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병원을 상대로 유가족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판결이 뉴스로 전해졌다. 고령의 환자가 휠체어에서 일어서려다 넘어져 대퇴부경부 골절로 수술을 기다리다 결국 사망한 사건이었다. 유족은 병원이 안전배려의무와 지도설명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입장은 달랐다. 순간적으로 발생한 휠체어 낙상사고는 병원이 예견하거나 예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영배 와이비소프트(YBSoft) 대표의 시선이 뉴스에 머물렀다. 그는 대학병원 간호사인 아내에게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느냐고 물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휠체어 낙상사고는 거의 매일 일어나는 사고였다. 낙상사고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고관절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의 고관절 부상 6개월 생존율은 40%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완성된 제품이 아니다”
유대표는 휠체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휠체어 시장은 알면 알수록 뭔가 이상했다. 휠체어가 세상에 나온 지도 100년이었다. 그동안 생활환경, 방식도 바뀌었다. 65세 이상 인구가 늘어나면서 휠체어 사용층도 늘었다. 사고 증가율도 이에 비례했다. 그런데 휠체어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60년 전 접이식으로 모양이 한 번 바뀐 이후 여전히 손으로 밀고 바퀴를 붙잡아 세우는 구조였다. 정지 상태를 유지하기 하려면 휠체어에 부착된 수동 잠금장치를 사용해야했다. ‘이건 완성된 제품이 아니다’ 새로운 휠체어에 대한 생각이 유대표의 머릿속을 스쳤다. 유대표는 낙상방지용 휠체어 구상에 나섰다.
안전바와 브레이크가 장착된 휠체어
힌트는 유아용 세발자전거에 있었다. 유아용 세발자전거에는 안전바가 장착돼 있었다. 몸을 못 가누는 아이들이 자전거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다. 휠체어에는 안전벨트가 따로 없었다. 유대표는 안전벨트나 바가 브레이크를 작동하는 작용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전바가 낙상을 방지하는 동시에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일반적인 브레이크와 반대로 작용한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자전거를 예로 들면 자전거는 브레이크 레버를 잡아야 브레이크가 작동합니다. 낙상방지용 휠체어는 안전바를 채우면(잡으면)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전거가 브레이크 레버를 풀어야 앞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낙상방지용 휠체어는 안전바를 풀면 정지상태가 됩니다. 낙상방지용휠체어는 작용을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잠겨있는 브레이크를 작용을 통해 푸는 원리입니다.”
유대표는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마친 후 설계와 도면 작업에 돌입했다. 완성된 도면을 들고 변리사를 찾았다. 낙상방지휠체어처럼 작동하는 휠체어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유대표는 특허출원을 마치고 국내 맞춤형 휠체어 제작 업체를 찾았다.
“이거 만듭시다”
도면을 살펴본 휠체어 제작업체 대표가 말했다. 제작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휠체어 제작업체 대표가 말하길, 휠체어라는 분야가 사지 멀쩡한 사람이 아이템을 들고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28년 휠체어를 만들었는데, 그런 사람을 본적도 없다고. 그래서 이 아이템은 세계적으로 통할 것 같다고 확신하더라고요.”
유대표 입장에서는 갑자기 시제품이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당장 사업화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조소과 전공 후 IT 업계에 몸담았던 유대표였다. 제조업은 상대적으로 생소한 분야였다. 캐릭터, 그래픽, 제품 디자인, 애플리케이션 제작 등을 두루 경험했지만, 하드웨어 제작은 처음이었다. 그는 휠체어 대신 당시 개발에 몰두하던 스마트컬러터치펜 ‘스크리블펜’에 몰두했다. 그러나 스크리블펜은 30억 원 투자 유치 직전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비슷한 시기 실리콘밸리 기업이 비슷한 아이템을 킥스타터로 런칭했다는 이유였다.
엉겁결에 ‘제대로’ 만들게 된 휠체어
주력 아이템 투자가 결렬된 후, 유대표는 아이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시제품과 사업화를 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대표는 창조경제혁신센터 타운을 찾아 아이디어를 등록했다. 유대표가 올린 아이템은 4번연이어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됐다. 선정된 아이템들은 국내 유수 대기업 출신 멘토의 멘토링을 거쳐, 사업화가 검토됐다. 그 중 하나가 낙상방지용 휠체어다. 휠체어는 시장이 작아 브랜드화가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아이템 범용성도 컸다. 휠체어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바퀴 달린 사물에는 모두 적용할 수 있었다. 엉겁결에 나와 버린 시제품도 있었다.
본격적인 사업화를 위해 실사용자를 찾아 나섰다. 시제품 다섯 대를 들고 노인정, 노래교실, 실버조기축구회 등 65세 이상 고령자 2,500명을 만났다. 휠체어를 직접 타본 이들의 사용 후기는 그대로 반영, 수정됐다. 발걸이 대에 걸려 넘어진다는 피드백을 거쳐 자동으로 발걸이대가 내려가는 다음단계 낙상방지용 휠체어도 그 중 하나다. 유대표는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거쳐 안정성을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바퀴달린 모든 것들의 안전 책임질 것
낙상방지용 휠체어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할 예정이다. 유대표는 기본 휠체어가 완성되면 중력기어시스템을 적용해 경사진 길에서도 안전하게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IT업계에 몸담았던 경험도 십분 활용할 예정이다. IoT 휠체어를 통해 효율적인 모니터링을 돕는다는 포부다. 휠체어 다음 단계는 유모차다.
“휠체어가 궤도에 오르면 유모차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유모차는 끄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유모차를 타고 있는 승객은 유모차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블랙박스 영상만 봐도 평지인줄 알고 잠깐 유모차를 세워놨는데, 유모차가 그대로 도로위로 굴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유모차를 끄는 사람이 유모차를 잡아있을 때만 움직여야 하고, 유모차를 놓았을 때는 무조건 잠겨야 합니다. 와이비소프트는 휠체어로 안전성을 검증받고 유모차로 시장을 확대, 나아가 바퀴달린 모든 것들의 안전을 책임지겠습니다.”
유대표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꿈을 향해서 계속 일을 해나가면 되돌아봤을 때, 보람 있는 삶을 살다 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와이비소프트는 현재 3월 양산을 목표로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기존 휠체어 장착용 모듈은 5월 생산 예정이다. 양산이 본격화되면 일본, 미국, 캐나다 등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문을 두드린다. 지금까지 휠체어가 외국에 수출된 적은 없다. 계획대로 된다면, 와이비소프트가 첫 사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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