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실버에이지에도 우주여행과 우주공학(astro-engineering), 그리고 외계인을 소재로 한 SF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3작품으로 레이 브래드버리(Ray Douglas Bradbury)의 <화성연대기(The Martian Chronicles)>, 스타니스와프 렘(Stanislaw Lem)의 <솔라리스(Solaris)>, 그리고 래리 니븐(Larry Niven)의 대작인 <링월드(Ringworld)>를 들 수 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 뿐만 아니라 환상소설, 공포소설, 미스터리 소설 등도 잘 썼다. 그의 SF대표작인 <화성연대기>는 1950년 발표한 연작 단편집이다. 일리노이주 출신의 레이 브래드버리는 아버지를 따라 아리조나주 투싼과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등을 오갔는데, 1934년 로스엔젤레스에 정착해서 신문을 파는 일을 하면서 지역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이 때 플래시 고든이나 벅 로저스와 같은 SF소설 속의 영웅들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1938년부터 팬픽션을 발행하는 팬진(Fan Zine)을 통해 SF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출세작인 <화성 연대기>를 출판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다. 1947년 그는 로스엔젤레스의 서점에서 영국에서 귀화한 소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우연히 마주치는데, 그를 통해 저명한 비평가에게 그의 작품을 전달할 수 있었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SF작가이기는 하지만, 환상소설이나 공포소설, 미스터리 소설을 잘 썼다는 것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SF를 소재로 인간들의 심리와 본질을 파헤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그의 <화성연대기>는 최근 영화화된 마션(Martian) 등과 비교하면 너무나 비과학적인 부분들이 많이 보이겠지만, 지구와 화성의 묵시록이라는 그의 관점을 이해하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1950년대의 관점으로 화성을 미지의 대륙으로 보고 이곳에 도착한 개척민들의 이야기를 연대기 형식의 단편으로 풀어냈다.
이 작품에서 화성에 이미 지적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들은 지구보다 진일보해서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세계를 정착시킨 종이었다, 여기에 4번에 걸쳐 탐험대가 도착하게 되는데, 화성인들은 지구인들이 위험하다고 보고 대립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4차 탐험대가 화성인들이 모두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들은 지구에서 옮겨온 천연두로 대부분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신대륙에 스페인의 군대가 도착한 뒤에 천연두로 원주민들이 몰살당한 것과도 유사하고, 화성인들이 지구를 침공해서 감기로 죽은 스토리도 연상이 된다.
1990년 초반부터 2026년까지 지구와 화성을 오가며 펼쳐지는 26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는데, 사실 화성은 소재일 뿐이고, 기계 문명과 미래가 낳을 디스토피아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적인 문체로 표현된다. 과학만능주의와 물질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 정신 때문에 당시 소련 등 공산권에서까지 널리 읽혔다고 한다. 1980년에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록 허드슨이 주연한 TV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아래 임베딩한 영상은 TV시리즈를 압축해서 만든 팬 트레일러이다.
<솔라리스(Solars)>를 집필한 스타니스와프 렘은 폴란드 출신의 SF 작가다. 원래 그의 아버지는 이비인후과 의사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군의관이었는데, 소비에트 치하의 동폴란드에서는 이런 부르주아 출신이 좋지 않게 작용되었다고 한다. 2차대전 나치 점령하에서는 신분서류를 위조하여 살아남았고, 자동차 정비공으로 생활하면서 동시에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나치에 저항하기도 하였다.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썼지만, 당시 동구권에서는 소설도 마음대로 쓸 수 없었다. 1956년 소비에트 연방이 스탈린 주의에서 벗어나면서 본격적인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는 어려운 철학적인 주제를 잘 다루었고, 폴란드어로 글을 썼기 때문에 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한 영어판이나 일어판 등이 나오기까지 여러 차례 번역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 등의 SF 작가들에게 상당히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직 필립 K. 딕에 대해서는 극찬을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필립 딕이 렘을 공산당 포섭공작원이라고 CIA에 신고했다고 한다.
많은 작품을 냈지만, <솔라리스>가 단연 그의 대표작이다. 1961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전체 행성이 하나의 액체덩어리로 구성된 솔라리스라는 행성을 배경으로 인간의 현실과 기억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다루다가, 외계종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내용으로 발전하는 정말 독특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SF이지만 기술이나 과학적 요소보다 인간의 기억과 커뮤니케이션에 중점을 두고 전개가 된다. 그래서인지, 3차례나 영상화가 시도가 되었다.
1968년 소련 중앙방송국이 영화화를 했는데, 렘의 팬들조차도 이 영화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뒤에는 1972년과 2002년에 각각 영화화가 되었다. 2002년 작품도 비록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지만, 조지 클루니가 주연을 맡았고 스티븐 소더버그가 감독하고 제임스 캐머런이 제작을 맡았기에 꽤나 기대되는 작품이었는데, 흥행에는 실패한 작품이다. 그렇지만, 클리프 마르티네즈가 지휘한 영화 OST는 꽤 좋은 반응을 얻어서 이후 <디스트릭트 9>에도 이 사운드트랙이 사용되었다. 흔히 <솔라리스>하면 1972년 작품을 언급하는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감독했는데, 원작과 무척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원작자인 렘이 영화를 보고 격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솔라리스라는 행성을 연구하던 주인공이 솔라리스에서 무슨 일이 생겼다면서 직접 솔라리스에 간다. 솔라리스에 도착해서 만난 것은 물질이 되어서 나타난 죽은 아내의 모습이었다. 그 이후 전개는 직접 영화를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영화는 1972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 상을 수상했는데, 영화감독인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와 원작자인 스타니스와프 렘이 모두 이 작품을 싫어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 작품은 이후 미디어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낡아보이는 우주선의 외관은 스타워즈의 한 솔로가 타고 다니는 밀레니엄 팰콘 호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고, 유명한 게임인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아래는 클리프 마르티네즈의 2002년 버전 <솔라리스>의 OST가 들어가 한 장면이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품은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래리 니븐의 <링월드(Ringworld)>다. 앞선 두 작품의 작가들과는 달리 래리 니븐은 글을 풀어내는 능력은 많이 떨어진다. 1964년에 작가로 데뷔하였고, 주로 하드 SF 분야에서 활동했다. <링월드>가 대단한 것은 이 소설에서 창조해낸 ‘알려진 우주(known space)’라는 설정이 향후 수많은 SF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SF계의 톨킨의 세계관을 만들었다고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과학적이면서도 대서사적인 설정 덕분에 래리 니븐은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모두 받았다. 래리 니븐은 독특한 설정 개념에 있어서 탁월한 장점을 가진 작가였는데, 판타지 계열의 소설이나 게임에서 나오는 마나라는 개념도 그의 <마법의 세계가 사라져가다 (The Magic Goes Away)>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링월드 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프리퀄 시리즈 5권도 나왔는데, 프리퀄 시리즈는 에드워드 M. 러너와 공동집필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스토리 측면에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지만 탁월한 설정은 제대로 음미할 만하다. 작중에 등장하는 거대한 우주 구조물이 특히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가운데에 태양을 두고있는 반지름 1억 5천만 km, 둘레 9억 km, 폭 160만 km의 거대한 링이다. 반지름이 태양과 지구간의 거리 수준이기 때문에 해당 링에 생물학적인 생태계가 쉽게 조성될 수 있다.
이 링 모양의 구조물이 회전하면서 인공중력을 발생시키고, 태양면은 1년 365일 언제나 태양열을 얻을 수 있어 거의 반영구적인 에너지를 얻게 된다. 그 띠를 뫼비우스 고리처럼 한번 씩 뒤집어 주면 밤과 낮도 만들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할 경우 ‘밤’이 되는 지역인 태양 반대편을 향하는 지역에는 구심력이 충분하지 않아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에 링 월드 안쪽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는 링이 하나 더 들어가 있다. 워낙 화제가 되는 설정이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한 영상들도 존재한다.
링월드가 또 유명해진 것은 X박스의 수호자로도 불리는 게임 헤일로(Halo)의 설정도 링월드의 축소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헤일로의 세계는 링월드에 비하면 훨씬 작기 때문에 행성처럼 공전/자전을 통해 밤낮을 바꿀 수 있다. 링의 그림자가 있는 지역이 밤이 된다. 아래 영상은 헤일로의 링월드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하는 팬 영상이다.
글 : 하이컨셉
원문 : http://health20.kr/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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