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수많은 혈관 분포를 통해 육안으로 진단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기다. 그 중에서도 눈의 망막을 촬영해 시력을 잃기 전에 미리 진단이 가능한 장비를 ‘안저카메라’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안저카메라는 망막을 촬영하는 카메라다. 안저카메라는 기술적으로 설계가 어렵고 사람마다 발생하는 수차가 달라 이를 최적화하고 설계하는 기술이 핵심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안저카메라를 개발/생산하는 곳은 전무한 상황.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안질환 대부분은 증상이 80%까지 진척되기 전에 진단이 힘들다고. 실명은 신경이 아예 망가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질환이라 치료 자체가 불가능하다. 안저카메라를 통한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안저카메라 같은 헬스케어 분야는 보통 최첨단 기술이 몸에 적용되는 응용기술 형태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안정성을 검증할 수 없어 다른 기술을 응용해 접목하기 때문이다.
안과 질환의 조기 진단이 가장 필요한 질환은 당뇨병이라고 한다. 당뇨 합병증 중에 가장 발현 빈도가 높은건 당뇨망막증. 당뇨 환자 3명중 1명이 이 질환에 시달린다.
보통 조기 진단을 가장 원하는 건 환자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새로운 질환이 발견될 경우 가장 먼저 진단과 치료에 심혈을 기울이는 곳은 다름 아닌 제약사다. 제약사 입장에선 보다 빨리 진단해 오랫동안 약을 팔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게 이익이다.
루티헬스는 안저카메라의 활용 범위를 다른 질환의 조기진단까지 가능하도록 그 범위를 넓혔다. 뇌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을 안저카메라를 통해 눈으로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이다.
눈을 통해 뇌 질환 진단이 가능한 이유는 눈에는 모든 신경이 연결 돼 있기 때문.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라면 눈에서 베타-아밀로이드라는 특정 단백질이 나타난다. 이 수치를 안저카메라를 통해 측정할 수 있어 심장 질환이나 뇌졸증 같은 질환의 조기 진단이 가능하다고. 인체에서 나오는 특정 성분을 촬영하려면 별도 파장이 필요한 데 이를 위해 촬영에 특화된 광원 2종이 쓰인다. 물론 지금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연구 과정 단계이다 보니 시간이 필요하고 당장 안저카메라를 통해 가능한 일은 실명 인구를 줄이는 데 있다.
안저카메라를 자체 개발하는 루티헬스는 이 부분에 착안해 카메라 개발에 착수했다고 한다. 기존 장비의 문제는 일단 일반인이 촬영하기 어렵다는 것. 심지어 전문의 조차도 일정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정도로 안저카메라를 다루기가 까다롭다.
“일종의 헤어드라이처럼 생긴 포터블 장비를 들고 촬영 연습을 해야합니다. 망막 사진을 찍을 때 사진 촬영을 하는 것처럼 플래시를 터트리기 하는데 이것 또한 잔상이 남거나 환자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어 검사 과정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원인이 되곤 합니다.” 해외에선 일반 의사도 이 장비를 쓰고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임에도 국내에선 운용과 보급이 유독 까다롭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을 개인도 쉽게 조작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진입장벽을 낮추는 게 루티헬스의 1차 목표다. 그리고 안저카메라 자체를 다른 사람이 찍기엔 앞서 설명한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으니 본인이 직접 촬영 가능하도록 웨어러블 형태로 만들었다. 얼핏보면 개인용 VR 헤드셋처럼 생긴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본인이 직접 망막을 촬영하려면 여러 장치를 헤드셋 속에 집어 넣어야 한다. VR 장비는 디스플레이와 6축 자이로 센서만 있으면 가능하지만 안저카메라는 망막을 촬영해야하는 장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일단 머리에 안저카메라 헤드셋을 단단히 고정시킬 수 있는 장치다. 카메라 본체와 머리가 고정된 다음엔 눈과 최대한 일직선 상에 카메라가 고정될 수 있도록 움직이는 장치가 한조를 이루게 된다. 카메라 렌즈는 선명한 사진 해상도를 위해 초점을 잡거나 회전축을 보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지금은 망막의 40° 정도를 촬영하는데 그 주변부를 좀더 제대로 찍기 위한 캘리브레이션 기능도 추가했다.
안저카메라는 이미 보편화된 장치이고 카메라에 사용되는 기술 역시 전세계적으로 범용화된 것이다. 기존 시제품과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렇다. 소형화한 기기가 제대로 된 성능을 내는 건 이미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상태. 루티헬스는 현재 카메라/렌즈를 자체 설계해 생산하고 있다. 망막을 촬영할 때 쓰이는 파장이 제대로 조사되고 있는지 측정하는 파면센서의 데이터를 얼마만큼 잘 뽑아내는지가 관건인 상황이라고. 그래야만 촬영된 사진 여러 장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촬영된 사진을 얻어낼 수 있다고 한다.
얼핏 들어보면 사진같은 영상 처리에 쓰이는 HDR나 MRI에서 사진 수십 장을 중첩해 해상력을 높이는 기술은 아니다. 단순히 촬영한 이미지가 클라우드를 통해 곧장 의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정확한 질환 분석을 위해 필요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의사에게 전달된 데이터는 딥러닝 기반으로 판단해 지난번 진단 대비 완화, 악화 여부를 자동 판단한다. 루티헬스가 보유한 솔루션은 안과에 갈 필요 없이 내과 의사도 바로 판단을 해 전문의 소견에 따라 안과로 전과가 가능해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다는 데 있다. 국내 의료법상 원격진료는 불법이지만 다른 진료과 의사끼리의 진료는 ‘협진’이라 불법이 아니다.
어느 병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안과 질환은 조기 진단이 가장 중요하다. 증상이 발현한 상황이면 이미 손 쓸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라식이나 라섹 수술을 하면 녹내장 위험성이 일반인에 비해 높아지지만 개안 수술 후 꾸준히 검사를 하는 환자는 드물다. 당뇨병 환자 역시 안저 검사율이 40%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환자가 보통 의사 소견을 귀담아 듣지 않아서다.
루티헬스는 의료계의 샤오미를 지향한다고 국 대표는 말한다. 복잡하고 거창한 기술 대신 어디서나 필요한 분야에서 쉽게 구입해 쓸 수 있도록 장벽을 낮추는 게 가장 큰 목표다. 하지만 단순히 망막을 촬영하는 저렴한 카메라 헤드셋이라 폄하하기엔 진단할 수 있는 질환 범위가 광대하다. 실명과 뇌졸증, 치매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질환을 미리 예측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