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영화 마션(Martian)을 기억하는가. 앤디 위어의 소설 ‘The Martian’을 원작으로 각색해 만든 SF영화다. 영화속에서 고프로(GoPro) 카메라는 시종일관 소품으로 등장한다. 우주복에 달려 있고 화성 기지 안에도 곳곳에 설치되어 CCTV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영화 중반 이후에는 스스로 셀프캠 영상을 담는 용도로도 고프로를 활용했다. 감독 말로는 처음에는 고프로를 영화 소품으로만 쓰다가 영화 촬영용도로 사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두가 길었다. 오늘은 소니가 영상 촬영, 그 중에서도 특수촬영 분야에 특화된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다. 소니의 하이엔드 컴팩트 카메라 RX 시리즈로 모델명은 RX0. 일단 크기 하나만으로 세계 최소형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초고 듀랄루민(ESD) 소재로 만든 몸체는의 크기는 가로*세로*높이 각각 59×40.5×29.8mm. 배터리를 포함한 무게는 110g이다. 플래그십 카메라처럼 방진/방적에 하우징 없이 자체적으로 10m 방수가 가능하다. 어지간한 낙하나 충격에도 끄떡없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수치적으로만 따져 본다면 크기와 무게는 고프로 히어로6보다 작고 가볍다. 자이스 테사 T× 24mm F4 광각 렌즈에 지원하는 해상도 역시 1,530만 화소로 경쟁사의 1,200만 화소를 가볍게 누른다. 가격도 마찬가지다. 99만9천원의 가격표를 달았다. 액션캠이라 부르기엔 몸값부터 뭔가 석연치 않다.
크기가 작아질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소니가 그동안 고수하던 길쭉한 디자인의 액션캠 외형을 쓰지 않은 게 주효했다. 이번 디자인은 사실 고프로에 가깝다. 일종의 현실과의 타협이다. 멀티캠 환경에서 소니의 밀리언 셀러인 스태디캠을 축소한듯한 형태의 길쭉한 외형은 여러대를 병렬로 연결할 경우 설치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여러가지 제약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RX0를 하이엔드 카메라 라인업으로 편입한 또 한가지 이유는 국내 컴팩트 카메라 시장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컴팩트 카메라, 일명 똑딱이 시장은 지난 2012년부터 -91% 급격한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반면에 하이엔드 카메라 시장은 89%나 성장했다. 이제는 일반적인 경우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사진을 제대로 찍고자 하는 사용자만 제대로된 카메라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고성능 똑딱이로 정평이 난 소니의 RX100 시리즈의 경우 소니 하이엔드 카메라 라인업 중에서 출시 첫해는 9%, 지난해는 67%까지 차지할 정도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소니 카메라 매출에서 88%를 하이엔드 카메라가 견인 중이라고 하니 이제 카메라 산업은 중간이 없는 고성능 시장으로 완벽히 재편된 셈이다.
미묘한 변화는 소니의 톤앤매너에서도 읽을 수 있다. RX0는 누가봐도 하이엔드급 액션캠이지만 소니는 그들이 만들어낸 ‘액션캠’이란 명칭을 스스로 지웠다. 액션캠이란 단어는 자칫 제품을 아웃도어나 익스트림 스포츠 용도로 굳히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고프로가 그렇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액션캠의 대명사가 됐지만 고프로 역시 이번 히어로 6로 접어들고부터는 익스트림 시장에서 좀더 영역을 확장해 ‘일상’으로의 접근을 꾀하는 중이다. 소수의 마니아로 구성된 익스트림 영역 만으론 그 시장이 턱없이 좁은 게 그 이유다.
물론 고프로 역시 4K 영상 촬영을 지원하면서부터는 영화판에 적극적으로 뛰어 들었다. 앞서 이야기한 마션이 그렇다. 고프로 입장에서 마션이라는 영화는 PPL 목적으로는 어느 정도 성공작이라 볼 수 있겠다.
소니는 약간 입장이 다르다. 아니 훨씬 유리한 고지를 이미 선점한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옳다. 소니픽처스는 지난 1989년 당시 컬럼비아 픽처스를 소유중인 코카콜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해 영화 제작/배급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눈썰미가 좋다면 한번쯤 봤겠지만 이후 소니에서 제작한 모든 영화의 속 TV는 거의 대부분 브라이아(소니의 TV 브랜드명)였고, 노트북은 VAIO(지금은 소니가 노트북 사업을 철수해 추억의 브랜드가 됐다)였다.
영화 제작과 관련된 인프라를 활용하면 시장 점유는 시간 문제란 뜻이다. 기자 간담회에 스파이더맨이 등장했지만 영화속에서 RX0를 보는 것도 그리 비현실적인 상상이라 보긴 어렵다. 스파이더맨 영화속 주인공인 피터파커의 직업은 프리랜서 사진기자(스파이더맨 파파라치)다.
영화쪽에 최적화 됐다는 것은 일단 지원하는 인터페이스를 봐도 짐작이 가능하다. 3.5파이 마이크 인풋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4K로는 내장메모리를 통해 녹화가 되지 않는다. 4K 녹화를 위해서는 HDMI 단자를 통한 클린 출력 외부 레코딩을 지원한다. 이 경우 용량 제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해결하지만 일반 사용자 환경과는 다소 멀어지는 문제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미지 스테빌라이저, 일명 손떨방은 지원하지 않는다. 추후 선보일 짐벌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얘기다. 물론 옵션으로 제공된다. 넓은 화각을 위해서는 별도의 필터 어댑터를 써야 하는 것 또한 단점이지만 모든게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영화 산업에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대신 수동 모드에서 초점 맞추는 MF 어시스트 피킹, 전문 영상 장비용 픽처 프로파일과 S-Log2, 다중 시점 촬영용 타임 코드/사용자 비트 등을 지원한다.
영상 촬영에 특화된 기능은 하드웨어 지원 뿐만 아니라 촬영 방식 지원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여러대를 연결해 슬로우 모션 기법을 활용한 블릿 타임(Bullet Time), 여러 대의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순간을 포착하는 타임 슬라이스(Time Slice). 무선 멀티 카메라 슈팅 솔루션은 내년 상반기 펌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제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험한 익스트림 스포츠 분야 보다는 영화판에 친화적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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