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국을 강타한 알파고 충격.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충격의 4대1 패배를 당한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인공지능이 바꿀 미래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모두 깨닫게 됐다. 정부는 대책회의를 열고 5년간 1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또 대기업주도의 인공지능연구소를 세우기로 했다. 갑자기 호떡집에 불이 난 느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 미국의 가정에는 지난해부터 인공지능 비서가 급속하게 보급되고 있다. 그 이름은 아마존 에코다.
지난해 말 미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화제의 제품을 하나 사 왔다. 아마존에서 나온 에코라는 원통형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http://www.amazon.com/Amazon-Echo-Bluetooth-Speaker-with-WiFi-Alexa/dp/B00X4WHP5E)다. 180불로 좀 비싸다. 이미 블루투스 스피커는 많이 있는데도 이 제품을 구입한 이유는 우선 호기심 때문이었다. 2014년 여름 아마존은 파이어폰이라는 첫 스마트폰을 내놨다가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그런 다음 2014년 11월에 평범해 보이는 원통형 스피커를 내놓은 것이다. “누가 저런 것을 살까. 아마존도 어지간히 만들 것이 없었나 보다”하는 생각도 잠시, 이 제품은 놀랄만한 히트상품이 됐다. 아마존에서 에코에 3만6천 개의 리뷰가 달렸으며 평균 평점은 5점 만점에 4.4점이다. 조사기관인 CIRP에 따르면 에코는 3월 현재 미국에서 4백만 대가 팔렸다.
# 유튭 영상
https://youtu.be/KkOCeAtKHIc
[에코의 쓰임새를 잘 설명한 아마존 홍보 비디오. 한번 보시길.]
다른 블루투스 스피커와 차별화되는 이 제품의 특징은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는 인공지능비서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항상 켜져 있기 때문에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그냥 “알렉사”라고 부르면 번쩍거리며 스피커가 깨어난다. “플레이 뮤직”이라고 음악을 틀어달라고 하면 알아서 미리 아마존 클라우드에 저장해 둔 곡을 틀어준다. 소리가 너무 크면 “볼륨다운”이라고 하면 된다. 음악재생을 중단시키려면 “알렉사, 스톱”이라고 하면 된다. 라면을 끊일 때도 냄비에 면을 넣으면서 “알렉사, 셋더타이머포포미닛”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면 4분 뒤에 알람을 울려준다.
영어원어민이 아닌 관계로 이 제품을 집에 가져와서 좀 유치하게 쓰고 있지만 아내는 아주 편리해 한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요리를 할 때 음악을 듣는 용도로 주로 쓴다.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누를 필요가 없이 음성으로 켜고 끌 수 있으니 편하다는 것이다.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춘 제품인 것이다.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특정 음악을 틀거나 날씨를 알아보거나 뉴스를 읽는 것은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말로 명령하는 것은 4살짜리 어린 꼬마도 쉽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집안 어디에서나 “알렉사”하고 부른 다음에 물어보면 대답해준다.
사물인터넷(IoT) 대응 제품을 연결하면 음성으로 조명을 켜거나 끌 수 있다. 아마존을 통해 자주 쓰는 일용품을 주문할 수 있다. 피자를 주문하거나 심지어 차고에 있는 자동차의 시동을 미리 켜거나 우버 택시를 호출할 수도 있다. 편리한 인공지능 개인비서다. 심지어 아이들은 알렉사와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한다.
에코의 성공에 고무된 아마존은 이 제품을 사물인터넷 허브로 만들기 위해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른 제품이나 서비스와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표준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확장성을 높였다. 인터넷에 보면 심지어 아마존 에코와 테슬라 전기자동차를 연결해 “알렉사, 테슬라를 차고에서 꺼내라”라는 명령으로 테슬라를 차고에서 자동으로 꺼내는 사람까지 나왔다. 아마존 리뷰에 한 사용자는 “알렉사, 내 사랑. 알렉사가 온 뒤로 외롭지 않게 됐다”고 고백하기까지 했다.
아마존 에코가 파이어폰의 처참한 실패를 딛고 나온 제품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파이어폰은 실패했지만 그 과정에서 개발된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술이 에코에 적용되는 바람에 의외의 히트상품이 나왔다.
이렇게 에코 돌풍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구글이 반격에 나섰다. 구글은 지난 5월 18일 열린 구글개발자컨퍼런스에서 ‘구글 홈’이라는 무선 블루투스 스피커를 올해말에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컨퍼런스에서 보여준 데모동영상에서 한 가족이 이 스피커를 중심으로 바쁜 아침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헤이 구글”이라고 스피커에 말을 걸며 아들 방에 불을 켜라고 시키기도 하고, 저녁식당예약시간을 변경해달라는 요청도 쉽게 한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면서 어려운 내용을 몰래 구글 홈에게 물어본다.
https://youtu.be/5bYSX2C4aWc
[구글 I/O컨퍼런스에서 공개된 구글 홈 홍보 동영상. 역시 아마존 에코처럼 온 가족이 다같이 자유롭게 사용하는 컨셉으로 만들었다.]
과연 구글 홈이 아마존 에코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구글에 이어 애플도 아마존 에코 대항마를 개발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스피커 형태의 인공지능 비서 개발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인공지능 비서는 모바일메신저 안으로도 침투 중이다. 페이스북이 최근에 발표한 챗봇은 메신저서비스를 통한 인공지능 고객 응대 서비스다. 사람들이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대화형식으로 쇼핑도 하고 뉴스와 교통상황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신문사인 월스트리트저널, 의류회사인 H&M, 꽃배달회사인 800플라워스 등이 페이스북의 챗봇기능을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메신저창에 대고 “꽃을 보내고 싶어요. 장미꽃이요.”, “이런 꽃다발이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챗봇]”, “1번이 좋겠네요.”, “누구에게 보내실 겁니까.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세요.[챗봇]” 이런 대화를 인공지능봇과 나누면서 물건을 주문하게 되는 것이다.
구글도 개발자컨퍼런스를 통해 ‘알로’라는 인공지능 모바일메신저를 내놨다. 이 메신저에는 구글 비서가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친구에게 “우리 근처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할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해보자. 구글 비서가 끼여들어서 “근처 한국식당은 1. 아리랑 2. 무궁화 3. 금강산이 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그런 다음 친구와 “아리랑이 맛있겠다. 1시가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하자”고 대화가 오간다면 구글비서가 “1시 아리랑으로 예약을 완료했습니다”라고 알려준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눈치 빠른 인공지능 비서와 음식점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소위 O2O(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주는) 비즈니스환경 덕분이다.
이처럼 싫든 좋든 인공지능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다. 아마존 에코나 구글을 음성으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는 일반인들이 거부감 없이 이런 인공지능 비서를 이용하는 시대다. 가족끼리 같이 이용하는 것을 고려하면 아마존 에코는 이미 천만 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구글은 아예 ‘알파고’를 일상생활에 비서로서 파견할 기세다. 이들 인공지능 비서는 스피커의 모습으로, 스마트폰의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필요할 때 끼어든다. 지금까지는 “알렉사”하고 물어봐야 답을 하지만 앞으로는 물어보기도 전에 척척 “아기 기저귀가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미리 주문해 둘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프라이버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된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애플 같은 회사들은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는 ‘빅브라더’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둑고수들의 수를 학습해서 실력을 키운 알파고처럼 수백만 명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아마존 에코는 갈수록 더 똑똑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대화하는 상대가 진짜 사람인지 컴퓨터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질지 모른다.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인간 세상에 들어오는 이런 인공지능 컴퓨터와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 우리 아이들의 일자리를 이들이 빼앗아가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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