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훈 학생의 시작은 남들보다 느렸다. 3수 끝에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원하는 학과를 찾아 또다시 반수를 했다. 그리고 입학하자마자 의무소방관으로 군 복무를 하였다.
남들보다 늦었다는 위기감은 촉매제가 되어, 그를 ‘공을 찰까 말까 고민’하기보다는 ‘우선 공을 차 놓고 뛰면서 생각하는’ 학생으로 변화시켰다. 지난 1년여간 사물인터넷, 핀테크, 웨어러블 관련 경진대회에 참가하여 30여 개의 상을 휩쓸었고, 이를 바탕으로 출원한 특허는 3개에 달했다.
체력적 한계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그는 아마추어 등산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 높이인 히말라야 칼라파타르 봉 등정의 꿈을 쏘아 올렸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등정 과정을 가상현실(VR) 카메라에 담아온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Q. VR 카메라를 들고 히말라야에 오른 까닭은.
■ ‘세계 최초 1인칭 시점의 히말라야 VR 콘텐츠를 만들어보자.’
최근 시장에 VR이 출시되고 있지만 ‘VR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즉, VR을 만들어도 딱히 볼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이 떠오른 나는 히말라야 등정 과정을 VR 카메라로 촬영한 사례가 있는지를 조사해보았다.
VR 카메라를 고정해놓은 상태에서 촬영한 영상이나 암벽 등반 시 띄엄띄엄 찍은 사진은 있었지만, 이걸 들고서 모험을 떠나는 사례는 없었다. 작년 11월, VR 스튜디오 ‘솔파(Sólfar)‘가 2016년 안에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VR 콘텐츠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데모 영상을 보니 비행기에 VR 카메라를 장착해서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촬영을 통해 마치 시청자가 실제로 히말라야에 오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수 있는 VR 콘텐츠가 없었다. 그리고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모험이라 할지라도 나 같은 평범한 청년이 도전하여 성취해낸다면, 다른 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360도 액션 카메라인 ‘코닥 SP360 4K’ 제품 2개를 양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운트에 조립한 걸 사용하기로 하였다.
Q. 전문 산악인도 아니고, 평소 운동을 해오던 사람도 아니었다.
■ 저압·저산소 트레이닝센터에서 훈련
작년 10월부터 히말라야 등정 준비를 시작했다. 20kg짜리 가방을 메고 주말마다 국내 산을 종주하였다. 사실 체력보다 더 큰 고민거리는 고산병 대비였다. 이에 관해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에 우리나라에서 2곳밖에 없는 저압·저산소 트레이닝센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히말라야 등정 프로젝트 기획서를 보여드리면서 간곡히 설득한 끝에 훈련 허가를 받았다. 산소와 기압을 바꿔가면서 가상 해발 0m에서부터 5,000m 상에서 체력 단련을 했다. 3일간의 훈련은 이후 등정 일정을 짤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해발 몇 미터부터 내 머리가 아프고 졸리기 시작하는지를 파악하여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Q. 자금 마련은 어떻게 했나.
■ 서강대학교 창의인재개발센터와 동문회 측에서 자금 지원
시기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공공기관에 기획서를 보내면 “취지와 참신성 등 모두 좋은데, 연말이라서 예산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내 대기업에 기획서를 보내면 “VR 관련 사업은 모두 영업기밀이라서 지원해줄 수 없다.”고 했다. 외국계 기업에 연락하여 출시 예정인 VR 기기를 대여해달라고 하니 “공모전을 개최해 우승팀에게 상금과 VR 카메라를 줄 예정이니 지원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히도 한 가닥 희망은 학교였다. 첫째로, 발명기획동아리 회장으로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던 나를 지켜보시던 교수님이 교내 창의인재개발센터에서 600만 원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둘째로, 경영대학 동문회 측에서 등산 장비 비용으로 200만 원을 지원해주었다.
그러나 자금 마련이 다가 아니었다. 안전 보장 증명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미 있는 활동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예산 지원 조건이었다.
Q. 꽤 난감한 조건들이다.
■ 의무소방 출신 친구와 동행, 현지 선교사 소개받아 안전 확보
네팔 현지를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다는 증명이 가장 큰 관건이었다. 우선 같은 의무소방관 출신인 친구와 등정하기로 하였고, 비상사태가 벌어질 경우 자체적으로 응급처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무엇보다 교회 목사님을 통해 연락이 닿은 선교사가 네팔 현지에서 우리를 안내해줄 예정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현지 선교사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예산 지원을 받고자 히말라야 등정 외에도 네팔 지진 피해 현황을 알리는 VR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추가하였는데, 피해 지역 방문 동선을 안내해주었고 신뢰할 수 있는 셰르파 2명도 연결해주었다.
출국 10일 전부터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여 출국일 직전까지 수많은 변수와 씨름을 했다. 이 중 하나라도 틀어졌다면 히말라야 등정은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Q. 히말라야 등정 과정이 무척 궁금하다.
■ 해발 4,350m에서부터 시작된 고산병 증상
작년 12월 11일에 출국하여 일주일간 네팔 지진 피해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실상을 VR 카메라에 담았다. 이후 2주간 네팔에 도착한 친구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였다. 12월 24일에 해발 5,364m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올랐고, 크리스마스 새벽에 해발 5,550m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일출을 촬영했다.
고산병이 시작된 건 해발 4,350m 딩보체 지점에서부터였다. 영하 수십 도의 칼바람을 맞으며 일정을 재촉하니 고열과 몸살이 났다. 오한과 두통, 배탈과 식욕부진이 생겨 딩보체에서 하루 더 쉬기로 했다. 고산 적응이 된 후에도 해수면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산소와 저기압으로 인해 숨이 차고 심장이 쿵쾅댔지만, 이를 이겨내며 칼라파타르 정상에 올랐다.
하산 때 우연히 목격한 눈사태도 VR 카메라에 담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눈사태가 아니라 얼음 사태에 가깝다. ‘얼음 바위’가 떨어지는 거라서 맞으면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트레킹 코스에는 눈이 많지 않았다. 마침내 12월 28일 무사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Q. 이번 프로젝트로 느낀 점
■ ‘내 삶은 꼭 이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돼
그동안 참가했던 대회나 공모전의 경우 누군가가 판을 짜놓으면 내가 기획자로 활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히말라야 등정 VR 촬영 프로젝트는 내가 직접 판을 짜보는 경험이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면서 내가 모든 과정을 소화해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세상에 없던 일도 내가 만들어내서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특히 ‘내 삶은 꼭 이래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게 되었다. 고산병에 시달릴 때였다. 끓인 물을 병에 넣어주길래 이를 달게 마시면서 편안히 잠든 적이 있다. 이튿날 알고 보니 석회수를 정수도 안 하고 끓인 물이었고, 엄청나게 많은 부유물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음먹기 나름이구나.’를 깨달았다. 힘들었던 4수 생활로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고통스럽게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고통이 아닐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즐겁게 살아가는 네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 그리고 마음이 훨씬 여유로워졌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
■ VR 사진 및 영상 편집 도와줄 분을 찾고 있어
750GB 용량의 VR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였다. 위치순, 시간순대로 정리된 이 자료를 잘 편집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는데, 단순히 온라인상에 영상을 올리기보다는 VR 다큐멘터리 형식의 의미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영상 기획 및 편집 능력이 있는 분이 있다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경은 앱센터 객원기자 brightu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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