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정규 교육 과정은 12학년제다. 원더백의 김은정 대표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계사, 로스쿨을 준비하느라 정규 교육 과정에서 10년을 더 공부했다. 아직 서른이 안됐으니 인생중 3분의 2 이상을 꼬박 공부하는 데 쓴 것.
20년 이상 매일 메고 다녀야만 했던 책가방은 꼴도 보고 싫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김 대표가 창업한 아이템은 다름아닌 ‘백팩’이다. ‘왜 하필 가방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냥 막연히 즐겁고 신나는 게 없을까라고 고민하고 있는 시기였어요.” 앞으로 진로를 결정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는 데 ‘집-학교-독서실’로 이어지는 무한루프의 패턴에 그만 이골이 나 버렸던 것. 이미 공부에서 즐거움을 찾을 시기는 지났고 앞으로 먹고 살 길도 막막했고 취업 후 결혼을 하면 경력 단절이 일어날 게 분명해 취업 역시 목표로 삼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참 고민에 빠져있던 그 시기에 돌파구로 생각한 게 바로 창업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가방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템을 안 정한 상태였고 평생(!) 공부만 해 왔기 때문에 관련 네트워크도 전무한 상황에서 벌인 한마디로 ‘무모한 도전’이다.
아이템 선정을 위해 창업박람회도 찾았지만 IT관련 분야는 지금까지 공부한 전공과 달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했다. 의류나 신발 분야도 생각했지만 디자인 문제가 크게 걸렸고 국내 시장은 브랜드도 많이 따지는 편이라 진입장벽이 의외로 높았다.
시장 조사를 위해 김 대표가 쓴 솔루션은 다름아닌 인디고고나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였다. 등록되는 아이템을 조사해 보니 백팩 분야가 다른 아이템에 비해 진입장벽이 비교적 높지 않았다.
창업을 결심하고 아이템을 고르는 과정에서 머릿속에 떠올린 건 딱 2가지였다고 한다. 첫 번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하고, 두 번째는 ‘내가 즐거운 일’일 것. 이 2가지 명제를 두고 아이템을 고르다 보니 예상외로 결론은 금세 나왔다.
“평생 공부만 하다 보니 제 인생에서 백팩이 차지했던 비중이 상당히 컸단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오랫동안 삶의 동반자였던 만큼 수많은 백팩을 써오면서 문제점도 많이 느끼게 됐던 것.
가벼운 건 가방 천이 금세 해지고 법을 공부하던 시절 들고 다녔던 책은 유난히 크고 무거운 탓에 멜빵 쿠션이 금방 죽어 어깨를 옥죄어왔다. 오른손잡이 만을 위해 한쪽 방향으로만 열어야 하는 불편함 역시 차별이라 생각했다.
공동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류지헌씨 역시 같은 문제로 고민하다 합류를 결정했다. “카메라백 같은 전문가용 가방은 다양한 기능을 갖췄지만 데일리 백에 기능성을 담는 시도는 전무했던 상황이었죠.” 등산 가방처럼 기능성이 높은 가방을 데일리 가방으로 끌어오면서 동시에 필수품이 되어 버린 노트북도 충분히 수납이 가능한 백팩이 개발 목표가 된 이유다.
사업 아이템을 정한 후 두 사람이 처음으로 시작한 건 다름아닌 ‘공부’였다. 순간 ‘진흙탕 피하려다 똥 밟는다’란 말이 떠올랐다. 물론 그들의 공부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제품 개발과 디자인 이전에 먼저 인터넷 검색과 시장을 찾아다니며 원단이나 소재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경쟁력은 다름 아닌 공부였다. 휴대폰 파우치나 대중적인 노트북 크기까지 엑셀로 정리해 표준값을 구하고 디자인에 오롯이 적용했다. 옷, 구두 학원은 있어도 가방 학원이 없어 처음엔 부직포로 만들다가 모눈종이, 패턴지까지 사용해가며 실제 구현할 수 있는 부분을 모두 적용해봤던 그들이다.
소수정예로 움직이는 만큼 시간 활용 역시 중요한 부분이었다. 겨울 방학을 틈타 작년 12월부터 원단을 보러 다니고 아이디어를 구체화 한 건 올해 1월이다. 창업지원센터의 경우 보통 6~12개월을 준비하고 상품화 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빠른 편이다. 게다가 생산과정까지 포함해야 하는 제조업 기반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질문에 ‘우리는 영혼을 갈아 넣어서 최대한 짧은 기간에 해결했다’고 우스개 소리로 답했지만 패션 분야는 트렌드가 금세 바뀌는 시장이다. 아이디어가 나오면 빠른 시간에 생산하는 것 또한 능력이고 경쟁력인 셈이다.
원더백의 핵심이자 가방의 좌우측을 양면 개폐할 수 있는 ‘3면 접근’은 일종의 차별에 대한 반항 심리였다. 한국은 표준에서 벗어나면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데 대표적인 게 왼손잡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차별을 하지 말자’는 철학을 녹여낸 것.
가방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을 끝냈으니 이젠 실제 가방을 만들 공장을 찾는 일이 남았다. 이 과정은 모든 제조 기반 스타트업이 골머리를 썩이는 부분이다.
디자인을 보고 문전박대를 하는 공장도 많았고 제조 공장을 찾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역시 “좌우 지퍼 중에 1개는 없애면 안되냐”였다. 그만큼 제조가 까다로웠다. 창업지원은 언감생심이었다. IT에 편중된 상황이라 제조업이 받을 수 있는 기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디자인 부분이 많아 특허나 디자인 침해에 대한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공부한 것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었다.
프로토타입에서 시제품까지는 4단계 시행착오 과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카메라 가방을 생각해 파티션을 넣었고 신발 가방까지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안 예뻐서 양산 단계에는 빠졌다. 아웃도어 가방에서 힌트를 얻어 방수 지퍼에 발수 원단을 사용하고 보조배터리나 케이블 같은 잡다한 액세서리를 수납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추가했다.
“복학생의 상징인 노스페이스 백팩에 한쪽엔 물병 한쪽엔 우산을 꽂고 다니는 게 너무 싫었어요.” 아재 느낌 그득한 물병을 고정하는 밴드 역시 가방 안쪽 좌우에 배치하게 된 계기다.
4웨이 방식을 적용해 백팩 형태 말고도 크로스백, 슬링백, 브리프케이스 형태로 들고 다닐 수 있고 15.6인치 크기 노트북도 수납 가능하다. 측면 개폐 역시 가방을 멘 상태에서 안쪽을 확인하기 쉽도록 사용자 반대 방향이 열리도록 했다.
원더백(1THEBAG)이란 네이밍은 여러가지 뜻을 담고 있다. 가방은 뭔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에 가까운 물건이다. 동시에 기능성과 함께 디자인이 역시 멋져야 하는 게 바로 가방이다. 그래서 원더백 ‘wonder bag(놀라운 가방)+ wonder back(놀라운 뒤태)’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이름으로 정하게 된 것.
모델명 역시 돌핀이 아닌 돌고래인 이유도 우리나라에서 만든 백팩인 만큼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돌고래라는 동물이 워낙 영리한데다 색상도 멜란즈 그레이가 돌고래와 색상이 비슷해서다. 앞으로도 동물 시리즈의 한글 이름을 고수할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다음 제품은 기능성을 갖춘 에코백이다.
수익금의 중 1%는 반드시 기부하겠다고 한다. “대체 먹고 사는 건 언제쯤 걱정할거냐”라는 말이 목젖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그들은 태연하게 ‘기부는 문화고 습관’이란다. 회사를 만들 때부터 수입이 생기면 단돈 몇 만원이라도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이를 충실히 지켜나갈 거라는 소신을 밝혔다.
요즘 소셜미디어 광고를 진행하는데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고 ‘불안해서 학원 다니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파상공세로 쏟아 부을 자신이 없으면 기부처럼 1%로만 하라’고 조언 아닌 조언을 하고 말았다.
<매일을 함께하는 당신이 즐거우면 좋겠습니다> 제품 설명 페이지 한 켠에 써 있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무엇과 매일 함께하라는 건지 구체적으로 써 있지 않지만 ‘즐거움을 공유하는 방법이 여러가지일 수 있겠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원더백의 또다른 슬로건은 <Your Carrying Solution>이다. 원더백은 ‘당신의 나름(carrying)에 대한 (원더백) 나름의 답(solution)’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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