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뉴스 중 대형 조선업체의 분식회계 사건이 있었다. 재무제표 작성 책임이 있는 대표이사 등 회사 임직원이 구속되었을 뿐 아니라, 분식회계를 눈감아줬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도 구속 되는 등 회계 업계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분식회계에서 ‘분식’은 ‘가루분(粉)’에 ‘꾸밀식(飾)’ 자를 쓴다. 얼굴의 약점을 화장으로 감추듯 기업 경영성과나 재무 상태를 사실과 다르게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것을 분식회계라고 한다.
분식회계는 반드시 회사를 좋게 포장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필자가 회계감사 실무에서 경험한 어떤 기업은 이익이 너무 많이 나는 것을 주체하지 못해 세금을 적게 내고자 이익이 적게 나는 것으로 분식회계를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회계감사 중 미지급금 명세서를 징구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래처가 있어서 추적해 보니 각종 비용을 과대 계상하고 상대계정으로 미지급금을 넣어두었던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조선업의 사례를 보자. 조선업은 고가의 선박을 미리 주문 받아 생산하는 대표적인 수주 산업이다. 수주 후 배를 건조(건설)해 고객에게 제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선박 1채 값이 수천억 이상인 경우도 많다. 회계상 이런 업종은 건설 진행률에 따라 수익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1천억에 수주한 배 1척을 건설하는데 올해 공정이 30% 진행되었다면 올 해 수익을 300억 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진행률을 산출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진행률 산출 과정에서 관측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수천억 짜리 배에서 1%의 진행률만 변해도 수십억씩 손익이 변할 수 있다, 진행률 조작을 통해 쉽게 분식회계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회계감사를 하는 공인회계사는 공학전문가가 아니다. 알고도 눈감아줬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회계감사를 통해 적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회사의 재무제표를 작성할 책임은 기업 경영자에게 있고 회계감사인은 회계감사기준에서 제시하고 있는 감사절차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면책 받도록 규정되어 있다.
진행률을 산정하는 것 외에도 재무제표에는 추정이나 일정한 가정 하에 도출되는 숫자가 많이 있다. 인간은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없으므로 이런 숫자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아래에서 설명하는 계정은 여러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분식회계 리스크가 높은 계정의 예다. 이 외에도 수많은 방법으로 분식회계를 할 수 있고 이익을 조작할 수 있지만 대표적인 몇 가지만 설명하겠다. 재무제표를 기초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회계감사를 받지 않은 재무제표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어떤 경우에는 의도를 가지고 아래 계정에 곱게 화장을 해서 당신을 속일 지도 모른다.
◇ 개발비=스타트업에서 자주 이슈가 되는 것이 ‘개발비’ 라는 자산계정이다. 프로그래밍에 전혀 문외한이던 누군가가 창업을 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앱을 만들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처음에는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배워야 될 것이다. 이후 시장조사와 여러 리서치 과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처음 자신의 아이디어가 수정 보완될 수 있다. 이후 개발자를 영입하여 여러 기능을 동시에 개발하다가 일부 기능은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폐기할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인건비, 회의비, 업무추진비, 접대비 등 계속 자금이 지출된다. 이런 지출은 통상 비용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회계기준상 아래 6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하는 연구개발비라면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자산으로 회계처리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여섯 가지 항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항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사용하거나 판매하기 위해 그 자산을 완성할 수 있는 기술적 실현가능성
- 완성해 사용하거나 판매하려는 기업의 의도
- 사용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 해당 자산이 현금흐름(미래경제적효익)을 창출하는 방법
- 개발을 완료하고 그것을 판매하거나 사용하는 데 필요한 기술적, 재정적 자원 등의 입수가능성
- 개발과정에서 발생한 무형자산 관련 지출을 신뢰성 있게 측정할 수 있는 기업의 능력
지출이 발생했을 때 비용처리하지 않고 ‘개발비’라는 자산으로 처리하면 그만큼 손익은 좋아진다. 스타트업이 투자심사나 대출심사를 준비 중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직 돈을 못 벌고 있는데 죄다 비용처리하면 재무 상태와 경영성과가 엉망이 되니 발생한 지출을 자산으로 잡아놓아 재무제표를 건전하게 보이도록 위장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투자자나 은행의 여신담당자들도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재무상태표에 개발비가 잡혀 있다면 자산성이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본다.
◇ 충당금=추정을 기반으로 회계처리하는 대표적인 계정이 바로 충당금 계정이다. 충당금 규모를 얼마로 추정할 것인지에 따라 손익이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손충당금이다. 재무상태표의 자산 중에는 매출채권이 있는데, 이는 외상으로 매출하여 장래에 현금을 수취할 권리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매출채권 중 특히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회수하고 있지 못하는 채권의 경우, 향후에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회계기준에서는 채권의 회수가능금액을 추정하여 회수가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금액을 대손충당금이라는 계정을 사용하여 매출채권의 차감 항목으로 표시하고, 손익계산서상 비용을 인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래를 추정하여 비용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매출채권이 상당히 많더라도, 이를 적게 표시할수록 손익 면에서 유리하므로 대손충당금을 과소계상하고자 하는 유인이 생긴다. 재무제표 분석시 주의해야 할 대목이다.
◇ 재고자산=상품이나 제품 등 재고자산이 존재하는 기업의 경우, 기말 재고자산 금액에 손을 대서 간단히 손익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품 도매업자가 올 해 창업을 하여 원가 1원짜리 상품을 총 100개 매입했다고 가정하자. 상품의 매입액은 매입증빙으로 확인이 된다. 그런데 상품의 판매는 연중 상시로 발생하기 때문에, 매번 몇 개의 재고가 남아있고 몇 개가 팔렸는지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연말에 창고에 가서 재고가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확인할 수는 있을 것이다. 확인해보니 20개가 남아있었다면, 80개가 팔렸다고 볼 수 있다. 개당 1원이므로, 80원이 매출에 대응되는 원가(비용)다.
이와 같이 기말재고자산 수량과 금액이 결정되면, 판매된 상품의 원가는 종속적으로 자동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말 재고자산을 부풀리면, 매출원가는 작아지는 효과가 있다. 매출원가(비용)가 작아지니 이익은 커지게 된다.
실무적으로 기업은 단일 상품만 취급하는 경우는 드물고 여러 종류의 상품을 판매한다. 때로는 회사 창고가 아닌 장소에 재고가 존재할 수도 있다. 혹은 연 중 여러 번에 걸쳐 재고를 매입할 것인데, 각각 단가도 다를 수 있다. 기말재고 자산 금액 금액을 확정하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기말재고금액을 조작해도 적발하기가 쉽지는 않다. 회계감사 절차 중 기말재고 자산에 대한 실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샘플링에 의존하고 있고 전수조사를 하지는 않는다.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말재고 금액이 적절한지 확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대체적인 방법 중 하나는 매출액과 매출원가의 상대적 비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작년에 매출이 200원이고 매출원가가 80원이었다면, 올해 매출이 400원일 때 매출원가는 대략 160원 정도 되어야 일반적이다. 매출원가율이 줄었다면, 원가혁신과 같은 내부적 요인이나 원자재 가격 하락 등 외부적 요인이 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특별한 이슈 없이 원가율이 많이 변했다면, 이익을 조작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다.
◇ 대여금=재무제표에 대여금이 있다면, 누구에게 왜 대여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이 있다면 이를 연구개발 활동 등에 투자하거나, 각종 금융상품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하거나, 임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주주에게 배당 등으로 분배한다. 기업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자주 발생하는 상황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왜 대여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회사가 별도 사업을 추진 중인데 자금이 부족하여 모회사가 빌려준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자회사에 빌려준 자금이 회수 가능한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빌려는 주었으나 영원히 못 받을 수도 있다.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개인에게 빌려준 것이라면 특히 회수 가능성이 낮을 수 있다. 언제부터 존재한 대여금인지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몇 년 넘은 대여금이라면 특히 회수하기 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재무상태표에 자산으로 표시는 되어 있으나, 실재로 재산가치는 거의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 보증=재무상태표에 기업이 부담하고 있는 의무는 부채로 표시된다. 그런데 만약 회사가 타인을 위해 보증해 준 사실이 있다면, 보증으로 인해 돈을 대신 갚아 주어야 하는 이벤트는 미래에 발생할 수도 있고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회계기준상 이와 같이 현재 시점에서 확정되지 않은 의무는 재무상태표에 부채로 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이 타인을 위해 보증해 주었다는 사실은 투자자나 은행과 같은 채권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다. 회계기준에서는 보증 내역을 재무제표 본문에 이어 ‘주석’으로 서술하여 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증 사실을 주석에 누락하는 경우도 대표적인 분식회계 사례 중 하나다.
이 외에도 수많은 계정을 이용해 분식회계를 할 수 있다. 의도가 포함된 분식회계가 아니더라도, 미래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일 수도 있다. 재무제표 숫자 그 자체만을 믿기 보다는 행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재무제표 이용자들은 기업과 관련된 다른 비재무적인 정보를 반드시 의사결정에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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