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구전을 통해 전해져 온 이야기를 토대로 재구성한 동화다. 신데렐라는 당시 경영란의 허덕이던 월트디즈니를 구한 구세주였다. 제 주인을 찾은 유리구두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한 여인의 이야기는 ‘신데렐라 컴플렉스’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아직까지도 동화가 현실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신데렐라 속 차밍 왕자처럼 유리 구두의 주인을 찾아주듯 개인마다 천차만별인 발 모양에 따라 가장 알맞는 구두를 골라주는 큐레이션 서비스가 있다. 바로 슈가진(shugazine.com)이다. 동화속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겨 적용해 보면 슈가진은 신데렐라에 나오는 스마트폰 속 차밍 왕자다.
IT기술을 등에 엎은 현실 속 차밍 왕자는 누굴지 궁금했다. 인터뷰 일정을 잡기 위해 문자와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을 때까지도 이름 때문에 분명 차밍왕자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메일로 연락처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통화가 가능했다. 그 다음 상황은 예상대로 뻔하게 전개된다.
“아까 전화 못 받아서 콜백 드렸습니다. 홀짝의 이선용입니다”
“아… 여성분이셨군요…”
기자는 남자지만 여자 이름에 가깝다. 이 대표 역시 그랬다. 둘다 성별을 쉽사리 알아채기 어려운 중성적인 이름이다. 서로 지금까지 이 이름으로 살아오면서 비일비재하게 이런일을 겪어 온탓에 내성이 생길법도 하지만 번번히 일시적인 언어장애가 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며칠 후 드디어 멋쩍은 인사와 함께 슈가진의 이선용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나름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의 소유자다. 외국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은 한국에서 자랐고 중학교 시절은 미국에서 보냈다. 그러다 고등학교 생활은 다시 한국에서 마치고 수능을 보고 대학에 들어갔다. 이 대표의 말을 고스란히 옮겨 적자면 “한국과 미국의 학교 생활에 대한 책을 써도 될 정도”로 에피소드와 팁이 많다고 한다.
회사는 다시 외국계에 시작했다. 한국 IBM에서다. 그곳에서 컨설팅 관련 업무를 하며 3년간 근무하다 보니 어느덧 슬슬 좀이 쑤시더란다. 대학 진학전부터 사업이나 장사가 하고 싶었는데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아가며 사는 삶을 3년이나 했으니 오래 버텼다 싶다. 물론 창업 전 직장 생활이 무조건 그의 소중한 시간을 까먹었던 건 아니다. 첫 직장이 IT회사인 덕분에 IT지식은 덤으로 얻게 됐으니까.
첫 사업은 구두와는 약간 거리가 먼 취미 생활을 예약하는 서비스였다. 지금으로 치면 마일로(Mylo) 같은 서비스가 유사한 형태다. 본격적인 구두 사업으로 바꾸게 된 계기는 그때 만난 액셀러레이터의 권유로 미국에서 한달 동안 체류하며 컨설팅을 받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사업 컨설팅을 받고 아이템을 찾던 중 미국 현지에서 활발하게 운영중인 자포스(zappos.com) 같은 구두 관련 비즈니스에 눈을 띄게 된 것.
하지만 구두시장은 현재 레드오션이고 대부분의 구매가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분야다. 온라인에서 차지할 시장 규모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 대표 역시 신발을 쉽게 사기 어려운 발 모양을 갖고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 했다. 온라인 신발 구매가 어려운 사람은 그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일단 아이템을 정했지만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던 건 구두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던 친구를 만나고나서 부터다. 미국에 있을 때 유명한 엔젤 투자자와 엑셀러레이터, 신발 전문가까지 소개로 만나게 된 건 어찌보면 행운에 가깝다. 결국 사업의 성패는 시작도 끝도 사람이란 말과 귀결된다.
팀을 꾸리고 신발 관련 공부와 시장 벤치마킹을 병행하면서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사업을 위한 준비를 했다. 외국에 모든 인프라를 갖추고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없는데 왜 하필 한국 시장이었을까? 언제나 그렇듯 복잡한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단순하면서 명료하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었으니까요” 글로벌 하지 못한 사람에겐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게 작금의 상황이지만. 글로벌한 사람은 도리어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줄곧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신발 사업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지금의 큐레이션, 구독 형태의 플랫폼으로 확정될때까진 총 3번의 피보팅이 있었다. 유명 브랜드의 구두를 아나운서에게 대여하면서 홍보를 하고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직접 판매도 해봤다. “네이버 스토어팜을 열고 판매를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하는 장사 치곤 꽤 잘된 편이었어요. 월 500켤레씩 팔릴 정도였거든요.” 수익도 꽤 늘었겠지만 이 사업을 지난해 얻은 더 큰 수익은 돈이 아니라 3천명에 달하는 고객이었다.
현재 사업 모델로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건 전 직장 선배가 지난해 여름 CTO로 합류하면서부터다. 스타트업 창업 의지가 있는 데이터 분석과 코딩이 가능한 능력자라고.
One shoe will not fit every foot. (아무 발에나 맞는 신발은 없다.) 슈가진의 슬로건이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신발은 대부분 사이즈에 대한 고민이 많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할 때 경험한 것 역시 첫번째는 배송. 그 다음은 사이즈에 대한 문의였다고. “나는 나이키는 230을 신는 데 이건 어떤걸 주문하나요?” 각각 제조사마다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사이즈를 주문할 때 확신이 없기 때문. 그래서 아예 구두 사이즈는 몇, 운동화는 몇… 이런 형태로 데이터를 받아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당한 사이즈를 주문할 수 있도록 로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슈마스터’가 직접 신어보고 발볼이나 실제 사이즈에 대한 부분을 보다 정확하게 입력해 실제 신어보는 것과 최대한 가깝게 알고리즘을 설계했다. 결제 역시 신용카드 입력을 한번 해두면 추후에는 결제까지 모든 과정이 10초 안에 되도록 구매절차를 최적화했다. 원래 망설이는 동안 결제까지 어렵다면 구매를 포기하기 쉬운 법이다.
사이즈 큐레이션 말고도 ‘선택장애’가 있는 고객을 위한 스타일 큐레이션 서비스도 함께 제공한다. 이상형 월드컵처럼 스타일을 분류해 그 결과값에 따라 최적화된 스타일을 골라서 제안하는 방식이다. 스타일을 분류해서 추천하는 알고리즘에 반영돼 매주 5켤레씩 사용자 피드에 전송해 구매욕구를 자극한다.
맞춤형 셔츠 서비스처럼 맨발을 드러내고 사이즈를 재는 게 보다 효과적이지만 이건 약간의 심리적인 장벽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슈가진은 고객의 발을 스마트폰을 통해 A4용지 위에 놓고 좌우 측면, 위에서 한번 총 3번을 찍어 3D로 본을 뜨는 기술을 도입했다. 이렇게 측정할 경우 실제 발길이 뿐만 아니라 발볼, 발등, 발목 굵기, 뒷굽치가 튀어나온 정도, 토쉘 모양까지 측정하다. 데이터가 쌓이면 신발 브랜드에 데이터를 보내서 협업이 가능. 맞춤 구두도 실제 제품을 소싱할 필요 없이 수제화 브랜드와 매칭을 하거나 주문이 가능한 플랫폼으로의 진화 가능성을 꾀하고 있다. 이 데이터를 모아 제공하는 하는 회사가 된다면 성공에 보다 가까워 질 것이라 말한다.
“내 길은 처음부터 사업가였다”라는 결심과 함께 직장 그만 둘 때 주위에선 ‘편하게 살 수 있는 데 왜 이렇게 힘들 게 살아?’라고 묻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어차피 사업은 동기부여가 있어야만 꾸준히 이끌어 갈 수 있는 것 같다는 게 비록 짧았지만 다사다난 한 2년을 보낸 그의 소회였다.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했다. 이 대표가 받은 선물은 다름 아닌 팀이었다.
보통은 인터뷰 말미에는 회사의 비전이나 ‘멋진말(!)’ 한마디로 끝내기 마련인데 뜬금없이 자신과 함께한 팀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대표를 인터뷰 하면서 처음 만났다. “3D 스캐닝 기술이 드디어 모바일과 만나 탄력을 받겠구나”라며 마음속으로 탄복하며 뿌듯할 걸 같다고 물으니 “여태까지 이룬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건 팀”이란다. 하바드 비즈니스 스쿨에도 언급되는 네 가지 형태의 캐릭터(파이오니어, 가디언,드라이버, 인티그레이터)가 팀에 모두 속해 있어 가능했다는 게 스스로에게 내린 나름 객관적인 평가였다.
다시 동화 속 신데렐라로 돌아갈 시간이다.(공교롭게도 실제 이 원고를 마감한 시간도 자정 무렵이었다.) 신데렐라에서 주인공의 딱한 사정을 불쌍히 여겨 온갖 마술로 그녀를 돕던 대모는 이런 주문을 외웠다 ‘비비디 바비디 부(Bibbidi Bobbidi Boo)’ 소원대로 이루어지란 뜻이다. 멋진 마무리 또는 자기 자랑이 아닌 ‘팀 잘 만나 고맙다’는 이렇게나 맘씨 고운 대표에게 에디터 역시 딱히 이말 밖엔 해줄 말이 없었다.
‘비비디 바비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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