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이고 싶다면, ‘뇌’를 불편하게 하라?!

한 달 전인가요? 우연히 뉴스를 보다가 양팔에 의수를 끼신 분이 멋진 동양화를 그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뉴스의 주인공은 석창우 화백이라는 분이셨습니다. 석화백은 원래 전기공이었다고 합니다. 1984년 어느날 그에게 불행이 찾아오죠. 작업을 하던 도중 2만 볼트가 넘는 전기에 감전이 되어, 발가락 두 개와 양 팔을 모두 잃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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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우 화백 from 석화백 홈페이지
처음에 의수를 끼고 생활을 하는 데 불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고 합니다. 의수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많았던 그가 붓을 잡게 된 계기는, 4살난 아들이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붓을 잡고 씨름한 끝에 제법 멋진 독수를 그릴 수 있었다고 하죠.

그일을 계기로, 석화백은 미술에 전념합니다.

세상의 평가를 온당히 받기까지, 석화백은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뉴스에서 본 석화백은 필력은 대단했습니다. 단순한 붓질 몇 번에 모델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게, 참 대단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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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zio님 블로그를 통해서 우연히 ‘휴 헤르’라는 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헤르 씨 이야기는 indizio님 블로그 포스트를 정리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포스트를 확인하세요). 헤르 씨는 어렸을 적부터 암벽 등반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헤르 씨는 18살 때 빙벽 등반을 하다가 정상에서 조난을 당합니다. 다행히도 구조되었지만, 동상 때문에 종아리 밑으로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하게 되죠.

불구의 몸이 된 헤르 씨가 간신히 걷게 되었을 때, 그가 형에게 다시 암벽 등반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이 질문에 형은 “원하기만 한다면, 등반을 할 수 있을거야”란 말로 동생에게 희망을 주죠.

그 이후로 정말로 헤르 씨는 다시 산에 가서 연습을 합니다. 그러던 중에 의족을 신어도 등반을 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는 걸 깨닫죠. 걷는 것과 달리 등반은 근력과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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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헤르 from 위키피디아
 
그런데 헤르 씨가 위대한 이유는 의족을 끼고 암벽 등반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닙니다. 암벽 등반을 하다 보니까, 발모양의 의족이 등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걸 깨닫죠. 헤르 씨는 등반에 도움이 되는 의족을 만들기로 생각하고, 물리학과에 진학하죠. 그리고 정말로 등반에 도움이 되는 의족을 만들고, 일반인들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암벽까지 의족을 신고 정복하게 됩니다.

헤르 씨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의족 연구를 심도 있게 하려고 MIT에서 기계 공학 석사를 취득하고, 기계와 인간의 조화로운 의족을 만들려고 이번에는 하버드에서 생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결국 장애인이 일반인처럼 걷게 도와주는 의족을 만드는 일에 매진한 끝에 MIT 미디어랩에서 생체공학을 총괄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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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화백이나 헤르 씨 모두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하고 위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의지와 열정에 초점을 맞춰서 두 분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우리는 건강한데 더 열심히 살아야 해!”하는 자극 정도입니다. 물론 평온한 일상에서 이런 자극을 받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전, 두 분의 사례에서 우리가 ‘창의적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봤습니다.

‘상식 파괴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서 유리공예의 대가, 데일 치후리 씨의 일화가 나옵니다.

치후리는 사고로 한쪽 눈을 잃지만, 한쪽 눈이 있기 때문에 비슷하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붕대를 풀고 나서도 예전만큼 시력을 회복하지 못하죠. 치후리 씨가 활동하는 그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리공예의 핵심은 대칭성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후리 씨는 시력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그전처럼 완벽하게 대칭적인 작품을 내놓지 못하죠.

하지만 그의 진가는 여기서부터 발휘합니다. 사고로 치후리 씨가 비대칭적인 세상을 접하고, 비대칭적인 세상의 아름다움을 유리공예에 접목합니다. 그의 비대칭적인 작품은, 대칭적인 작품이 주류였던 유리공예 분야에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그를 유리공예의 대가로 만듭니다. 치후리 씨 예에서, 앞에서 제가 소개해 드린 석화백이나 헤르 씨의 사례와 유사성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치후리의 경우, 육체적 변화를 겪으면서 사물과 상황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꼭 그런 극적인 수단에 의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는 상식파괴자에 대한 첫 번째 교훈을 보여준다. 상식파괴자들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본다는 것 말이다.

석화백은 양쪽 팔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의수를 사용해서 그림을 그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양손을 사용해서 세밀한 그림을 그리는 묘사가 불가능했죠. 따라서 석화백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화풍은 무엇일까요? 큰 붓을 사용해서 사물의 역동성을 일필로 그려내는 그의 화법입니다.

헤르 씨가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하지만 산을 잘 타는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다리를 잃음으로써 의족을 사용해도 등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를 보행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만들었죠.

제가 좋아하는 문장 가운데 이런 게 있습니다.

가지고 있는 도구가 망치 뿐이라면, 못의 관점에서만 생각한다.

관점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따라서, 세상을 인식하는 틀이 고정된다는 뜻이죠. 그렇다고 평범한 사람이 창의적일려고 고의로 장애를 겪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신문을 보고, 같은 책을 보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출퇴근 수단을 이용한다면, 우리가 창의적이기란 무척 힘듭니다.

불굴의 의지로 장애를 극복하고 영웅이나 대가가 되신 분들을 본다면, 일상적이지 않음이 주는 거북함을 극복하려는 과정 속에서, 창의력을 자연스럽게 발휘한 것이죠. 따라서 우리가 창의적이고 싶다면, 적어로 일상이 주는 안락함에서 벗어난 뇌를 불편하게 만들고 그런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다면,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도 좋죠. 여행을 떠났을 때, 일상에서 잊고 지낸 영감이라는 걸 받으신 경험이 대개 한두번은 있으실 겁니다. 자! 이번 주말을 이용해서, 한번 창의력을 얻는 여행을 떠나 보는 건 어떨까요?

원문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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