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진출은 꿈꾸는 스타트업이라면 실리콘밸리로 대변되는 미국을 관문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왜 미국 시장에 진출할까. 그리고 진출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벤처스퀘어가 지난 5월 3일 한국콘텐츠진흥원과 미국 프로그램을 진행, 미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스타트업을 초대해 한국 스타트업의 실리콘밸리 진출을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미국 진출을 희망하는 스타트업에게 이들 선배 기업이 해준 조언은 뭘까.
◇ 장벽 높지만 넘으면 글로벌 사업성 인정=핀테크 스타트업으로 메시징과 채팅 솔루션을 개발 중인 센드버드(SendBird) 김동신 대표가 미국 시장에 진출한 배경은 이렇다. 김 대표는 이전 회사를 매각한 뒤 좀더 글로벌 영향력을 미칠 제품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이런 이유로 2013년 정부 사업으로 엑셀러레이터에 방문, 여러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됐다. 결국 2016년 와이콤비네이터를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미국에 터를 잡고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 것.
캐시슬라이드의 미국판 서비스 격인 프론토(Fronto)는 아예 처음부터 현지화를 염두에 뒀다. 이 회사 안성호 대표는 “캐시슬라이드가 이미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한국 시장을 점유하고 있던 상태인 만큼 시장 확장은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에 법인을 세우고 2014년부터 시장 확장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양사의 미국 시장 진출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미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비슷하다. 김 대표는 “미국 시장의 진입 장벽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이 장벽을 넘는다는 건 곧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성을 인정받게 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센드버드는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이라는 점, 와이콤비네이터 출신이라는 브랜드가 큰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에서만 알려진 기업보다 고객의 선택을 받기도 유리하다. 김 대표는 실제로 최근에는 미국 뿐 아니라 동남아 시장에서도 꽤 규모 있는 기업이 먼저 연락을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안 대표는 유저 1명당 LTV(Lifetime Value) 관점에서 봤을 때 다른 시장보다 미국이 훨씬 높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런 점에서 동남아 같은 다른 시장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진입 장벽이 높아도 미국 시장이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안 대표는 “물가나 인건비가 한국보다 훨씬 비싼 만큼 효율적인 사업 운영을 고려한다면 사업 초기부터 미국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회비용을 감안한 전략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아직 미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국내 스타트업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 가운데 하나는 역시 새로운 시대의 아메리칸 드림, 미국 VC로부터의 투자 유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지 투자 유치를 위해선 어떤 요소를 고려해야 할까. 김 대표는 미국 VC는 아무래도 미국 기업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어느 투자자나 마찬가지로 본인이 잘 아는 시장에서 잘 아는 고객, 잘 아는 팀이 하는 사업에 투자를 선호하는 건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선 숫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이런 숫자가 좋아도 가치를 평가할 때에는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 느껴지는 여러 불확실성 탓에라도 할인이 있기 마련이죠. 결국은 미국 시장에서의 확장성을 보려 하겠죠.” 센드버드의 경우 와이콤비네이터가 좋은 보증인 역할을 했고 아무 도움이 없는 것보다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안 대표도 비슷하다. 한국에서 숫자가 어마어마해도 미국에서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할 때 현지 VC의 기업 가치 디스카운트가 생각보다 컸다는 것. 안 대표는 미국 VC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받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커서 한국과 아시아계 VC로부터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 자금으로 미국 진출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안 대표는 미국에 처음 진출하려면 먼저 현지 요구를 조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품에 대한 실행 가능성 테스트(feasibility test)를 하고 엔드 유저 인터뷰도 했다. 모바일 잠금 화면 앱이라는 컨셉트 자체가 한국에서 시작된 만큼 미국에선 완전 생소했던 모델이었다. 따라서 현지 사용자의 피드백이 가장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미국 현지 직원을 고용해 팀 빌딩을 하는 것이다.
안 대표는 처음에는 아예 전략적으로 미국인만 고용했다. 장점은 빠른 현지 요구 파악, 단점은 빠른 이직률이다. 또 팀원이 모두 미국인인데 안 대표만 한국인이다 보니 언어 문제로 한국 본사와 미국 현지 실무진간 소통이 단절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하지만 한국인으로만 팀을 구성했을 땐 본사 소통 면에선 좋았지만 한국인 팀에 외국인을 채용하기도 애매해 스케일업이 어렵고 인재 자원도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고 조언한다.
◇ 한국과는 다른 세일즈 문화=김 대표는 미국에서 법인을 설립할 때 주의할 점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센드버드처럼 한국 법인을 Delaware flip(이미 존재하는 한국 기업을 미국 기업으로 바꾸는 것)할 땐 미국 법인 설립까지 한 번에 꼼꼼하게 봐줄 법률 사무소와 회계 법인을 잘 고르는 게 중요하다”는 것.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처음에 대충 해버리면 나중에 굉장히 번거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작은 팁이지만 미국 세금 신고는 4월 마감이라 실제로 바로 사업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면 여러 비용이나 잠재적 세금 위험을 피하기 위해 연말 법인 설립은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또 핵심 멤버들이 현장에 와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사업이 잘 되는 걸 꿈꾸고 있다면 미국 현장에서 현장 분위기를 실감하고 여기에 맞춰 일해봐야 한다는 것.
예를 들면 같은 비즈니스라도 미국 시장에서의 B2B나 B2C 분야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B2C 분야를 공략 중인 안 대표는 누가 뭐래도 페이스북이 아직까지는 가장 파워풀한 툴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어떤 플랫폼도 페이스북만큼 정교하게 타깃팅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가설을 세워 빠르게 테스트, 효율이 나오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카피나 이미지 색상, 링크 등 작은 요소 하나에 따라서도 효율이 엄청나게 달라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안 대표는 전 세계적으로 페이스북만큼 정교한 타깃킹과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은 아직 없다고 단언한다.
반면 B2B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춘 김 대표는 B2B는 세일즈라고 말한다. 물론 차이가 있다. 그의 설명을 빌리면 한국은 관계 지향적인 반면 미국은 프로세스 중심으로 세일즈 문화차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에선 한 번이라도 만나서 식사도 하고 관계를 쌓아가는 게 보편적 세일즈 과정이잖아요. 하지만 미국 세일즈는 원격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미팅 시간도 짧게 잡기 일쑤죠. 서로 시간을 적게 쓰고 숫자로 운영되는 방향으로 프로세스가 잡힙니다. 고객사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시그널이 중요하죠.”
이들 대표와 토론을 하면서 던진 마지막 질문은 “한국 스타트업으로서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데 장벽이 있었냐”는 것이다. 안성호 대표는 아직까지 장벽은 없었지만 미국 시장은 끈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건 확실히 배웠다고 말한다. 모두 비슷하게 사고하는 한국과 달리 문화, 종교, 언어가 다양하고 국토도 넓어 미국에서 성장하려면 굉장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결국 장기적 안목을 갖고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이스라엘처럼 한국 스타트업 관계자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장기적 안목과 지원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김동신 대표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미국 스타트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있는 한국 회사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 말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스타트업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느끼게 해준다. “쉽지 않은 시장인 만큼 파부침주(破釜沈舟.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 정신으로 진출할 때 각오를 하고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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