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액셀러레이터법’ 이 국회를 통과하고 올초부터 액셀러레이터 등록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따라 중소벤처기업부가 제시한 등록 조건을 충족한 액셀러레이터는 창업기획자라는 명칭을 갖고 활동하며 펀드 구성 자격 및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 액셀러레이터는 벤처캐피탈과 동일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기관이 받을 수 있는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액셀러레이터가 투자 수익에 대한 세금을 지불해도 배당 이익에 대한 소득세를 추가로 냈어야 했던 것. 또 액셀러레이터는 펀드 구성을 할 수 없어 투자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액셀러레이터 법안 통과는 초기 스타트업이 성장해 투자회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수익화가 어려웠던 액셀러레이터가 적극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를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액셀러레이터 연합체인 ALF(Accelerator Leaders Forums) 에 소속된 민간 액셀러레이터는 액셀러레이터법 발효 직후 암묵적으로 등록 보이콧을 진행했다. 그 누구보다 액셀러레이터의 법적지위 확보에 노력했던 이들이 공식 액셀러레이터로 등록되길 꺼린 이유는 뭘까.
시장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 일방적인 운영 방침이 문제가 됐다. 가장 큰 현안은 펀드 참여 구성원의 제한. 등록을 마친 액셀러레이터는 개인투자조합을 만들 수 있지만 이 투자조합에 기업 LP는 참여할 수 없다. 조합에 개인 LP만 참여할 수 있도록 제한하면서 큰 규모의 펀드는 구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스타트업 투자 확대를 목적으로 시행되는 제도임에도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펀드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모순된 처사라는 의견이 컸다.
ALF 변광준 대표는 “개인 LP로만 구성된 작은 펀드만으로는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비용은커녕 법안에서 인정한 상근인력 2명 인건비도 부족한 것이 사실” 이라며 “국내 액셀러레이터가 성장하려면 기업 LP만으로 구성할 수 있는 투자조합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 대표는 “지금도 많은 액셀러레이터가 운영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 사업 및 행사 용역에 참여하고 있다” 고 덧붙였다.
ALF는 관련 법안이 통과된 후 지금까지 중소벤처기업부에 지속적으로 기업 LP만으로 구성할 수 있는 펀드를 허용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이라 밝혔을 뿐 확실한 답변은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팁스프로그램 운영사로 선정되려면 무조건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해야 하는 조건도 유연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팁스프로그램은 민간 기관이 유망스타트업에 1억 원을 지원하면 정부가 R&D 자금으로 최대 5억 원까지 지원해주는 지원프로그램으로 자금 지원과 보육을 동시에 제공하는 대표적인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으로 꼽힌다.
2015년부터 팁스 프로그램 운영사로 활동해온 한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법인끼리 펀드를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팁스 운영사를 등록된 액셀러레이터로 한정하는 조항 때문에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하면 제약이 크고 액셀러레이터로 등록하지 않으면 운영사 자격이 부여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팁스 운영사 중 한 곳이 보조금 비리와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모니터링 차원에서 등록제를 활용하겠다는 취지겠지만 액셀러레이터 입장에서는 등록하지 않으면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없고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한 건 규제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액셀러레이터 내부 상근 인력 기준의 획일성도 문제다. 액셀러레이터 등록요건에 제시된 상근 운영 인력 등록 기준이 실제 현장에서 몇 년간 민간 액셀러레이터로 활동한 인력의 경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액셀러레이로 등록하려면 벤처캐피탈이나 창업지원기관에서 3년 이상 투자와 창업기획업무를 진행한 인력 또는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인력이 2명 이상 포함돼야 한다.
전문가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 투자와 스타트업 보육에 경력과 자격을 보유한 인력이 투입돼야 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획일적인 지원 자격을 부여하면서 지금까지 일해온 인력은 자격 미달로 제외되고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지 않지만 자격요건에 부합하는 외부 인력을 임시방편으로 끼워 넣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창업지원기관이 대부분 1~2년 단위로 계약직을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됐다.
한 벤처캐피탈 관계자는 “투자 경력이 몇년 이상된다고 투자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정직하게 활동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일단 자격 조건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맞추라는 건 유연하지 못한 처사”라고 말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지만 7월 말 현재 액셀러레이터로 등록을 마친 액셀러레이터는 29개로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신청 후 결과를 기다리는 액셀러레이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액셀러레이터법이 실제 액셀러레이터의 운영방식과는 동떨어지지만 등록을 하지 않으면 받게 될 불이익에 때문에 일단 하고 보자는 식으로 등록이 진행되고 있다. 초기 액셀러레이터일수록 등록제를 통해 받을 수 있는 혜택에 대한 의존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일각에선 아예 액셀러레이터 등록제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액셀러레이터 법안의 핵심은 펀드 구성을 통한 투자 재원 확보와 세제 혜택인데 이 부분이 정확히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굳이 등록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액셀러레이터들은 어떤 혜택도 보장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초기 스타트업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해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 관리 아래서 제약만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ALF는 최근 액셀러레이터 등록 유무와는 관계없이 액셀러레이터 권리 보장을 위해 연내 범액셀러레이터 협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런데 얼마후 중소벤처기업부는 액셀러레이터 등록을 마친 액셀러레이터만을 대상으로 협회를 따로 만들었다. 기존 협회를 인정하지않고 등록하지 않은 액셀러레이터는 배척하는 구조를 만들어버린 셈이다. 이처럼 정부의 규제안으로 들어와야만 혜택을 주는 운영 방식이 정말 스타트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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