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회사가 IT 관련 기기를 생산하게 될 경우 하드웨어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상품 디자인의 경우 그들의 주업인 만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생산은 또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만큼 완성품이 나올때까지 다양한 변수가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데스밸리가 제품 개발 과정이 아닌 ‘생산’에 있다고 하는 건 그만큼 생산과정이 힘들고 고되다는 방증이다.
아이디투(ID+OO)는 제품 디자인을 하던 이노디자인 출신 디자이너끼리 함께 창업한 회사다. 회사 이름 역시 인더스트리 디자인과 양의 무한대를 연상케하는 단어 조합을 통해 ‘본질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갈망’을 담아 만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험란한 하드웨어 스타트업 창업을 꿈꿨던건 아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라는 프로그램을 공모전인줄 알고 신청했다가 우연찮게 창업을 하게 된 것.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다 처음 참가한 공모전(?)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고 아이디투의 김철민 대표는 창업 당시를 회상했다.
물론 창업 초기부터 제품 생산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진 못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다. 시작은 그동안 해왔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디자인 외부 용역을 주업으로 하면서 꾸준히 제품 개발 작업을 병행했다.
김 대표가 생뚱맞게 멀티탭을 만들게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반드시 필요해서 사고 싶었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어서다. 모던한 가구나 환경 비해 멀티탭은 여전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예전 그대로의 모양이었다.
“제 결혼이 결정적이었죠. 가구를 비롯해 혼수를 장만하고 연결을 하려는 데 기존 멀티탭을 바깥으로 빼 놓고 쓰기가 너무 싫은 거예요” 명색이 디자이너인데 엉망진창인 형태의 제품을 쓰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디자이너 부심’이고 아는 사람이 보면 ‘동병상련’이다.
물론 이런 의지를 갖고 있다면 훨씬 멋지고 값나가는 제품을 디자인을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적어도 창업이라는 목표를 둔 상황에서는 수익성을 간과하기 어려우니까. 김 대표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생각했다. TV나 의자 같은 제품을 디자인 하면 특출나게 나올 게 없다. 당장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만들만한 뻔한 아이템이니까. 아무도 건들지 않는 블루오션을 찾는 건 직업적 특성이다. 기능 보다는 디자인이 눈에 띄지 않아서 마음에 들지 않는 디자이너의 삶을 살 경우가 그렇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아니라고 하니 제품 생산은 명백한 외도다. 물론 이유는 있다. “디자인은 남의 제품을 대신해주는 것이다 보니 항상 내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를 반영했을 뿐”이라고 김대표는 말한다.
디자인 용역일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도 문제. 한마디로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다른 생존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10여년전 이노디자인에 근무할 때와는 환경이 완전히 달려졌다는데 있다. 모든 제품이 스마트폰으로 압축되고 있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가방에 mp3, pmp, 게임기 등 다양한 디바이스가 존재해 제품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뭔가 새로운 기능이 있을까 내심 기대 했지만 내부적인 기능적 특징 보다는 형태적인 기능적 특징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다. 본질에 가까워야 한다는 회사 이념을 제품에 녹여냈다. 일단 외형이 그렇다. 삼각형이 멀티탭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기존 사각형 멀티탭은 형태 때문에 콘센트를 끼워도 선 정리가 깔끔하게 되지 않고 먼지가 쌓인다.
“멀티탭은 삼각형이 아닐까?” 아이디투는 이 질문을 대중에게 던졌다. 어차피 멀티탭은 어느 공간에서도 있는듯 없는듯 해야 하는 조연이다. 결코 공간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래서 제품에 회사 로고도 잘 안 보이게 처리했다. 하긴 멀티탭에서 브랜드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록 비중 없는 조연이지만 명품 조연 오달수처럼 설치 공간속에서 ‘신스틸러’가 되서는 곤란하다. 단순하게 만들어야 놓인 공간에서 튀지않고 다른 제품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그렇게 아이디투의 첫 제품인 ‘ID바’ 멀티탭이 탄생했다.
하지만 본분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이디투는 멀티탭 제조사가 아니라 디자인 회사다. 다만 기술 발전 속도에 비해 더디게 발전하는 투박한 디자인의 제품을 발굴해 업그레이드 하는 중이다. 마치 농업 분야에서 품종 개량을 하듯이 말이다.
막상 제품을 만들고 보니 홍보와 마케팅도 골치거리였다. 이 분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상황에서 유통채널에서 연락이 왔지만 자체적으로 팔고 싶다는 고집은 있었기에 고사했다. 온라인에 올려서 가격이 들쑥날쑥한게 싫었다고 한다. 지금도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어디서나 가격이 동일한 이유는 자체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직장에서 경험한 부분도 크게 작용했다. 휴대폰 케이스를 디자인했는데 개발 후 2~3개월이면 판매가 끝날 정도로 수명이 짧았고 그나마 대형 유통사와 손을 잡기 전에는 판로 역시 막막하다는 점이다.
김 대표가 고민끝에 내린 결정은 ‘천천히 가자’였다. 아직은 디자인 용역으로 일정부분 수익을 내고 있으니 서두르지 말자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차근차근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때부터 시작한 일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공짜 마케팅이었다.
온통 디자인에만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가격 같은 민감한 부분 역시 둔감했다. 생산 단가를 고려하지 않고 만든 덕분에 제품 가격은 일반 멀티탭의 2~3배 정도다. 소비자 가격으로 2만8600원이었다. 물론 우려와는 달리 생각 외로 잘 팔려서 다음 버전을 준비 중인 상태다.
한가지 신기한 점은 구매 패턴이다. 한개가 아니라 두개 이상씩 복수로 구입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점이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 새로 입주할 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가 여러개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세 가지 컬러로 출시한 이유도 인테리어 색상이 거의 비슷해서 잘 어울릴만한 색상으로 구성했는데 거의 화이트, 블랙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상품 피드백은 구매 후기와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통해서 얻는다. 책상에 올려놓고 쓰는 줄 알았는 데 안 보이는 곳에도 그 비싼(?) 멀티탭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계절을 타지 않는 아이템이란게 신의 한수라 생각했다. 멀티탭은 일년내내 반드시 써야하는 제품이니까. 김 대표가 다른일을 병행하면서 느긋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발견한 아이템이다. 디자이너임에도 하드웨어적으로 상당한 인사이트를 가졌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본인인 손도 느린 편이고 그저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둔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그런 우직함이 있었기에 이런 멀티탭이 나올 수 있었던건 아닐까. 차기 제품인 USB 멀티탭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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