대한 테슬라코일에서 전기가 감상자가 서있는 케이지로 뻗어나가는데, 클래식 음악에 맞춰서 움직이는게 별 것이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엄청난 작업이 들어갔을 것이 예상이…
버닝맨이 테크 창업가에게 주는 레슨
1. 전염적인 창의적 에너지: 처음에는 “이런 자원 낭비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일주일이 지나면 “나도 내년에는 이런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게 자연스러울 정도로 창의적인 에너지는 전염성이 강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떤 공간적 사회적 규제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더 실험적인 작품을 상상할 수 있고, 이곳에서 카우치서핑이나 솔라 시티같이 우리 사회를 다른 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나 생각되네요.
2. 환경은 협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뿐: 영화 마션에서도 나왔던 대사인데요. 어려운 환경은 기본 설정이고, 창업가는 당장 눈 앞에 해결해야하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다보면 어느 새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또 마주하게 되죠. 혼자 해결을 해야할 시기도 있지만, 5명이든 30명이든 팀과 함께 계획한 바를 하나씩 이루어나가는 것이 또 스타트업의 도전이자 즐거움이죠.
3. 건강, 또 건강: 일이든 여가든, 아무리 모험이 끝없이 펼쳐져있어도 몸이 아프면 아무 것도 하기 싫어진다는 사실. 일 잘 하는 친구들이 놀기도 잘 놀고, 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 비지니스 파트너도 만나지만, 모든게 건강이 전제가 된다는 점.
한 포스팅에 열흘간의 다채로운 모험을 다 담으려니 내용을 넘쳐나게 담은 것 같네요. 욕심내서 적어봤지만 그래도 직접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축제인 버닝맨. 마지막은 토요일 맨을 태우는 의식 사진 투척으로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스타트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야기로 다시 찾아뵐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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