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국 시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는 왕홍(網紅)이다. 왕홍은 우리로 따지면 쉽게 말해 파워블로거와 비슷하다. 위챗이나 QQ, 웨이보 등 중국 SNS에서 활동 중이면서 팔로워 수가 최소 50만 명 이상인 소셜미디어 스타를 뜻한다. 이들 1인 채널 브랜드는 인터넷에서 높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국내에서 왕홍 모시기 경쟁이 뜨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에이식스 공동 창업자인 송준용 대표는 왕홍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하던 중 왕홍의 파워를 느낄 수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을 겪었다. 송 대표는 지난 3월 1일 저녁 10시 말레이시아 출신 왕홍인 렌예인(Leng Yein)과 함께 국산 립글로스를 판매하는 페이스북 생방송을 진행했다. 2시간 남짓 방송을 했지만 시청자는 10만 명. 매출도 예상했던 만큼 나와 성공적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추첨을 통해 10명에게 제품을 무료 배송하겠다고 공지한 뒤 선정은 송 대표가 하겠다고 밝혔다. 렌예인은 송 대표의 위챗과 왓츠앱 아이디를 방송 중 공개해 사연을 올리라고 했다. 물론 송 대표는 순수한 마음에 시청자 사연을 보면서 선정하는 재미나 경험해보겠다는 생각이었지만 1시간 동안 900여 명에 달하는 20대 시청자에게 원망 섞인 문자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이유는 이렇다. 위챗은 친구 추가를 수동으로 해야 한다. 일일이 수락을 해줘야 하는 것. 그런데 수락하는 속도보다 친구 신청 속도가 더 빨라서 중간에 포기를 해야 할 정도였다. 또 방송 화면을 캡처해서 사연과 함께 보내라고 공지했는데 사진 파일을 일일이 눌러서 확인하면서 사연까지 읽으려니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겨우 10명을 추려 발표하고 나니 싱가포르 지역 당첨자도 있어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까지 50g짜리 립글로스 하나 보내려고 1명당 배송료 2만 원 이상을 내게 됐다. 또 추첨 제품이 방송 중 판매한 것과 같다고 말하니 주문 후 입금 대기가 늘었다고 한다. 판매 상품과 다른 걸로 했어야 하는 걸 깜박한 것이다. 물론 이런 실수도 있었지만 대신 500여 명에 이르는 10∼20대 위챗 친구를 얻은 건 수확이었다.
송 대표는 왕홍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왕홍은 아무나 하는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방송을 마치고 렝예인에게 과한 욕심 탓에 너무 힘들었다고 말하니 “내 일상으로 들어온 걸 환영한다(Welcome to my everyday life)”고 말했다고. 국내에서도 최근 왕홍 마케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참고가 될 만한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왕홍 마케팅을 하려면 철저한 준비나 검증도 필요하다. 서수진 S2J CEO의 경우 왕홍 행사를 보면서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왕홍왕 쉐리밍 회장의 왕홍을 초청한 것이어서 팔로우 수는 이미 어느 정도 검증됐지만 문제는 노출수가 많아도 막상 서비스한 콘텐츠가 서 대표 입장에선 형편없었기 때문이라고. 팔로어 수가 많아도 막상 콘텐츠는 부실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결국 왕홍 마케팅이 중국 시장에 어필하기 위한 필수 관문일 수는 있지만 어떤 콘텐츠를 어떤 과정으로 접목할지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왕홍에게만 무작정 의존할 게 아니라 콘텐츠 기획을 치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왕홍 마케팅을 하더라도 명확한 프로세스에 대한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한마디로 “노출만이 능사는 아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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