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꼴 42(Ecole 42)는 강사도 교과서도 학비도 없이 주체적이고 협업 능력이 뛰어난 IT 인재를 양성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프랑스 교육 기관이다. 이 학교의 유일한 제약이라면 바로 만 18세에서 30세 사이 청년만 지원할 수 있다는 것.
매년 1,000명 정도를 선발하는 에꼴 42의 문을 두드리는 청년 수는 무려 7만 명에 달한다. 에꼴 42는 이들 중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까. 이 학교가 입학생을 선발하는 4주간 과정 라 삐씬(La piscine)을 보면 알 수 있다.
라 삐씬은 한국어로 변역하면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에꼴 42를 통해 유명해진 이 단어는 사실 프랑스 공학 그랑제꼴 에피타(EPITA. École Pour l’Informatique et les Techniques Avancées, Graduate School of Computer Science and Advanced Technologies)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보생 선발 과정이라기보다는 학사 과정 초기 학생의 유대감과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기간이었다고 한다. 에꼴 42에선 이 기간 중 지원자에게 집중적이고 강도 높은 과제를 계속 부여하고 미래 IT 인재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본다.
라 삐씬이라는 선발 과정에 참여하려면 지원자는 먼저 홈페이지(http://candidature.42.fr)에 접속해 몇 가지 논리력과 기억력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매년 온라인 지원자 7만 명 중 2만 명이 이 테스트를 완수하며 이 중 가장 뛰어난 3,000명이 선발된다. 직접 파리 에꼴 42에 방문해 체크인까지 마치고 나면 드디어 고대하던 라 삐씬 과정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4주 동안 진행되는 라 삐씬은 7∼9월에 걸쳐 매년 3회씩 진행된다. 코딩을 전혀 해본 적이 없어도 지원할 수 있으며 본 과정과 마찬가지로 선발 과정도 전액 무료다.
라 삐씬 과정에 입문한 청년은 아이맥으로 가득한 방에 들어선다. 이곳에서 매일 14시간씩 강도 높은 코딩을 하며 처음 만난 동료와 컴퓨터 앞에서 먹고 자기를 반복한다. 이 시기 에꼴 42는 캠핑장 방불케 해서 회의실은 기숙사가 되고 샤워실은 북적거리며 계단 난간은 널어놓은 수건으로 어지럽다고 한다. 매일 아침 문항 여러 개가 있는 과제지가 주어지며 해결한 뒤 제출하기를 반복한다.
라 삐씬의 첫 날부터 3주까지는 매일 데이 0∼13(Day 0∼13)까지 미션이 거듭된다. 후보생은 배정받은 아이맥에 주어진 로그인과 암호로 접속해 과제를 풀기 위한 전쟁에 돌입한다. 정해진 답이 없는 이곳의 미션을 해결하려면 일명 P2P(Peer-to-peer) 방식을 동원해 스스로 인터넷에서 지식을 찾고 동료와 머리를 맞대야만 한다고 한다. 에꼴 42는 이런 사고방식이야말로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성공 열쇠라고 강조한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과제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고 한다. 2016년 라 삐씬 과정을 마친 한 학생에 따르면 데이 5에 24개 문제가 있었고 그 중 17개를 풀어야 데이 6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데이 9에는 24시간 동안 1시간에 1문제씩 해결하는 걸 계속했어야 했다. 데이 13까지 끝낸 뒤 4주째에는 BSQ라는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후보생은 둘씩 짝을 지어 보다 긴 과제를 수행하게 된다. 서로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협업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한다.
라 삐씬에선 과제와 마찬가지로 평가 역시 P2P 방식으로 이뤄진다. 후보생은 평가자 역할도 동시에 맡게 되는데 데이를 마칠 때마다 다른 두 후보생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일종의 포인트 제도가 있어서 평가를 요청할 때마다 1포인트씩 소진되며 반대로 평가를 한 번 해줄 때마다 1포인트씩 얻게 된다. 다시 말해 과정을 계속하려면 동료 평가를 계속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두 후보생 평가를 받은 다음에는 에꼴 42 서버를 통해 코드를 검사받는데 작은 오류 하나에도 바로 0점으로 처리된다고 한다.
후기에 따르면 후보생들은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이 과정을 달리다가 수면 부족을 겪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인 만큼 최종 합격 여부를 떠나 후보생 모두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걸 배웠고 온전한 자기 경험으로 만족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에꼴 42 공동 설립자인 니꼴라 사디학(Nicolas Sadirac)은 끈기라는 덕목을 가장 중요한 후보생 선발 기준 중 하나로 꼽는다고 한다. 또 엔지니어는 언제나 불확실한 환경에서 성장해야 하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 실패하고 다시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인재를 찾는다고도 한다.
또 협업 능력이야말로 오늘날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며 바로 이것이 사회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쯤 에꼴 42에선 3회 라 빠씬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가장 끈기 있고 협동심 강한 최종 선발자를 가려 11월 개강만을 기다리고 있을 터. 고된 4주 시험을 열정을 다해 이겨낸 만큼 3년 본 과정도 열심히 해서 이 세상 혁신과 미래를 주도할 주역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 에꼴 42에 대해 조사하면서 필자 역시 그들의 열정과 끈기에 전염되어 다시한번 포부를 굳히게 됐다. 꿈많은 청년과 창업자가 이런 마음가짐을 나누고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 글 통역번역대학원 출신 전문 번역사로 이뤄진 번역 스타트업 바벨탑이 조사, 번역한 것이다. 번역본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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