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처음 만난 샤오미 킥보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스로틀을 감는대로 움직이는데다 생각보다 빠른 이동 속도에 잠시 흔들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 경험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질적인 전원 문제로 일주일 만에 고철이 되었고 지금은 사무실에 애물단지처럼 구석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 다음 전기로 바퀴를 굴리는 것을 떠올려 보자면 단연 테슬라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지만 아직은 가격이라는 아주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있다. 조만간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니 한낯 희망까지 져버리진 말아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었다.
대표적인 아날로그 기기가 디지털로 환골탈태한 케이스를 또 꼽아 보자면 단연 라이카다. 평생 필름만을 고집하다 코닥처럼 역사속으로 사라질뻔한 독일의 카메라 회사는 디지털이라는 옷으로 멋지게 갈아 입었다. 변치 않는 건 두가지다. 여전히 감성을 폴폴 풍기는 포근한 느낌의 사진과 비싼 가격이다.
물론 이런 디지털화 바람에 역행하는 곳도 있다. 바퀴 달린 회사에서 찾아보자면 독일의 포르쉐다. 물론 전기차 바로 전 단계인 하이브리드 차량까지 개발했지만 100% 전기로 굴리는 자율 주행차는 만들지 않겠다고 대표가 올해 공식석상에서 못을 박았다. 그들의 고객은 아직도 ‘엔진음과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본인이 직접 운전하기를 원해서’란다.
고집스러운 회사는 프랑스를 지나 도버 해협을 건너 영국에도 있었다. 바로 접이식 자전거의 대명사인 브롬톤이다. 그런데 브롬톤 역시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진 못한듯 하다. 지난달 29일 전기 모터 구동 방식의 브롬톤을 내놨다. 바로 브론톤 일렉트릭이다.
브롬톤 일렉트릭은 4가지 주행 모드를 지원한다. 완전히 모터를 끄고 오롯이 자신의 힘만으로 브롬톤을 움직이는 모드부터 가파른 언덕도 힘 안 들이고 상큼하게 오를 수 있는 모드까지다. 바이크처럼 스로틀을 비틀어 속도를 제어하는 PAS 방식은 아니다. 브롬톤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250W 출력의 허브 모터는 앞바퀴에 꼭꼭 숨겨뒀다. 무게 빼고는 일반 브롬톤과 폴딩하는 방식이나 외형에서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배터리까지 앞쪽 핸들바에 달아뒀으니 영락없이 옵션으로 주문한 가방처럼 느껴진다.
전기 자전거라 자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책감을 갖을 필요는 없다. 똑똑한 본체는 부드럽게 도심을 누비벼 달리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강하고 빠르게 페달을 굴렸는지 꼼꼼히 체크하고 있으니까. 본체에 내장된 센서는 라이더가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순식간에 알아채고 모터에 많은 전기를 실어 보내 부담을 줄여준다. 반대로 허벅지에 자신이 있다면 과감히 전기 도움을 끄면 된다. 대신 이런 날씨에 페달을 돌렸다간 금새 온몸에서 땀이 날 수 밖에 없다.
색상 선택은 아직까지 기존 브롬톤 모델처럼 다양하지 못하다. 유광 검정과 흰색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구동계 역시 2단, 6단 중에서 고를 수 있다. 보통 브롬톤의 무게가 재질에 따라 10키로 초반이므로 모터 구동부와 배터리를 탑재하면 2단 기어 모델은 16.6kg, 6단 기어 모델은 17.3kg로 체중이 증가한다. 보급형 MTB 무게다.
자전거가 순식간에 과체중(?)이 됐다 걱정하지 말자. 어차피 모터 구동력 덕분에 훨씬 당신의 페달링은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질 게 분명하니까. 무게가 부담이 되고 운동을 목적으로 브롬톤을 이용할 때는 배터리를 연결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방전된 배터리를 본체에 달고 한껏 무거운 상태로 라이딩을 하면 운동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배터리와 가방을 덜어내면 2.9kg을 즉시 감량이 가능하다.
최대 적재 하중은 107kg다. 100kg 초반의 체중까지는 탈 수 있다는 얘기다. 130파운드를 추가하면 1.5리터 용량의 배터리 가방을 20리터 짜리 가방으로 바꿔 주는 데 노트북 같은 짐을 함께 놓고 주행할 수 있다. 본체 가격은 옵션에 따라 2,595~2,755파운드다. 참고로 일반 브롬톤은 900파운드부터 시작한다.
옵션은 또 있다. 원래 브롬톤은 옵션으로 시작해 옵션질로 끝나는 자전거다. 2A 표준 충전기는 완충까지 4~5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시간은 돈이다. 성격 급한 사용자는 115파운드짜리 4A 급속 충전기를 구입하면 된다. 완충까지 2시간반이면 끝난다.
배터리는 36볼트, 8.55Ah로 주행 가능 거리는 40~80km 내외다. 이렇게 주행거리의 편차가 큰건 언덕길이 많거나 라이더의 체중이 높을 경우 배터리 소모가 심해 그만큼 멀리 못간다는 뜻이다. 자칫 호기어린 기세로 사이클을 이겨 보겠다며 전기 모드에서 아무리 페달을 밟아 봤자 25km/h에 속도 제한이 걸려 있음을 명심하자. 모터 같은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브롬톤은 빠르게 달리기 위한 자전거가 아니다. 지난 5년간의 개발 기간동안 F1팀인 윌리엄스와 협업을 하며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대체 300km/h 이상으로 달리는 포뮬러 머신에서 과연 어떤 기술을 가져다 썼는지는 사뭇 궁금하다. 아마도 최대한 가볍게 만들고 전기 모터의 구동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일 것이다. F1 역시 KERS라고 불리는 에너지 회생 시스템을 통해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출력을 순식간에 높이는 기술을 쓰고 있다.
요즘 전기 자전거와 달리 별도의 디지털 모니터가 없는데 이 부분은 스마트폰의 앱으로 해결했다. 주로 램프 같은 전조등을 제어하는 용도로 쓰인다. 5V 1.5A USB 포트가 있어 충전도 가능하다. 이 녀석의 숨은 재주는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불한당’ 모드로 달릴 수 있는 400만원짜리 휴대용 충전지다.
매뉴얼은 한 문장의 슬로건으로 대신했다. ’CHARGE UNFOLD GO’ 충전하고 펴서 달리면 된다. 좀더 복잡한 전기 구동 방식의 탈 것을 원한다면 테슬라를 주문하면 된다. 2018년부터 판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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