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제주 카페
제주도에는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쁨’을 자랑하는 카페들이 차고 넘친다. 제주도 여행자라면 꼭 가봐야 할 카페라고 소개되는 카페만해도 100곳도 넘을 것이고, 최근 들어서는 관광지라는 관광지마다 유명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이 앞다투어 문을 열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고자 하는 카페는 조금 다르다. 디지털 노마드들은 일을 해야한다. 아무리 예쁘고 아기자기하다고 한들 옆 테이블 커플들이 꽁냥꽁냥거리고 있다면 어떻게 일에 집중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풍경이 좋다한들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대식구가 들어와 즐거운 웃음꽃을 피운다면 어떻게 코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하루종일 노트북에 코를 박고 일하는 우리도 낭만이 있고, 분위기도 있고, 제주도를 느끼고도 싶다. 여행과 일을 함께 하자는 것이 디지털 노마드의 원래 취지 아닌가.
제주도에서 일하기 좋은 카페 10곳을 소개한다.
1편 제주시권
산천단 바람카페
늦가을이나 초겨울, 쌀쌀한 기운이 올라오고 하늘이 꾸물꾸물 비를 머금고 있다면, 게다가 처연한 마음에 세상의 모든 소음과 신호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고 싶다면. 그때는 바람 카페로 가야한다. 자욱한 안개가 이불처럼 덮힌 흐릿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이 카페는 여행과 세상사에 지친 모든 이들에게 완벽한 은신처를 제공한다.
제주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516도로(아 이 도로명은 요즘 논란이 많다) 초입. 그러니까 한라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카페다. 열평 남짓 공간에 화목난로가 놓여진, 카페라기보다는 산장 느낌이 더 나는 곳이다. 카페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책들로 꽉차 있지만 그렇다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쁜 것들은 없어 부담스럽지 않다. 아… 깜짝 놀랄만큼 예쁜 고양이들의 천국이라는 점을 잊었다.
카페 바로 앞에는 예로부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산천단’이 있고 여덟 그루의 ‘곰솔’이 영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사실 이곳은 초여름에도 좋은데, 물기 머금은 푸르름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제주 시내에서도 꽤 한라산쪽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도 작업하기에는 최적의 환경. 단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애정공세에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
A Factory
A Factory는 제주도 사람들에서나 관광객들에게 꽤나 많이 알려진 카페 중 하나다. 제주항 옆 바다에 맞닿아있는 탑동광장 근처로 제주시 원도심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한 3층 건물이다. 노출 콘크리트 천정에 전면 유리창으로 개방감이 뛰어나다. 게다가 건물 앞쪽이 탑동 광장이라 막힘없이 뻥뚫린 느낌이 좋다.
카페 근방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꽤나 다채롭다. 카페 앞 탑동 방파제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좋다. 여름날 해질녘 석양을 받으며 걷다보면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에 나왔던 아바나 해변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시원한 바람과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소리. 종종 바닷물이 포말이 되어 날아오기도 할 것이다. 바닷가 광장에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가끔은 인디밴드의 공연이 있을 수도 있다.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는 제주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칠성통이 있다. 명동도 그러하지만 여기저기서 중국어가 거침없이 들려와 깜짝깜짝 놀랄 수 있다. 칠성통 주변으로 작고 트랜디한 식당과 가게들도 많이 숨어 있다. 상수동 만큼은 아니지만,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감각적인 밥집과 술집, 제주의 특색을 살린 수공예품을 파는 작은 가게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시 원도심지역은 또다른 이유로 디지털 노마드와 IT인들이 주목해야한다. 제주도는 원도심 재생을 야심차게 준비 중이며 그 일환으로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체류와 업무환경 제공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바우트 커피
제주시에 거주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이 가장 많이 추천하는 일하기 좋은 카페이다. 이 카페의 장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일단 한라대학교 바로 길 건너편이고, 뒤로는 탐라도서관이, 옆쪽으로는 작은 공원이 있어 개방감이 뛰어나다. 마치 외국 대학가의 카페이 앉아 있는 듯하다. 왜 그런 학교들 있지 않나? 큰 도로 양쪽으로 학교 건물들이 줄지지어있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학교 옆이니 카페 이용객들이 대학생 위주이고, 다들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어 일하기 딱 좋다. 카페의 소음 대신 도서관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지경이다. 학생 위주이다보니 24시간 오픈이다. 와우! 또 오픈한 지 얼마 되지않아 넓고 쾌적하며 인테리어도 좋다. 들어가자마자 전기콘센트 있는 자리부터 스캔할 필요도 없다. 거의 모든 자리에 전원이 있다. 게다가 조금 당당한 심성의 소유자라면 6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나무 탁자도 독차지할 수도 있다. 종종 도서관에서 한무더기의 책을 빌려와 책상에 펼쳐놓고 공부하는 대학생도 눈에 띈다. 아… 젊음이여!
에이바우트 커피의 마지막 장점은 걸어 갈 만한 거리에 엄청난 흑돼지구이집들이 있다는 것이다. 제주인들의 돼지사랑은 깜짝 놀랄 정도인데, 흑돼지 구이는 물론 돼지갈비, 몸국, 해장국, 돔베고기, 고기국수, 수육 등등 돼지를 빼놓고 음식을 논할 수 없을 정도이며, 가끔은 삼시세끼를 돼지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그 치명적인 돼지 사랑을 한눈에 확인하게 해주는 곳이 바로 에이바우트 커피 근처의 흑돼지거리이다.
조금 중국스럽기까지 한 어마어마한 규모에 중국스러운 야간조명을 받으며 3층 건물 가득 돼지를 먹고있는 사람들을 보고있으면 돼지들에게 약간 미안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이 일대의 돼지집들은 최고의 맛을 선사하는 것으로 이미 해외에까지 알려진 것을!
매기의 추억
제주도 여행자라면 당연히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즐길 것이다. 애월, 용담 등 공항에서 가깝고 잘 알려진 해안도로도 있지만 최근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해안도로는 애월 넘어 귀덕에서 시작하여 협재항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이다. 애월 해안도로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데 반해, 귀덕-협재 해안도로는 바다 바로 옆으로 평평한 길 이어진다. 게다가 요즘 애월쪽 해안도로는 너무너무 붐빈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여행한다면 이 길을 추천한다.
이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중간쯤에 카페 매기의 추억이 있다. 바닷가 옛 돌집을 리모델링한 작고 소박한 카페.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길이 아니다 보니 조용하고 넉넉한 분위기가 좋다.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카페에서 보이는 바다도 잔잔하고 푸근한 풍경을 선사한다.
따뜻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는 봄이면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천천히 천천히 거닐어보자. 우리가 꿈꾸었던 따뜻함, 여유로움, 살결을 간지럽히는 바람, 평온함이 거기에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다보면 만나게되는 메기의 추억 역시 커피 한잔과 소박한 편안함을 제공할 것이다.
바람벽에 흰당나귀
함덕해수욕장을 지나 동쪽으로 가다보면 동복리라는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제주 해녀 중에서도 가장 강인하다고 소문난 해녀들이 이 동복 해녀다. 왜? 제주도 동쪽은 바람이 강하기로 유명하며 파도 또한 거세 작업환경이 험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냐면 종종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굽어서 자란 나무들을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험한 환경을 이겨내고 꿋꿋히 삶을 견뎌온 제주해녀의 대표들이다.
관광지도 아니고, 바람도 거센 조금 삭막하기까지 한 이 동네 바닷가에 카페가 하나 있다. <바람벽에 흰당나귀> 사실 이 앞을 몇번이나 지나다녔지만 카페라고 인지하지 못했던 곳이다. 바닷가의 버려진 낡은 창고 같은(실제로 낡은 창고를 개조했을 수도 있다.) 외부에 간판도 안내판도 없다. 오랫동안 해풍에 시달려 색이 바래고 녹슬어버린 우중충한 무채색 건물.
하지만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랄만큼 정돈되고 아늑한 느낌이다. 낡은 폐선에서라도 뜯어온 듯한 목재들로 마감된 천정과 낡은 벽돌들을 쌓아 올린 벽과 바닥. 가구들도 마찬가지다. 리사이클링, 친환경 등의 단어가 떠오를 만큼 낡고 오래된 것들로 이루어졌지만 깔끔한 분위기이다.
이곳 주인장은 무척이나 시인 백석을 사랑하나보다. <흰 바람벽이 있어>라는 시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상호를 빌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라는 백석의 시 구절을 떠올려보면, 이 카페는 겨울에 가는 것이 제격이다. 따뜻한 제주의 낭만은 저리 치워버리고, 실패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차가운 바람에 날려버리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혼자만의 처절한 고독을 승화시켜 일에 몰두하고자 한다면 이곳 바람벽에 흰당나귀를 찾아야한다.
마지막으로 팁을 하나 드리자면 이곳 해녀촌 식당들은 회국수로 유명한데, 그 맛 또한 해녀들을 닮아서 무뚝뚝하며 꿋꿋하다. 눈치가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거다.
2편은 서귀포시편 이다
글쓴이: 조희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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