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인류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수천 년 전부터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 농산물을 수확했다. 농기구와 기법을 개량해나가며 생산량을 늘리려 노력해왔다.
농업(Agriculture)과 기술(Technology)의 결합을 의미하는 어그리테크 역시 인류가 해온 노력의 연장선에 있다. 농업에 ICT 기술을 도입해 농업의 효율을 높이는 것이 바로 어그리테크다.
토양과 물 관리는 물론, 데이터 분석을 통한 의사결정보조, 드론과 로봇, 실내 농업, 푸드 이커머스, 식품안전추적, 쓰레기 처리기술 등이 모두 어그리테크의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최근 어그리테크를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알파벳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농업이 미래’라며 지난 2010년부터 ‘Farm 2050’ 프로젝트를 통해 어그리테크 스타트업의 자금조달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카카오 역시 작년 어그리테크 스타트업 만나 CEA에 1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농업 혁신’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급성장하는 어그리테크 스타트업 투자
사실 2013년 이전까지 투자자들은 어그리테크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다. 투자 분야 역시 바이오기술, 종자변형 등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14년, 공기가 바뀌었다. 다국적 종자 회사인 몬산토가 기상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클라이밋을 10억 달러(한화 약 1조 원)에 인수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는 어그리테크 스타트업 투자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 결과 2014년 총 투자액은 24억 달러(한화 약 2조 6,000억 원)로, 같은 해 핀테크 스타트업 투자액(21억 달러, 한화 약 2조 3,000억 원)을 넘어섰다.
2015년은 어그리테크 투자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된다. 이 해의 전체 어그리테크 투자액은 역대 최고인 46억 달러(한화 약 5조 1,000억 원)로, 전년 대비 약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2010년(24억 달러, 2조 6,000억 원) 대비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그야말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위분야별 투자를 살펴보면 푸드 이커머스와 물&관개기술 스타트업들이 도합 159건의 거래로 22억 달러(한화 약 2조 4,000억 원)의 투자를 받아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두 분야를 제외하면 4억 달러 이상의 큰 투자를 받는 분야는 없었다. 다만 거래 건수의 경우 의사결정보조기술이 46건으로 두드러졌다.
2016년 상반기 총 투자액은 18억 달러(한화 약 1조 9,000억 원)로 전년에 동기보다 약 20%가량 적었다. 그러나 이는 전체 글로벌 벤처캐피털 시장의 위축에 따른 결과로 분석된다. 반면 투자, 인수 등 거래 수는 307건으로 전년 동기 286건보다 증가했다.
또한, 전반적으로 초기 단계 투자가 증가했는데, 어그리테크 스타트업 엑설러레이팅 프로그램의 증가가 그 원인으로 꼽힌다.
왜 지금 어그리테크인가?
어그리테크가 최근 들어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인구증가, 기술 발전, 소비자 취향 변화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UN에 따르면 2050년에는 세계 인구가 약 100억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증가하는 식품 수요를 맞추기 위해 향후 35년간 농업생산량을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센서기술의 발달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 통합할 수도 있게 되었다. 또한 모바일 시대의 도래로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 데이터에 접근할 수도 있다. 그 결과 토양의 질과 물 수급 상황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생산과 효율성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를 들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온실가스 배출 요인의 30%를 차지하는 기존의 농업방식에서 탈피하여 친환경적으로 생산된 농산물을 구매하길 원한다. 이들을 만족시킬 수단으로 어그리테크가 주목받고 있다.
거품은 없나?
어그리테크의 급성장을 두고 일각에서는 어그리테크 거품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푸드 이커머스와 물&관개기술 영역을 제외하면 5,000만 달러(한화 약 550억) 이상의 큰 딜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 외의 분야에는 투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 산업의 가능성을 판단할 때 쓰는 방법의 하나가 그 산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전체 VC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농업의 경우 전 세계 GDP의 10%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전체 VC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에 불과하다. (헬스케어의 경우 전 세계 GDP와 VC투자 모두 약 12% 차지)
미국의 어그리테크 전문 투자플랫폼 어그펀더의 CEO 롭 리클렉은 “이는 어그리테크 분야가 타 분야에 비해 성장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새로운 시장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어그리테크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어그리테크의 성장은 이미 전 세계적 추세다. 2014년까지만 해도 전 세계 어그리테크 투자의 90%는 미국에서 이루어졌으나, 2015년에는 58%로 줄고 지정학적 다양성이 늘어났다. 이스라엘, 인도, 중국이 각각 2~4위를 차지하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인도와 중국은 각각 물&관개기술(Jain Irrigation, 1억 2,000만 달러 투자)과 드론(DJI, 7,500만 달러 투자)의 리더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농업 혁신에 대한 수요가 크기 때문에, 근미래에는 이들이 어그리테크의 중심 국가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스타트업에게는 기회다
원료부터 생산, 가공, 유통, 소비자 구매단계에 이르기까지 농업의 밸류체인은 타 산업군에 비해 긴 편이다. 때문에 기존 거대 기업들이 농업의 모든 영역에 손을 뻗는 것은 버거운 일이다. 이는 그만큼 농업 분야에서 스타트업이 치고 나갈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이미 어그리테크 전용 투자펀드들이 생겨나고, 엑싯도 발생하고 있다.
어그리테크는 전통적 농업에 기술을 더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투자자든, 창업가이든 누구든 상관없다. 기회를 노리는 야심가라면 이 흐름에서 눈을 떼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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