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의 싹을 틔울 수 있는 보육 공간이 마련됐다. 비옥하고 너른 사업장은 물론 영양가 높은 육성 프로그램, 제 때 내리는 단비 같은 투자. 불필요한 것은 덜고, 필요한 것을 더하며 순을 솎아 주는 멘토링도 지원된다고 한다. 하나 더, 열심히 키운 성과물을 시험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도 마련되어 있다.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들어본 공간이라고 생각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 씨앗이 ‘핀테크’에 관한 것이라면 말이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은행의 거래가 대면채널에서 비대면 채널로 바뀌는 등 금융 거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핀테크로 이렇다 할 성공을 거뒀다는 스타트업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적인 금융 내부 사정을 알기 어렵고, 개인 정보가 밀집해 있는 업계 특성상 제품을 시험해 보기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고안된 보안솔루션도 현업 시스템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올 8월 10일 문을 여는 위비핀테크랩이 반가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서울시 영등포구 우리은행 빌딩 2층에 위치한 위비핀테크랩은 핀테크 스타트업과 1인 창조기업의 사업화, 해외진출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 우수 입주자에게는 실제 제품을 시험해 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를 제공한다. 위비핀테크랩 1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준비된 공간을 강재영 핀테크 사업부 차장의 소개로 미리 둘러봤다.
공간은 4인 이하의 스타트업을 위한 5개의 랩실, 1인 창조기업을 위한 사무 공간, 자유롭게 피칭할 수 있는 중앙광장, 멘토링룸과 휴게실, 침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우리은행의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 ‘우리핀테크 나눔터’가 확대된 형태로, 올해는 더 넓고 쾌적한 보육공간으로 거듭났다.
“이전의 우리핀테크 나눔터 경험을 토대로 핀테크 생태계에서 스타트업 혼자 할 수 없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20여개의 파트너사와 함께 연합했습니다.”
보육공간과 함께 달라진 점은 체계적이고 구체화된 지원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파트너사와 연계를 통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사업 고도화를 위한 투자, 해외진출 지원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가령 파트너사 중 한곳인 한국정보통신(KICC)은 VAN(Value Added Network), 카드결제시스템 PG(Payment Gateway) 구조와 관련된 교육 지원을 맡는다. 결제 수단의 실제 적용은 파트너사인 GS리테일의 유통망을 활용할 예정이다.
해외 진출 지원 방안도 마련돼 있다. 우리은행은 돌아오는 22일 영국 Y액셀러레이터와 업무협약을 통해 IR단계부터 해외 투자유치, 영국 내 법인화 등 입주기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는다는 계획이다.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드는 의문은 하고많은 기업들 중 왜 ‘스타트업’이냐는 것이다. 우리은행이 직접투자를 시작한 해인만큼 마음만 먹으면, 당장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에 투자할 수도 있을 터였다.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검증되어 있는 회사에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고 좋지만, 멀리 내다보면 밑에서부터 스타트업들을 키우는 일이 더 의미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업적인 부분이나 미래 가치로 봤을 때 스타트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고요.”
또한 강재영 우리은행 핀테크 사업부 차장은 스타트업의 새로운 아이디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에 은행 인프라를 더한다면, 양쪽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우리핀테크나눔터에 참가한 스타트업 ‘희남’ 사례가 대표적인 예다. 우리은행은 자사의 스마트 금융 플랫폼 ‘위비’에 희남이 개발한 ‘모바일 스크래핑’기술을 도입해 위비 소호 대출을 출시한 바 있다.
“우리은행이 가진 ‘위비’ 플랫폼은 스타트업의 기술을 상용화하는데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습니다. 은행에서 하나의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모두 검토해야 하지만, 위비라는 중간단계의 매체가 있으니 스타트업이 가진 기술을 도입하는데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위비랩에 입주하시는 분에게도 향후 가능성이 열려있습니다.”
우리은행뿐 아니라 타사 은행들도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원프로그램은 입주 공간 제공과 멘토링, 제휴 사업 추진으로 위비핀테크랩과 대동소이해 보인다. 다만 지원 대상으로 살펴보면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위비핀테크랩의 경우 초기단계의 스타트업에게도 기회가 열려있다. 어느 정도 성과가 보장되어 있거나, 사업화 이행으로의 셋팅이 끝난 스타트업들 보다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도전적이긴 하지만 초기 단계 스타트업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바뀌어 나갈지는 누구도 예상 못하는 일입니다.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보내는 분들도 있지만 도와주겠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만큼 초기 단계의 핀테크 스타트업을 지원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초기단계의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것에 따른 불안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은행 측은 입주자 선정에 신중을 더한다는 방침이다. 강재영 차장에 따르면 입주자 선정 시 고려 요소는 아이디어,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는 기술,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다. 여기에 외부 VC들과 함께 스타트업의 사회 경험, 실행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위비핀테크랩 입주자 선정에는 우리은행뿐 아니라 벤처스퀘어, 한국투자파트너스 등 외부 VC의 다양한 시선이 더해집니다. 아이디어와 실현가능성 외에도 입주대상자의 추진력, 사회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입니다.”
핀테크업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은행권과 시너지를 내는 것은 좋다. 다만 문제는 시장의 한정된 파이다. 강재영 차장은 ‘핀테크를 기존의 지급 결제 시스템에 한정하기보다 자동차, IoT에 접목되는 결제 시스템까지 핀테크의 범위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핀테크의 파이가 커지고, 다양한 분야의 핀테크 스타트업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위비핀테크랩은 초기 스타트업의 사업 계획을 한정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핀테크 스타트업들의 사업 실현을 도울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핀테크의 개념을 더 확장하는 첨병이 되길 기대합니다.”
핀테크 스타트업의 비옥한 토양이 되어줄 위비핀테크랩은 현재 입주 모집 중에 있다. 최종 선발은 7월 29일로, 약 10개 팀이 선발될 예정이다. 이번에 선발하는 위비핀테크랩은 1기로, 6개월 단위로 입주자를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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