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콘텐츠 창작자는 춥고 배고플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음악이건 글쓰기건 간에 동일선상에 두고 보는 사회 분위기도 한몫 거든다. 물론 그 틈바구니 속에서 얻는 성공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달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전과 모험을 불사하지만 말이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거나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아니 모든 사업이 그렇다. 창업 후 1년, 그리고 최소 3년이 지나야만 비로소 안정궤도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그들의 아이디어와 열정 만으로 성공 가능성을 믿고 열심히 살아가는 회사가 모두 스타트업이니까. 이 역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는 과정이고 일련의 창작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VR스타트업(이하 SVS)을 방문해 VR관련 스타트업 얘기를 들어봤다. SVS는 와이제이엠게임즈와 일본 구미(gumi)사가 합작 사업으로 만든 VR 전문 액셀러레이션 사업이다. 지난해 12월 제1기 프로그램에 에이투젯, 도베르만 스쿼드, 루프탑, 홍빈 네트워크 4개사를 킥오프했다. 이들 4개사는 현재 VR관련 미들웨어, 게임, 하드웨어, 테마파크 관련 수익 모델을 개발 중이다.
이 중에서 VR하드웨어를 개발하는 2곳을 만났다. 도베르만 스쿼드와 루프탑이다. 먼저 도베르만 스쿼드는 VR 관련 분야에선 국내 1세대 인원이 모여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곳이다. 현재 B2B 시장에서 쓰일 시스템 수요를 예상해 시스템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루프탑은 VR하드웨어 개발사로 의자형 VR 컨트롤러인 ‘re:VRS’를 개발중이다. 움직임을 지면에서 인식할 수 있는 모션센서를 이용해 가상공간에서 쉬운 공간이동을 돕는 신개념 컨트롤러다.
“HMD나 핸드 컨트롤러는 현실에 벽에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의자 형태로 가상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게 된 계기였죠.” 루프탑 이상혁 대표의 말이다.
건설사에서 근무하다 자연스럽게 드론, 로봇, 자동화 같은 최신 기술을 접하게 됐고 VR을 만나면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VR 관련 기기 중에는 하이엔드 기기에 속하는 옴니(Omni)같은 장비보다 훨씬 저렴하고 이용이 편한 방식을 찾다가 지금의 의자 형태로 개발하게 됐다. 물론 가격은 옴니 대비 절반에서 3분의 1 정도로 저렴하다.
하필 왜 의자냐고 물었다. 전혀 최신 기술이 잔뜩 들어간 VR 기기를 즐기는 데 있어 혁신적이라 느껴지지 않아서다. 돌아오는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현재 VR 사용자 대부분이 앉아서 가상현실을 즐기고 있다는 것.
도베르만 스쿼드의 조재현 대표도 거들었다. “옴니 같은 VR 기기나 공간 센서를 이용해 서서 즐기는 VR 소프트는 성인 조차도 십여분 이상 즐기기 어렵습니다.” 한마디로 숨이 차서란다. 사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바빠 그 순간엔 인지하지 못할 뿐 VR기기는 IT기기의 하드웨어 뿐 아니라 인간의 하드웨어(육체)도 종종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 법이니까.
당연한 수순이지만 힘들면 오래 즐기기 어렵다. 스타크래프트나 오버워치처럼 PC방에서 3~4시간씩 플레이 할 수 있는 게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문제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란 큰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의자에 가만히 않아 360도 사진을 보는 게 전부라는 사용자 경험에 있다. 가상의 공간에서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앞서 거론한 옴니에서 찾아야 했다. 걷거나 뛰는 것이 가능해 자유도가 높아졌지만 육체적 피로도 동시에 얻게됐다. 옴니를 사용하면 고장난 트레드밀을 억지로 힘으로 미는듯한 기분이다.
건설사는 사용자의 생활성을 높이는데 중점을 둔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라면 사용자 행동패턴을 연구해 동선을 최적화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 보다 안락한 생활공간을 설계하기 위해 연구한다고.
VR장비에도 이런 요소를 적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앉아서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의자 형태 플랫폼으로 개발하게 된 것. 사용자는 최소한의 힘으로 걷는 것과 유사한 동작을 할 수 있다. 대신 두 팔엔 따로 컨트롤러를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
연구결과 3단계(depth)가 넘어가면 사용자는 번거로워 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한다. 결국 단계를 줄여야 하는 것도 해결 과제. 가상현실 체험을 위해 머리에 쓰고 손에 쥐어야 하는 불편함도 장벽이 될 수 있다.
사용자층은 점점 얕아질 것이고 이럴 경우 대중화는 점점 멀어지기 마련이다. 또 다른 기존 VR 솔루션의 문제는 설치 공간 제약이다.
일단 의자 형태로 구축하면 공간효율성이 높다. 앉아서 VR을 즐겨야 하는 만큼 안전하고 의자를 놓은 공간만 있으면 설치하는 데 충분하다. 같은 장소에 좀더 많은 VR기기를 설치할 수 있으니 시간당 이용 비용도 낮출 수 있다. 지금 당장 보급된 플랫폼으로 이용금액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앞으로는 충분히 가능하단 얘기다.
아직까진 제대로 된 VR 소프트는 게임이 유일하단 생각이 들었다. 게임이 VR업계의 희망일까? PC산업이 그래왔듯이 게임이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건 당연하다. 이미 일본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VR이 100만대 이상 팔려 나갔다. 충분한 시장성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패턴이 조금 다르다. VR방이 기존 PC방을 대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VR방을 꾸미기 위해서는 PC방보다 많은 초기투자 비용이 든다. 그리고 훨씬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이용료가 상대적으로 비쌀 수 밖에 없다. 현재 책정된 이용료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대부분 프랜차이즈 형태를 생각하지만 카페처럼 창업을 한다면 좀더 초기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이름 없는 동네 PC방에서도 리니지를 할 수 있으니까. 그들이 공용화 VR 플랫폼 개발을 서두르는 이유다.
우리나라 인터넷 강국이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밀레니엄 시대 이후 PC방 2만개 개설이 기폭제였다. VR시장도 결국 마찬가지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VR산업의 승패가 VR방에 달렸냐고 물으니 그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미 해답은 중국이나 미국에서 나왔다. 이제는 다시 콘솔게임기처럼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시장 보급을 위해 B2B서비스로 접근하기 위한 플랫폼이 필요해서 지금의 솔루션을 고안했을 뿐 좀더 가격이 저렴한 HMD나 저사양 PC를 활용한 미러링도 개발중이다.
◇ “결국은 해상도·무게·가격이 관건”=우리나라는 중간 기기가 없다. 오큘러스 같은 하드웨어와 이를 구동할 고사양 PC 아니면 휴대폰이 전부다. 중간 역할을 할만한 하드웨어가 없다. 적정 수준의 콘텐츠와 적당한 하드웨어가 준비돼야 진입장벽이 낮아지는데 아직 그런 제품이 없다는 게 문제다. 결국 2세대 VR기기가 나와야 시장이 제대로 형성될 것이란 예측이다.
마치 키보드나 마우스처럼 VR장비 역시 필수품이 될 때까지 시장을 이끌어 가는게 목표라고. 하드디스크 사는 느낌으로 구매하는 시점이 VR보급의 원년이 될 것이다.
“멀미….” “아..!! 그게 말이죠..” 질문이 채 끝나기 전에 한숨 섞인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사실 “VR기기를 오래 사용하면 멀미가 나지 않나요?”라는 질문은 애초에 할 생각이 없었고 멀미가 왜 나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인간의 눈은 초당 120 프레임으로 움직이는데 LED모니터는 60프레임, OLED는 현재 90프레임을 지원한다. 간단하게 HMD 디스플레이가 120프레임을 지원하면 멀미가 나지 않는다. 문제는 120프레임을 구현하기 위한 디스플레이 가격과 신호를 보내기 위한 하드웨어 처리 문제가 남는다.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용자가 미리 예측을 하면 멀미 증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반복되면 멀미가 난다. 결국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 완성도의 문제였다. HMD에 예측가속센서가 있으면 프레임이 떨어져도 멀미 발생을 줄일 수 있다.
VR같은 최신 기술의 격전지에 있는 이들이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VR분야가 이슈가 되기 시작한 건 4년 전 오큘러스가 페이스북에게 투자를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아직 국내 실정은 미온적이다. 중국은 재작년부터 부동산, 게임을 그리고 작년에는 콘솔 분야에 VR을 접목시켜 왔다. 이미 시장은 해답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는 올해가 원년이란 게 문제다.
VR과 연계 가능한 기술인 AI나 커넥티드 카 같은 분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국내에선 VR 다음이 AI라고 생각하는 데 제대로 된 순서를 매기자면 AI가 먼저란다. 문득 인공지능이 가상현실을 보다 풍요롭게 꾸며주는 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측 불가능한 인공지능이 가상현실을 보다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건으로 바꿔 줄 테니까. 어차피 현실이란 게 한치 앞도 모르고 사는 인생 아닌가.
이들은 기본에서 답을 찾았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며 멀미가 나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자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은 체력적인 부담이 없고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 말이다.
인생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VR 스타트업을 왜 시작했냐고 뒤늦게 물었다. 스타트업은 고급스러운 단어다. 결국 청년을 위한 벤처 창업인데 그동안 IT업계에서 우상으로 추앙된 스티브잡스, 손정희, 마윈 같은 캐릭터는 기술보다는 소프트웨어 지향이었고 지금은 게임, 앱의 시대를 지나 VR로 가고 있으니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먹고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걱정꺼리지만.
얼마전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도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상자로 나온 어느 인디 가수는 이번달 월세 낼 돈이 없어 이 자리에서 받은 트로피를 바로 경매에 부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곧장 경매로 받은 50만원을 손에 쥐고 “나는 오늘 명예와 돈을 동시에 얻었다”라는 수상 소감과 함께 시상식장을 떠났다.하루하루가 치열한 경쟁을 하며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스타트업도 같은 기분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좋은 액셀러레이터를 만나 그들 스스로 자생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를 행운 정도의 단어로 폄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시쳇말로 ‘먹고 살만해야’ 제대로된 창작물이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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