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인가요? 우연히 뉴스를 보다가 양팔에 의수를 끼신 분이 멋진 동양화를 그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뉴스의 주인공은 석창우 화백이라는 분이셨습니다. 석화백은 원래 전기공이었다고 합니다. 1984년 어느날 그에게 불행이 찾아오죠. 작업을 하던 도중 2만 볼트가 넘는 전기에 감전이 되어, 발가락 두 개와 양 팔을 모두 잃어 버립니다.
세상의 평가를 온당히 받기까지, 석화백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본 석화백은 필력은 대단했습니다. 단순한 붓질 몇 번에 모델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게, 참 대단하시더군요.
불구의 몸이 된 헤르 씨가 간신히 걷게 되었을 때, 그가 형에게 다시 암벽 등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형은 “원하기만 한다면, 등반을 할 수 있을거야”란 말로 동생에게 희망을 주죠.
그 이후로 정말로 헤르 씨는 다시 산에 가서 연습을 합니다. 그러던 중에 의족을 신어도 등반을 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는 걸 깨닫죠. 걷는 것과 달리 등반은 근력과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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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백이나 헤르 씨 모두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하고 위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의지와 열정에 초점을 맞춰서 두 분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우리는 건강한데 더 열심히 살아야 해!”하는 자극 정도입니다. 물론 평온한 일상에서 이런 자극을 받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전, 두 분의 사례에서 우리가 ‘창의적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봤습니다.
‘상식 파괴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유리공예의 대가, 데일 치후리 씨의 일화가 나옵니다.
치후리의 경우, 육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물과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꼭 그런 극적인 수단에 의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는 상식파괴자에 대한 첫 번째 교훈을 보여준다. 상식파괴자들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본다는 것 말이다.
석화백은 양쪽 팔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의수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양손을 사용해서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묘사가 불가능했죠. 따라서 석화백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화풍은 무엇일까요? 큰 붓을 사용해서 사물의 역동성을 일필로 그려내는 그의 화법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도구가 망치 뿐이라면, 못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
관점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따라서,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고정된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이 창의적일려고 고의로 장애를 겪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신문을 보고, 같은 책을 보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출퇴근 수단을 이용한다면, 우리가 창의적이기란 무척 힘듭니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다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죠. 여행을 떠났을 때, 일상에서 잊고 지낸 영감이라는 걸 받으신 경험이 대개 한두번은 있으실 겁니다. 자! 이번 주말을 이용해서, 한번 창의력을 얻는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