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 때까지 인생의 앞이 안 보였다.”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안성준 대표에겐 어느 날엔 가서부터 180도 다른 일상이 밀려왔다. 힘들 때 아무도 손잡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긴 그는 저만치 떠밀려 삶의 가장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관심의 손길을 내민 사람은 입대 후 만난 한 선임병이었다.
그 인연을 계기로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일어나겠다.’라는 다짐으로 군대에서 수많은 책을 읽었고, 제대 후에는 꼬박 의자에 앉아 공부한 끝에 퇴학 위기에서 벗어났다. 졸업 후에는 금융 회사와 리서치 회사에서 일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응용수학과 졸업’이라는 한 줄 이력만으로는 그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는 “나는 학력에 가려진 바보”라는 말과 더불어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이제 그에겐 ‘창업 후 1년도 안 돼 엑시트(exit)한 사업가’라는 경력이 추가되었지만, 그는 이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싱가포르로 출국하기 전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Q. 창업 계기
■ 오랜 사업가의 꿈
어렸을 때부터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작년 3월,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지인 3명과 사업을 시작했었다. “쿠폰을 갖고 음식점에 가면 푸대접을 하더라.”는 친구의 말에 아이디어를 얻어 할인 쿠폰 문제를 해결할 사업 아이템을 기획했다. 개발자도, 디자이너도 없이 시작했었다.
Q. 서비스를 소개해달라.
■ 뷰티숍 정보 제공 앱
작년 9월 출시한 ‘파당(파란당근의 줄임말, Padang)‘은 여성 고객들이 뷰티숍을 방문하기 전후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는 앱이다. 우리와 단독 계약한 1,300여 뷰티 서비스 업체들의 할인 정보에서부터 예약 서비스까지 앱 안에서 모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고객이 뷰티숍을 방문하기 전 가장 고민하는 게 ‘정말 잘하는 곳인가?’이다. 이와 관련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끔 이용 후기, 메뉴와 가격표, 위치, 영업시간 등을 확인할 수 있게 하였고, 월별 프로모션 정보도 알림 문자로 발송하여 할인 이벤트 정보를 놓치지 않게끔 하였다. 또한 헤어, 메이크업, 네일, 스파, 마사지, 왁싱, 피부과 등 관련 뷰티 정보 콘텐츠를 우리가 직접 생산하여 사용자에게 제공했다.
Q. 얼마 전 엑시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벤치마킹하던 회사와 인수 합병 성사
투자자들을 만나면 다들 하시는 말씀이 “자본금도 별로 없고, 어떻게 하실 건가요? 한 달 뒤에 봅시다.”였다. 자금이 바닥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뷰티숍 파트너 영업을 발로 뛰면서 체중이 10kg이나 빠졌고, 무릎에 물이 찼다. 팀원들도 지치기 시작했다.
한 투자 심사역이 “싱가포르에 뷰티 O2O 서비스를 정말 잘 하고 있는 회사가 있는데, 벤치마킹해서 서비스를 발전시킨다면 투자 심의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회사가 나중에 우리를 인수 합병한 ‘베니티(Vanitee)‘라는 곳이다.
Q. 인수 합병 과정이 궁금하다.
■ 인수 합병 제안을 받은 후 바로 다음 주에 계약
문득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다가 ‘이 회사의 대표에게 직접 연락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스카이프 화상통화를 시도했다. 그는 우리의 비전과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물어보면서 회사소개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러더니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나는 처음에 ‘acquisition’을 하자는 그의 말을 ‘깊은 친구 관계를 맺자.’고 해석했었다. 계약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들은 후에야 기업 간의 인수 합병 추진 건인 걸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바로 다음 주에 싱가포르에 가겠다는 이메일을 보낸 후 개발이사와 함께 출국하여 협상에 들어갔다. 하루 10시간이 넘게 계약조항을 만들고 난 후 그 자리에서 지분을 전부 넘기기로 계약했다. 그때가 11월 18일이었다.
‘투자 유치인가, 인수 합병인가.’라는 판단의 갈림길에서 나는 생각했다. 베니티를 만든 창업가는 5번의 엑시트 경험이 있는 30대 연쇄 창업가였다. 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이분에게 사업을 배운다면 금액을 따질 수 없는 교육이 될 것 같았고, 우리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Q. 그때 창업자끼리 나눴던 대화를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 O2O 서비스에서 중요한 건 ‘영업’
O2O 서비스는 기술 반, 영업 반이다. 친구가 음식점에 갔을 때 푸대접을 받았던 이유도 알고 보면 소셜커머스 업체와 자영업자 간 사이가 나빠서 그랬던 것이다. 우리의 고객은 자영업자이고, 우리는 특히 자영업자 또는 뷰티 전문가들이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을 모은다면 고객은 저절로 모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을 이야기하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모든 뷰티숍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베니티 창업가는 “뷰티계의 ‘우버(UBER)‘가 되고 싶다.”는 내 말에 공감하면서 “전략적으로 두 회사가 잘 맞을 것 같다. 5번의 사업을 하면서 IT 회사도 결국 발로 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느꼈다. 당신처럼 발로 뛰면서 많은 파트너를 구축한 아시아 회사를 찾고 있었다.”고 말했다.
Q. 향후 계획 및 목표
■ 베니티 사업전략 부사장직 소화
사무실을 내놓고 1월 13일에 팀원 모두 싱가포르로 출국한다. 그곳에서 9월까지 일하면서 베니티 한국 지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우리가 싱가포르에 가 있는 동안에는 파당 서비스 업데이트를 중지시켜놓을 예정이고, 추후 서비스명도 베니티로 바뀔 예정이다.
나는 베니티 사업전략 부사장으로서 말레이시아 시장 확대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그곳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 즈음에 다시 한 번 창업에 도전할 생각이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
■ ‘금수저’가 아니어도 성공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
요즘 우리나라에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뜨겁다. 나는 꼭 ‘금수저’가 아니어도 열정과 비전, 그리고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물론 운이 어느 정도 따랐지만, 준비되어 있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예전 직장 해외사업팀에서 일하면서 협상법을 배울 때만 해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내가 이걸 써먹을 날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있었다. 운은 언젠가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건 맞지만, 그걸 잡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을 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직은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부끄럽지만, 먼 훗날 손정의 회장 같은 사업가가 되어서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 특히,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다.
안경은 앱센터 객원기자 brightup@gmail.com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