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한별 스마프 대표는 버섯 재배용 기둥을 찬찬히 살폈다. 높이 2m 40cm에 달하는 원통 기둥안에는 환풍 시설, 수증기 분사, 온도 조절 기능, 관수 시설, LED 조명 등 버섯 생육에 필요한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 어플리케이션으로 버섯 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농작물 재배를 위한 갖춘 디바이스부터 솔루션까지 버섯 재배 기둥의 성공을 점칠 법도 했다. 그러나 버섯 재배 기둥의 주문량은 단 5건. 그것도 농가도 아닌, 일반 레스토랑이었다.
선택과 집중, 스마트밸브
채대표는 다시 버섯 재배 기둥을 살폈다. 스마프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장에 내놓은 버섯 재배 기둥. 시장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채대표는 기둥 속 모듈을 하나씩 덜어냈다. 식물의 생육 과정에서 필요한 솔루션을 전체적으로 엮어보고 나니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가 더 잘 보였다. 스마프의 선택은 ‘밸브’였다. 밸브는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물을 제어하는 장치다. 그러나 오랜 기간 발전이 없던 장치기도 했다.
“사람이 수도꼭지를 일일이 잠그고 다니는건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관리할 수 있는 논밭이 한정될 수밖에 없죠.”
채대표는 식물의 성장에서 필수적인 물, 즉 관수시스템에 집중하기로 했다. 먼저 밸브에 원격제어가 가능하도록 통신모듈을 탑재했다. 스마프밸브는 반경 800m, 게이트웨이를 지나면 16km 이내에서 제어할 수 있다. 일일이 손으로 밸브로 잠그는 수고로움이 줄어든다. 시간당 관리할 수 있는 논밭의 면적은 늘어난다.
“단순히 밸브를 제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물의 양은 작물의 질을 좌우합니다. 농업에서 중요한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양의 물입니다. 관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물이 공급됐는지 알아야 합니다.”
스마프 밸브의 장점은 관수 시스템의 정밀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밸브 안쪽에는 유량계와 MCU(Micro Controller Unit)도 장착되어 있다. 사용자가 언제 얼마만큼의 물을 줘야하는지 ‘물 사용 시나리오’를 입력하면, 밸브가 이를 기억하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물을 투입한다. 작동 결과를 사용자에게 보고하고, 사용 데이터는 축적된다. 기존 농촌 관수는 시간제로 작동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농작물의 뿌리가 마르면, 대략 30분간 물을 주는 방식이다. 정확한 유량이 측정되지 않으니 충분한 양의 물이 투입됐는지, 물이 과도하게 투입된 건지는 감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가뭄방지를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
“다음 단계는 가뭄 피해방지입니다”
매 시대, 매년 가뭄기는 있었다. 사람들은 이 시기를 버티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소달구지에 물을 싣고 물이 부족한 논으로 왔다. 오늘날은 살수차에 물을 실어 논에 보급한다. 예나 지금이나 반복되는 문제를 대하는 방법은 같다. 공급에 방점이 찍혀있다. 채대표는 근본적인 상황 개선을 위해서는 물 사용을 효과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개개인의 시나리오대로 관수시스템이 작동하지만, 이것이 모이면 물 사용 패턴이 축적된다. 마을 단위로 데이터가 취합되면, 전체 농가에서 필요한 취수량, 분배량 등의 데이터가 쌓인다. 이를 토대로 가뭄기 어떻게 물을 분배하고, 배수할지에 대한 최적의 시나리오를 짤 수 있다.
“농가에서 관수시스템에 대한 비효율은 계속 일어나는데 해결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도시는 가만있어도 시스템이 정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시스템이 업데이트 되고. 생겨나기도 하죠. 농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교본은 있지만 감으로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감을 언제, 얼만큼의 물을 줬는지, 수치로 데이터화 하면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죠.이렇게 되면 후손들이 가뭄에 시달릴 염려도 없고요.”
공대생 회사원, 농부가 되다.
손으로 일일이 제어하는 밸브가 아닌 원격제어밸브, 불특정이 아닌 특정 시간에 스스로 작동하는 밸브, 그냥 밸브가 아닌 기억하고 저장하는 스마트밸브는 그냥 농부가 아니라 공대 출신 농부였기에 탄생할 수 있었다.
채대표는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무역정보통신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커리어에 변화가 생길 무렵, 우연히 표고버섯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됐다. 버섯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주 산림버섯연구원에서 참여연구원 생활을 하고 본격적인 표고 재배에 나섰다. 창업보다 창농을 먼저 시작한 셈이다.
처음 농장에 스마트 원격제어를 도입한건, 농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일일이 관수시설이나 환풍기 전원을 끄러 농장을 돌아다니는 등 버섯 농사에서 마주하는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농업인의 입장에서 필요한 제품, 서비스를 만들다가 창업을 시작한 케이스다. 그러다보니 사용자와 공급처 양쪽과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밸브를 판매하는 곳은 농자재회사나 통신사지만 실 사용자는 농업인들입니다. 농업인으로서 사용자에 닿아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파악하고, 전공을 토대로 공급처에 필요한 점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양쪽의 언어가 통한다는 점이 스마프의 강점입니다.”
한국을 테스트베드 삼아 중국 시장 겨냥
스마프는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 테스트베드를 두고 있다. 스마트밸브는 물론, 관수 솔루션까지 함께 시험 중이다. 국내 실험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을 바라본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신농책 정책을 중국 서부에서 동부로 확대하고 있다. 새롭게 구성되는 농업단지에 스마프의 디바이스가 공급되면 그만큼 솔루션을 보급하기도 용이하다는 판단이다. 스마프는 현재 중국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테크코드의 모회사인 CFLD와 중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IoT Biz Factory 1기로 다녀왔을 때 중국 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내년 솔루션이 완성되면, 중국 농업단지에 하드웨어 공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중국 진출에 나설 계획입니다.”
”다음 세대들이 쓸만한 도구를 갖게 하자.“
채한별 대표는 앞으로 10년 사이, 센서, 제어 등 각 분야별로 스마트팜이 세분화 될 것으로 예상했다. 농작물 생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한 곳에서 도맡아하는 기존 방식은 농업의 효율성과 작물의 품질을 담보하기 어렵다. 작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농지의 상태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 농업인들의 고민도 같은 선상에 놓여있다. 오늘날 기술을 바탕으로 필요한 분야에 집중하는데 있다. 스마프의 스마트밸브는 이러한 고민을 풀 실마리가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채대표의 최종목표도 다음과 같다. “다음 세대들이 쓸만한 도구를 갖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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